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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경복궁, 조선의 법궁] 후원 연못 향원지와 향원정 (2010년 여름)

younghwan 2010. 9. 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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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후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옛 경복궁의 배치나 법도에 따라서 지은 것은 아니고 순전히 고종의 취향에 따라서 건청궁, 집옥재 같은 궁궐 건물을 짓고, 연못인 향원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엄숙하고 위압적인 면이 보이는 경복궁의 답답함과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을 벗어나고 하는 고종의 바램이 보이는 듯한 공간이다. 옛 경복궁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공식적인 연회공간인 경회루가 있는 연지와는 별도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향원지는 경복궁 후원에 조성한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거기에 육각형의 정자인 향원정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곳 향원정을 조성한 것은 정조가 부용지에 부용정과 서재격인 주합루를 조성한 예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향원정 뒷편에는 고종 개인의 서재인 협길당과 집옥재,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향원지와 향원정은 그 규모에 있어서는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보다는 훨씬 크며, 경복궁 연지와 경회루보다는 약간 작게 조성해 놓고 있다. 이 향원지을 조성함에 있어서는 비슷한 규모나 형태의 연못과 정자가 이전의 궁궐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서 구한말 혼란기라서 그런지 유교적인 법도나 풍수는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향원정은 고종이 건청궁을 조성할 때 같이 만든 인공연못인 향원지 가운데 섬에 있는 육각형의 정자이다. 이 향원정은 작은 나무다리인 취향교를 건너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향원정은 2층에 육각형의 지붕을 얹어 놓은 육모정이다. 원래 조선시대의 정자에는 창호를 두지 않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향원정은 사방에 창호를 달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아마도 이는 당시에 고종이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향원정으로 들어가는 나무다리인 취향교. 원래는 북쪽에 있어서 건청궁과 연결되게 되어 있으나, 1953년에 다시 지을 때 남쪽과 연결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50년대의 혼란상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정자 남쪽은 공간이 열려 있어야 하고, 건청궁과의 관계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경복궁 건물과의 연관성만 생각해서 다리를 남쪽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향교


원래 나무다리인 취향교가 연결되었던 향원정 북쪽편.


향원지 북쪽편에는 샘물이 솟아나는 열상진원지샘이 있다.


향원지 연못의 연꽃


향원정과 향원지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이다. 향원지의 근원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이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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