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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삼군부 총무당,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부 청사 건물

younghwan 2013. 9. 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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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돈암동 서울 성곽 낙산 서쪽편 언던 아래 한성대학교 교정 옆에 있는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하나인 삼군부 총무당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교정에 있는 청헌당, 지금은 없어진 덕의당과 함께 삼군부 청사를 이르던 건물 중에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삼군부 청사는 구한말 고종때 지어진 건물이라 약 100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건축문화재로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인 의정부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관아로서 의정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관아건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건물은 앞면 7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근무했던 장소로 보인다. 삼군부 청사가 있던 광화문 앞 육조거리 서쪽에는 예조가 있었으나, 고종대에 군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곳에 삼군부 청사를 세웠다고 한다.

 삼군부는 구한말 고종대에 설치되었던 최고 군사기구로 오늘날 합동참모본부와 비슷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비변사가 군사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등 국정전반에 걸친 최고 의결기구로 그 기능이 확대되면서 의정부가 유명무실화되고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비대화되었기때문에 흥선대원군은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최고 군사기구로서 삼군부를 설치하고 기존의 비변사는 의정부와 통합하였다. 삼군부 청사는 의정부와 같은 위상을 가지는 의미로 의정부 맞은편 예조(현 정부종합청사)가 있던 자리에 청사를 설치하였다. 삼군부는 1880년 혁파될 때까지 최고의 군사기구로서 병인.신미양요를 치루는 국방상 중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삼군부 총무당,
이곳은 1868년(고종5)에 지은 것으로 조선말기에 설치된 삼군부의 청사(청헌당, 총무당, 덕의당) 가운데 중심건물이었다. 그런데 <고종실록>에는 1870년 4월에 발생한 화재로 청사의 건물 79칸이 소실되고 같은 해 윤 10월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총무당까지 화재를 입어 다시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군부로 사용하던 당시에는 정청인 총무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규모가 작은 청헌당과 덕의당이 나란하게 있었다. 총무당은 좌우 두 청사와 복도각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1880년에 삼군부가 혁파된 뒤에는 통리기무아문, 시위대청사로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사령부 건물로 쓰였다. 총무당은 1930년대에 현재 자리로 옮겨졌으나, 덕의당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건물의 기둥머리는 익공으로 짜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만들었다. 이는 조선 말기의 건축특성을 잘 보여준다. 조선은 1865년(고종2) 정부와 군부를 분립시켰던 국초의 전통을 되살려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였다. 삼군부는 군무를 통솔하고 변방에 관한 일까지 관장했다. 총무당의 현판 글씨는 강화도조약 때 조선의 대표였던 신헌이 썼다. <출처:서울시청>


성북구 돈암동 한성대학교 교정 서쪽편 언덕 아래에 위치한 삼군부 총무당 건물.


삼국부 총무당 건물은 앞면 7칸의 큰 건물로 중앙3칸은 대청마루, 양쪽으로 1칸씩 온돌방과 창고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후기 구한말에 지어진 많은 한옥건물들과 건축 수법이 비슷하고, 당시의 관청 건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희귀한 건축물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광화문 앞 육조거리 모형. 삼군부 청사가 있던 대로 서쪽편에는 원래 예조가 있었으나, 구한말 삼군부를 설치하면서 예조를 옮기고 삼군부 청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규모나 형태는 대로 동쪽편 의정부와 비슷하게 지었으며, 정청인 총무당과 양쪽에 익랑형태의 청헌당, 덕의당과 실무자들이 근무했던 행각으로 구성되었다.


삼군부 청사가 있었던 광화문 대로에는 정부종합청사가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을 하고 있지만, 사찰건물들처럼 공포를 화려하게나 많이 주지는 않고, 굵고 간결하게 하여 단정하면서도 절도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의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군부 총무당 현판 글씨는 강화도 조약 업무를 주관했던 신헌이라는 사람이 쓴 글씨라 한다.


건물 양쪽에는 2칸씩 방을 두고 있는데, 삼군부 고위직이 근무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공릉동 육사 교정으로 옮겨진 삼군부 청헌당. 실무를 맡은 중간 간부들이 근무했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앞.뒤에는 넓지 않는 통로 목적의 마루를 두고 있으며, 건물 앞에는 별도로 월대를 두고 있지는 않다.


한성대교정에서 내려다 본 삼군부 총무당.


낙산 성곽 아래 마을에서 내려다 본 삼군부 총무당.


2010년 삼군부 총무당


삼군부 총무당이 옮겨진 낙산 동쪽편 한성대 옆 작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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