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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인천 소래염전, 생태공원으로 바뀐 수많은 염전노동자의 땀이 담긴 곳

younghwan 2012. 5. 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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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래포구는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로 많은 사람들은 김장철 새우젓을 사러 들러고, 또한 새우나, 꽃게, 싱싱한 회를 즐기기 위해서 찾는 곳이다. 소래포구 어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고속도로 방향으로 작은 샛길을 따라서 들어가면 소래포구와 연결된 넓은 갯벌이 나타나고 그 갯벌 한 가운데에  한화에서 운영하던 넓은 소래 염전이 있다. 전국최대의 천일염생산지였던 이곳은 1996년 염전이 폐쇄되고 아파트가 지어질려고 했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천일염의 생산과정을 보여주고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소래염전은 일제강점기부터 염전으로 개발되어 바닷물을 끌여들여 소금을 생산했다. 이 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소래포구를 통해 배나 경인선협궤열차를 통해 인천항으로 옮겨져 일본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이 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생필품으로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화확제조용 군수품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염전을 소유했던 회사도 한화그룹으로 화약을 만든는 대표적인 군수회사였던 한국화약의 후신이다. 이 곳은 1970년대에는 전국 최대의 천일염생산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금은 거의 대부분 서해안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만, 남양만의 염전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지요. 소래염전, 오이도염전, 군자염전, 시흥염전, 마도염전은 모두 대규모 공단이나 간척지로 바뀌었고 중국산 소금과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학소금을 당해낼 수 없는 작은 염전들은 왕새우 양식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소래습지 생태공원에 남아 있는 옛 소래염전, 옛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도록 옛 소래염전의 일부분과 소금창고 건물을 남겨두고 있다.


소래염전 전경,  천일염 생산은 바닷물을 입구의 저수지에 끌여들어 안쪽의 난치지역에 10여일을, 늦태지역에서 14일 정도를 태양과 바람으로 증발시킨 후 결정지역에서 소금결정을 만들어 채취한다고 한다.

염전은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바닷물을 끌어들여 논처럼 만든 곳으로 소금밭이라 하기도 합니다. 소금은 염전에서 바닷물을 증발장치를 이용 농도를 짙게 하여 액체에서 고체로 결정시킨 것입니다. 소금을 얻는 전체 공정을 천연에너지를 이용하는 곳을 천일염전이라 하며 이렇게 해서 얻은 소금을 천일염이라고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등이 가장 발달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출처:인천시청>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바뀐 지금 염전 한가운데 다리를 설치하여 가까이서 염전 전체를 탐방할 수 있다.


안쪽에 바닷물을 끌여 들여 물을 증발시키는 난치지역고 늦태지역이 있다.


염전 입구에 소금을 저장하는 소금창고와 소금을 채취하는 결정지역이 있다


옛날 염전에서 일하던 염전노동자의 고된 모습을 보여주는 수차가 염전 가운데 새로이 복원되고 있다.


수차는 사람이 힘으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데,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옮기는 이 일은 상당히 힘든 노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염전 한쪽편에 수차를 돌릴 수 있는 체험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해주는 우기시 소금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염수를 저항하는 곳인데, 지붕을 덮어 놓은 곳이 해주인 것으로 보인다.(?)


결정지역(소금 채취지역), 햇빛과 바람을 이용 물을 증발 시킨 후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 결정체가 만들어 지는 곳이다.


토판, 1955년 이전 염전, 옛날 소금판(결정지역)은 현재와 같이 타일이 깔려 있지 않아 소금에 갯벌이 섞여 검은색을 띄고 있다. 이곳에서 채취된 소금을 토판염이라고 하며, 미네랄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여 고가에 매매되고 있으며 아직도 일부 염전에서 토판소금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 <출처:인천시청>


옹패판(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만든 결정지역), 1955~1980년초, 타일판이 널리 이용되기 전에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바닥을 만들어 깨끗한 소금과 소금 모으기 편리함을 위하여 결정지역 바닥에 깔아 사용하였다. <출처:인천시청>


타일판(정사각형 타일을 정교하게 붙인 결정지역), 1980년대 초 ~ 현재, 갯벌의 흡착력을 이용하여 정사각형의 타일을 염판(개흙) 위에 올려 놓은 상태이다. 타일판은 옹패판에 비해 표면이 매끄러워 소금채취 작업이 더 용이하며, 검은색 타일은 태양열 흡수량이 빠르고 많아 염도를 높이는데 큰 효과가 있다. <출처:인천시청>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 소금의 생산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금도 이 곳에서는 실제로 염전을 운영하고 있다.


