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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고궁박물관] 조선의 도량형 제도와 의료기관

younghwan 2010. 11. 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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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량형는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되는 제도로 시간을 통일하는 천문학과 함께 실제 생활을 통제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음악과 함께 유교의 정치이념에서 예악으로 중시된 것이다. 서구에서 전국시대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던 여러 도량형을 하나로 통일한 것을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대에서부터 세종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시간의 기준이 되는 천문학, 물시계, 역법을 정비하였으며, 음률의 기준을 제시한 각종 악기의 제작과 국민생활에 밀접한 도량형을 제도화하였고, 그 내용들이 법전인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세종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계속 사용하다고 숙종에서 영.정조 시기에 기존의 제도들에 서구과학의 내용들이 중국 청나라를 통해서 들여와 재정비한 것으로 보인다.  도량형 기기들을 포함하여 많은 과학기기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천칭저울


저울추. 저출추의 제작은 경국대전에 근거하여 국가기관에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놋쇠자. 조선시대의 자는 악기, 측량기구, 옷감 등 쓰임새에 따라 다른 자를 사용하였다. 영조시대에 만들어진 영조척이 가장 잘 알려진 조선시대에 길이를 재던 자이다.
 
조선의 도량형 제도
도량형은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수단 또는 단위 등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사회정책적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도를 제정하는 데에는 도량형의 통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표준화된 도량형기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도량형 제도의 정비와 시행은 유교의 정치이념과 관련하여 예약의 표상으로서 강조되었다. 유교경전에서는 왕이 정치를 행함에 덕행으로써 교화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는 것이 근본되기는 하지만 정사를 통솔하는 길은 도량형의 통일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국가의 재정확보을 위한 세금 수취 제도의 확립에 도량형의 통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우에는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이르는 초기에 도량형 제도를 정비하여 법제화하였으며, 그 내용이 법전인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의학입문서


약통, 약을 가는 기구, 약장


내의원에 걸었던 현판. 내의원은 궁중의 의약을 담당했던 관청이다. '조화어약'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것을 뜻한다. '보호성궁'은 왕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경혈을 나타낸 인체상. 전신에 경혈을 점으로 새겨 표시하고, 기혈의 흐름을 선으로 나타내고 있다.


동의보감.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 의학 서적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의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동의보감은 16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해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누구나 쉽게 구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약재와 치료 기술을 자세히 다뤄 의료 대중화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백성을 위해서 국가가 직접 의료를 제공한다는 시대를 앞선 의미도 지닌 동의보감은 이번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2질이 각각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한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의료기관
전통사회에서 최고 통치자인 왕의 건강은 정치적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왕의 건강이 악화되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제때 내릴 수 없게 되면 국정 운영이 순조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에는 궁궐 안에 왕실의 의료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인 내의원을 설치하고 최고의 의료진으로 하여금 국왕의 건강을 보살피도록 하였다. 왕에 대한 진료는 왕의 거처에서 이루어졌으며 내의원에서는 의원을 파견하고 필요한 약재를 공급하였다. 조선말기 내의원에게는 고위관료, 의관, 의녀, 시종과 각종 노비를 합쳐 140명 이상의 의원이 근무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삼인검. 벽사용 검으로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시寅時 가운데 세가지 인寅의 조건을 갖추어 만든 것을 삼인검이라도 한다.


사인참사검. 도검은 사악한 기운을 끊고 재앙을 막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는데, 특히 인년의 인월,인일,인시(새벽3~5시)의 네가지 인寅을 갖추어 만들어진 것을 사인검이라 하였다.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자는 나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칼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고구려시대 이래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칼의 형태인 환두대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패도, 칼 집이 있는 허리에 차는 칼이다.  임금의 칼이다.


금은입사 쇠몽둥이


은입사도깨비 문양 쇠몽둥이 (보물 1444호).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 중의 하나이다.

은입사귀면문철퇴(銀入絲鬼面文鐵鎚) 이 철퇴는 19세기 경 의장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쇠로 만들어졌으며 외면을 쪼이질하여 상하로 화문을 은으로 입사하였다. 퇴부는 연봉(蓮峯) 상태인데 좌우에 도깨비 문양을 은으로 입사하였다. 그 퇴 위에는 뇌문(雷文)과 연봉 하단에는 화판문(花瓣文)이 시문되어 있다. 이러한 쪼음입사는 주로 철제품에 이용되었으며 조선 중·후기에 등장하여 입사기법의 주류를 이루며 귀면문은 각종 재앙과 질병 그리고 사악한 모든 것들을 막아내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상징적으로 도안한 것으로 천재지변과 각종 재앙을 물리치고자 한 데서 이러한 의장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철퇴는 감입한 은사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입사무늬 역시 비교적 정교하여 제작기술이 우수하며, 현재 동일한 유물이 없어 희귀성 또한 인정되어 지정 가치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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