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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팔뚝가리개 (보물632호), 환두대도

younghwan 2010. 10. 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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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남대총 부장자와 함께 묻힌 부장품 중 당시의 무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환두대도가 있다. 환두대도는 한나라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시대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기이다. 고구려 벽화나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에서 발견된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 사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증거로 이 환두대도와 조우관을 들고 있다. 환두대도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도 많이 사용되었기때문에 신라 사신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은제 팔뚝가리개는 명칭과는 달리 정강이가리개로 추정되고 있는 보물 63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것을 당시 갑옷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로 판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시대 이후의 갑옷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가슴꾸미개와 허리띠 또한 이런 무기류들과 함께 갑옷을 장식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유물이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굴된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고리자루큰칼은 고구려와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류로 실제로 사용하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복식의 하나로서 소유한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의 손잡이에 달린 고리


황남대총에서는 여러점의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었다.


칼손잡이에 고리가 있어서 고리자루큰칼이라고 불리며, 한나라에서 처음 만들었지만, 고구려와 신라를 대표하는 무기류이다.


철로 만든 칼몸은 대부분 녹이 슬어서 형체를 잘 알아보기 힘들다.


장식손칼에도 고리가 달려 있다.

고리자루큰칼 (환두대도)
자루끝에 고리가 달려있어 이름지어진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은 한나라 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관료가 관복을 착용할 때 지니는 물건이었다고 전합니다. 기원전 후 한반도에 전래된 이후 2세기 즈음에 널리 퍼져 무기로 쓰였습니다. 출토상황으로 볼 때 주로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된 듯합니다. 처음에는 실용무기였으나, 4세기 후반부터 귀금속으로 꾸미고 칼자루의 고리 안에 여러 형상을 넣은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귀금속으로 꾸민 고리자루큰칼은 단순한 무기라기보다 소유한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복식의 하나이므로, 이를 따로 구분하여 장식대도라고도 부릅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3호로 지정된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명칭과는 달리 시제로는 정강이 가리개이다. 당시의 판금갑옷 기술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정강이 가리개(경갑)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정강이 가리개는 남쪽 무덤 널(관) 밖 머리쪽의 껴묻거리 구덩이(부장갱)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길이 35㎝의 무릎과 정강이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의 일부이다. 무릎에 닿는 부분은 넓고 둥근 판 형태로, 중간쯤부터 좁아져 아래로 내려오며, 중앙에 시계추(錘)같은 돌출된 선이 있다. 전체적으로 안으로 휘어지게 만들었다. 하단부는 안으로 휘어진 은판을 경첩으로 연결하여 닫으면, 정강이를 보호하게 되고 끝에 3개의 고리가 있어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다. 천마총 출토 금동제 정강이 가리개가 출토된 적은 있으나, 은제 정강이 가리개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출처:문화재청>


금동신발


가슴꾸미개(남분, 북분). 금속장식, 곱은옥, 구슬들로 장식된 부장자의 복식으로 보이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은으로 만들어진 허리띠와 허리띠 장식. 당시의 관복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허리띠이다.


은으로 만든 허리띠


허리띠에 매다는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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