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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염하(鹽河) -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수로, 강화해협

younghwan 2010. 2. 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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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하(鹽河)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강화해협의 모습이 강과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입니다.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가 큰 까닭에 배를 타고 이 곳을 지나기는 쉽지 않으며 밀물과 썰물때는 물살이 아주 세차게 흐르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배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가는 통로였기때문에 아주 중요한 해상교통로 였습니다. 그래서 강화해협 주변에는 진/보/돈대/포대 등 많은 군사시설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강하해협인 염하가 시작되는 곳에서 가까운 강화대교 부근입니다. 멀리 강화해협을 지키는 군사상의 요지였던 문수산성의 성벽이 문수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습니다.

강화역사관이 있는 갑곶돈대의 정자에서 내려단 염하의 풍경입니다. 해안가에 갑곶돈대가 보입니다.

염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화의 수로입니다. 강화도에는 많은 농지들이 있는데 상당수는 수천년 동안의 간척사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농토들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위해서 많은 저수지들이 있고 실핏줄처럼 수로들이 얽혀 있습니다.

선원사지 부근 용진진의 좌강돈대에서 내려다 본 염하의 풍경입니다. 멀리 강화대교와 문수산성이 보입니다.

용진진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 화도돈대에서 바라본 염하입니다. 건너편에 김포의 골프장이 보입니다. 김포의 골프장 부근은 경치가 좋아서 오래전부터 많은 전원주택들이 있습니다.

해안가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화도돈대입니다. 이 곳의 수로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고 그 때문 만든 수문을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

화도돈대 아래쪽의 자라 머리통 모습을 하고 있는 오두돈대가 있는 해안입니다. 옛날에는 섬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간척의 흔적인 제방이 해안을 따라서 있습니다.

강화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인 광성보 부근에서 본 염하입니다. 지금은 밀물때라서 그런지 잔잔한 강물처럼 보입니다.

강화해협에서 폭이 가장 좁고 물살이 빠른 용두돈대 부근입니다.

용두돈대 앞에 흐르는 염하의 물살입니다. 밀물이 들어올때 물살이 아주 세차가 흐로고 그 소리도 굉장히 크게 들립니다. 이 곳을 손돌목이라고 부릅니다.

덕진진의 덕진돈대에서 본 손돌목 해협입니다. 그 폭이 아주 좁고 멀리서도 세차게 흐르는 물살이 보입니다.

덕진진 부근을 흐르는 염하입니다.


광성보 아래에 있는 덕진지의 덕진돈대 부근입니다. 멀리 초지대교가 보입니다. 이 부근부터 강화해협이 시작되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선박을 통제하기 위해서 강력한 포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덕진돈대에 설치된 경고비입니다. 구한말 외세 선박의 출입을 경고하기 위해서 세운 비석입니다.

염하라고 불리는 강화해협 입구라 할 수 있는 초지대교 부근의 풍경입니다. 초지대교 서쪽편에는 초지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염하부근의 육지에 있는 거의 유일한 포구인 대명포구입니다. 그 희소성과 서울에서의 접근 용이성으로 인해서 유명해진 아주 작은 포구입니다.

강화해협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초지대교입니다. 강화도 남부지역의 교통을 아주 편리하게 해주고 있는 다리입니다.

전형적인 강화도 해안 검은 갯벌입니다. 초지진 앞에 있는 작은 갯벌로 갈대도 조금 남아 있습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海峽)이다. 마치 강(江)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들어 오는데,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물높이(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염하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염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염하를 따라 군대 주둔지인 진(鎭)과 보(堡), 초소인 돈대 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225호),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 덕포진(德浦鎭, 사적 제292호),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27호), 갑곶돈(甲串墩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 등이 있다. 염하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는데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민간어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염하를 가로질러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놓여 있다. <출처:두산백과,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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