채취한 소금을 저장하는 소금창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낡은 소금창고 1동을 남겨 놓고 있다.


창고건물은 일본식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판목을 이용한 외벽을 하고 있다.


소금창고 내부


창고 한쪽편에 채취한 소금을 쌓아두고 있다.


잘 포장해서 쌓아 둔 소금


창고 한쪽편에 쌓아 두고 있는 수차 바퀴들


천일염은 태양열.바람 등 자연을 이용하여 해수를 저류지로 유입해 바닷물을 농축시켜서 만든 소금이다. 주요 산지는 지중해, 홍해 연안, 미국, 인도 중국 등 각 해양연안에 많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와 남해에서 생산된다. 천일염의 염도는 일반적으로 90%내외이고 색택은 백색과 투명색이 있으나 한국산은 기상조건으로 염도 80%내외의 백색이다. 제재염(꽃소금)은 천일염과 정제염을 녹여 여과하여 불용분(이물질)을 제거한 뒤 깨끗한 소금물을 가열하여 재결정시킨 소금이다. 이 소금은 부피가 크고 용해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어 일반 가정 조리용은 물론 식품용으로 선호도가 큰 염종이다. 염도는 88~90%의 비교적 저염도 및 위생처리한 소금으로 탈수하여 수분을 제거한 것이다. 죽염은 대나무에 소금을 넣고 여러번 구운 소금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신비의 명약'이라고까지 알려진 소금으로 그 효과가 뛰어나다.


2004년 여름 소래염전

염전의 정의,
태양열이나 풍렬 등의 천연에너지를 이용하여 소금을 얻을 목적으로 바닷물을 농축하는 설비를 갖춘 지반. 소금은 염전에서 얻은 농축염수를 증발장치를 사용하여 더욱 농축시켜 결정을 석출시킨 것이다. 함수를 얻는 것을 채함, 석출시키는 것을 전오라고 하는데 이 전체 공정을 천연에너지로 행하는 것이 천일염전이며, 이렇게 해서 얻은 소금을 천일염이라고 한다. 천일염전은 세계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으나 홍해 연안, 미국의 캘리포니아,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등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분포한다. <출처:인천시청>

한국의 염전,
부족국가시대부터 염전개발이 있어 왔으며, 고려.조선시대까지 계속 변화.발전하였다. 조선말기의 제염업은 농.어업의 부업으로서 제염의 기술이나 설비도 미약하였다. 대부분 소작경영으로, 소규모 기업에 의한 제염업이 국민총생산량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았다. 제염 방법은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농축시킨 뒤 그 물을 가마솥에 끓이는원시적인 방법이었다.(전오제염), 따라서 입지 조건이 좋은 서.남해안에 많은 염전이 분포하였고, 간만의 차가 적고 갯벌의 발달이 나쁜 동해안에서는 해면보다 높은 곳에 염전을 만들고 바닷물을 퍼 올렸다. 염전 면적은 약 3000ha이고, 연간 소금생산량은 약 15만t이었다. 이러한 재래식 전오제염은 바닷물을 끓이는 과정에서 연료가 많이 들어가고 생산량도 적어 1900년대부터 천일제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입지조건이 좋은 북쪽 서해안이 천일염전으로 많이 개발되었다. 8.15이전까지 개발된 염전은 약 7000ha였고 북한지역에 많이 분포하였다. 8.15 후 남한의 염전 면적은 약 2800ha이고 생산량은 약 13만t으로서 자급자족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민영 염전으 적극 개발로 55년에는 염전 면적 1만 5000ha와 소금 생산량 35만t으로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79년에는 울산에 이온교환식 기계염공장이 건설되어 연간 10만t 이상의 기계염이 생산되어 85년의 소금생산량은 50만9000t에 이르게 되었다. 87년 염전 면적은 1만 2000ha로, 전라남도에 46%, 경기도에 24%, 충청남도에 22%, 전라북도에 8%가 분포하고 있다. <출처:인천시청>

소래염전의 역사
일찍이 주안.소래.남동 등 염전지대에서 천일염이 성행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천일제염 개척의 선지이면서 한때 최대의 소금생산지였다. 소래염전은 일제시대때부터 염전으로 개발되어 소래 갯골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고 그 소금을 소래포구를 통하여 경인선협궤열차나 배로 인천항으로 옮겨져 일본으로 보내졌다. 여기서 난 소금은 생필품만이 아닌 일제의 전쟁을 위한 화약제조용 군수품으로도 쓰여졌었다. 1970년대에는 전국 최대 천일염 생산지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명성을 잃어 폐허로 남아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이 들어서는 새로운 운명을 맞고 있다. <출처: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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