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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종묘(宗廟)] 정전 하월대 아래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司堂)

younghwan 2010. 9. 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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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 정전 남문을 들어서면 하월대 아래로 동쪽편에선 역대 국왕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이 자리잡고 있고, 서쪽에는 작은 건물로 토속신앙과 관련된 일곱신을 모신 칠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종묘의 공신당에 모신 분들을 보면 초기 공신들은 엄선해서 선정되었는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분들이지만, 후대로 내려오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신으로 남아 있다.

종묘 정전 남문 좌우측의 공신당과 칠사당

종묘 정전 남문 동쪽편 하월대 아래에는 정전에 모셔진 국왕의 공신 83신위를 모셔진 공신당있는데 모셔진 공신을을 보면 임진왜란 전까지는 엄선해서 국왕 1명에 보통 3명 정도의 공신이 모셔졌으나, 이후에는 문란해져서 지금으로서는 큰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없는 인물들도 있다.

※ 종묘에 모셔진 배향공신

태조  조준(趙浚)·이화(李和:義安大君)·남재(南在)·이제(李濟) 이지란(李之蘭)·남은(南誾)·조인옥(趙仁沃)
정종  이방의(李芳毅:益安大君) 
태종  하륜(河崙)·조영무(趙英茂)·정탁(鄭擢)·이천우(李天祐)·이래(李來) 
세종  황희(黃喜)·최윤덕(崔潤德)·허조(許稠)·신개(申槩)·이수(李隨)·이제(李禔:讓寧大君)·이보(李補:孝寧大君)
문종  하연(河演) 
세조  권람(權擥)·한확(韓確)·한명회(韓明澮) 
예종  박원형(朴元亨) 
성종  신숙주(申叔舟)·정창손(鄭昌孫)·홍응(洪應) 
중종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유순정(柳順汀)·정광필(鄭光弼) 
인종  홍언필(洪彦弼)·김안국(金安國) 
명종  심연원(沈連源)·이언적(李彦迪) 
선조  이준경(李浚慶)·이황(李滉)·이이(李珥) 
인조  이원익(李元翼)·신흠(申欽)·김류(金絫)·이귀(李貴)·신경정(申景禎)·이서(李曙)·이보(李俌:綾原大君)
효종  김상헌(金尙憲)·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이준(李濬:麟坪大君)·민정중(閔鼎重)·민유중(閔維重)
현종  정태화(鄭太和)·김좌명(金佐明)·김수항(金壽恒)·김만기(金萬基) 
숙종  남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지완(尹趾完)·최석정(崔錫鼎)·김석주(金錫胄)·김만중(金萬重)
경종  이유(李濡)·민진후(閔鎭厚) 
영조  김창집(金昌集)·최규서(崔奎瑞)·민진원(閔鎭遠)·조문명(趙文命)·김재노(金在魯) 
장조  이종성(李宗城)·민백상(閔百祥) 
정조  김종수(金種秀)·유언호(兪彦鎬)·김조순(金祖淳) 
순조  이시수(李時秀)·김재찬(金載瓚)·김리교(金履喬)·조득영(趙得永)·이구(李球:南延君)·조만영(趙萬永)
익종  남공철(南公轍)·김로(金鏴)·조병구(趙秉龜) 
헌종  이상황(李相璜)·조인영(趙寅永) 
철종  이헌구(李憲球)·이희(李曦:益平君)·김수근(金洙根) 
고종  신응조(申應朝)·박규수(朴珪壽)·이돈우(李敦宇)·민영환(閔泳煥)
<출처:브리태니커>


* 후대에 내려올수록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공신이 된 경우가 많고, 특히 순조 임금의 경우는 업적도 없고 큰 사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군인 세종대왕보다 배향공신이 많다.


공신당은 종묘정전 하월대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종묘정전처럼 공신이 늘어남에 따라 지금처럼 길게 증축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담장 밖에 있다가 태종때 담장안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서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공신당.


담장밖에서 본 공신당

칠사당은 정전 담장 안 서남쪽 하월대 아래에 있는 맞배지붕의 3칸짜리 작은 집이다. '칠사'란 인간의 삶과 생활에 관여하는 일곱 신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칠사당이다. <출처:문화재청>

칠사당 역시 정전 하월대 아래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칠사당.

담장밖에서 본 칠사당과 정전의 담장



조선시대에는 처음에 태조의 배향공신으로 조준·이화(義安大君)·이지란·조인옥을 선정했다. 그러나 1421년(세종 3) 고려 태조의 배향공신이 6명인데, 조선은 4명뿐인 것은 불가하다고 하여 남재·남은·이제를 추가했다. 조선 후기 정쟁(政爭)이 심해지면서 추가논의도 복잡해져 끝내 배향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송시열의 경우 1713년(숙종 39)부터 배향이 건의되었으나 1776년(정조 즉위)에야 효종묘에 배향될 수 있었다. 대원군 집정기인 1865년(고종 2)에는 양녕대군·효녕대군·능원대군·인평대군·남연군 등 종친을 추가 배향했다. 1886년에는 이이·김석주 등을 대폭 추가했고, 추봉왕(追封王)에게도 배향공신을 설정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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