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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던 노락당(老樂堂)

younghwan 2011. 12. 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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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살았던 곳으로 구한말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즉위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사랑채인 노안당, 원래 안채였다가 명성왕후가 신부수업을 받은 이후 비워두었던 노락당, 안채인 이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뒷편 언덕 후원에는 별채와 사당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가 이를 허물고 양관이라는 현대식 건물을 지어놓고 있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老樂堂)이다. 정면 10칸이나되는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락당은 원래 운현궁의 안채였으나,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왕비수업을 받았던 까닭에 안채는 노락당 뒷편에 이로당을 신축해서 옮겨지고 이곳 노락당은 회갑연 등 흥선대원군 일가의 가족모임을 갖는 장소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원래는 안채로 쓰였으나, 명성왕후가 왕비수업을 받았은 장소로 쓰인 후 주로 가족 모임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노락당(老樂堂)이다. 
정면 10칸, 측면 3칸 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입니다. 툇마루 주위로 방이 아홉개나 있는 규모로 궁궐 건물에 비해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운현궁의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과 이로당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사랑채인 노안당 출입문과는 'ㄱ'로 배치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실제 부대부인이 거주했던 안채인 이로당과 직접 연결되며, 명성왕후가 신부수업을 받았던 노락당은 담으로 분리되어 있다.


마당에서 본 노락당 외관


노락당을 출입하는 정문.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편에는 노락당 건물과 부엌이 있고, 우측편에는 행랑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노락당은 앞면 6칸의 상당이 큰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를 연결하여 그 방의 칸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노락당 툇마루


오른쪽 온돌방 2칸에는 운현궁 낙성식 축하 다례연을 재현해 놓고 있다. 상궁의 청녹색당의, 부대부인의 분홍색당의, 철종비의 연보라색 당의, 조대비의 황금색당의를 입고 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운현궁을 대대적으로 보수, 증축하였다. 고종 1년(1864) 9월 노안당과 노락당의 낙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조대비와 철종비가 궁중 소례복인 보를 부착한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과 함께 노안당과 노락당의 낙성을 축하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가운데 대청마루


왼쪽편 온돌방 2칸. 명성왕후의 부대부인 생신 축하 방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명성왕후는 연두색 당의, 부대부인의 송화색 마고자를, 세자는 사규삼과 오방장 두루마기를,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은 전복과 오방장 두루마기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왕비는 궐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부모의 생신, 병문안, 상 등의 제한적인 경우에 사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명성왕후가 부대부인의 생신을 맞이하여 세자를 데리고 운현궁을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명성왕후는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은 평상복인 치마, 저고리에 마고자를 착용하고 있다. 세자는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사규삼을 착용하였고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은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전복을 착용하였다. <출처:서울시청>


노락당 왼편 행랑채와 부엌


부엌과 상궁의 나인.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상궁과 나인들이 운현궁에 배치되어 살림을 도왔다. 상궁은 녹색당의를 착용하였고, 나인은 살구색 저고리에 청치마를 착용하고 앞치마를 입었다.


노락당 오른편 행랑채와 부엌


노락당에 딸린 행랑채.



행랑채 내부. 대청마루와 마루방


행랑채 내부 온돌방과 비치된 가구들


행랑채 툇마루


노락당 뒷마당. 구한말 건물의 특징으로 뒷편에 약간 넓은 툇마루에 난간을 두고 정자처럼 사용했다.


노락당 뒷편 툇마루와 굴뚝


노락당과 안채인 이로당을 연결시켜주는 통로.



노락당 뒷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출입문.



운현궁 안채인 이로당 뒷마당에서 본 노락당 건물입니다. 앞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노안당의 정면 6칸보다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툇마루 좌우에 방이 아홉칸이나 있을 정도로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고종과 민비의 가례와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 행사때 사용되었으며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는 노락당 대청에 걸려 있는 노락당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노락당이 광장히 높아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밖에 안된다'는 뜻에서 노락당의 호화롭고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 개념 아래 조선시대 여성들의 주생활 영역의 안방으로 대표되는 운현궁의 주 건물이며, 특히 노락당 벽체에서 나온 그림과 글씨는 현재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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