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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많은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학술연구기관

younghwan 2011. 2. 1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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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은 조선후기 정조가 설립한 학술기관으로 원래는 역대 국왕들의 쓴 글과 글씨인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던 곳이다. 조선 후기 영.정조 부흥기에 사회적 변화에 대처하려는 필요성에 따라 국왕 직속의 학술 기관으로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된 책들을 소장하고, 당시 사회적인 수요에 따라 각종 서적을 편찬하는 기능을 가졌던 곳이다. 규장각은 창덕궁 정문 부근에 위치한 궐내각사에 위치하고 있어서 소장 도서의 보관을 위해 강화도에 외장규장각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다수의 문서들은 구한말 프랑스와 전쟁인 병용양요시 프랑스군이 침탈하여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이의 반환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현재 규장각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 고문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규장각 소장 도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왕실 행사 보고서인 각종 의궤를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 규장각의 기본 역할이었던 역대국왕의 친필과 기록화 등과 조선시대 그려진 각종지도와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고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유형의 문화재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곳이 중앙박물관이라면, 각종 도서와 고문서들을 소장.보관.연구하는 기능을 지금도 규장각에서 하고 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화성원행반차도, 1795년(정조19) 이후, 채색필사본. 정조의 화성행차도를 그린 그림이다. 잘 알려진 <원행을묘정리의궤>, 행사의 모습을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하면, 이 의궤는 행사에 참가한 사람의 명단과 그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1795년 2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행차한 모습을 그린 반차도, 정조의 화성 행차를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가 측면에서 본 모습을 그렸던 반면, 이 반차도는 후면에서 본 모습을 그렸다. 본 반차도는 총길이가 16m인데, 국왕 및 자궁(혜경궁)의 가마를 비롯하여 행렬에 참가한 사람과 의장기, 악대 등의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성대한 축제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출처:규장각>




대동여지도, 김정호, 1861년(철종 12) 목판본, 22첩. 규장각 전시실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볼 수 있는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이다. 총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우리나라 전도를 구성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의 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조선전도.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세로 약 6.7m, 가로 약 3.3m에 달하는 대형 지도가 되도록 하였다. 1첩의 지도는 동서 8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1절로 하고 1절을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 지도를 만들어 휴대, 열람하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지도 윤곽의 정확성, 산지를 선으로 연결하여 그린 점, 도로를 직선으로 그리고 십리마다 점을 찍어 거리와 축척을 나타낸 점, 군현의 경계를 표시한 점, 역이나 창고 등 시설물을 기호화하여 좁은 지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설명을 줄인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 옛 지명을 지도에 일일이 표시하고, 목판본으로 간행을 함으로써 지도의 보급과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왕세자입학도, 1817년(순조 17), 6폭, 채색도. 순조의 아들인 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때의 의식 절차를 그린 그림 중 세자가 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에 이르는 모습을 그린 '출궁의'이다.


왕세자가 명륜당에 들어가 박사에게 예물을 바친 뒤 수업을 하는 <왕복의>,<수폐의>,<입학의>이다.


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성균관 입학의 축하를 받는 <수하의>이다.

익종이 성균관에 입학할 때의 의식 절차를 기록과 그림으로 그린 첩. 그림은 세자가 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에 이르는 출궁의, 왕세자가 성균관 대성전의 신위에 헌작하는 작헌의, 왕세자가 명륜당에 들어가 박사에게 예물을 바친 뒤 수업을 하는 왕복의.수폐의.입학의, 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성균관 입학의 축하를 받는 수하의로 되어 있다. <출처:규장각>


규장각학사지서현판

이문원 건물의 중앙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이문원은 규장각의 부대시설로서 조선시대 역대 왕의 어제.어필 등을 봉안.편찬.간행.보관한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1781년 규장각제학 김종수가 썼다. <출처:규장각>






정종대왕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편, 1800년(순조 즉위년), 4책, 필사본. 정조대왕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1800년 정조의 장례식 과정을 기록한 책. 표지의 제목은 <정종대왕국장도감의궤>인데 '정종대왕'은 정조를 가리킨다.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에 정종이 선황제로 추존되면서 묘호가 정조로 바뀌었다.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자 사망 당일에 국장도감이 설치되고 7월3일 빈전을 마련하였다. 11월 3일 발인하여 시흥과 수원 행궁에서 각각 하룻밤씩 묵은 뒤 11월 5일 화산의 정자각에 도착하였고 6일 하관하였다. 우제 등을 거쳐 11월 7일 오후 4시경에 창덕궁 신정전으로 신주를 모시는 반우를 행하고 그날로 국장도감을 해산한 후 이책의 편찬을 시작하였다. <반차도>는 일방의궤의 말미에 40면에 걸쳐 그려져 있다. <출처:규장각>


규장각은 소장문서를 보관하는 기능도 있지만, 원래의 역할인 한국학을 연구하는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 큰 기관으로 지금도 다양한 서적들을 출간하고 있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판

조선의 기록문화와 규장각의 법고창신
1776년 정조가 설립한 규장각은 본래 선왕의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정치.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규장각은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도서를 소장하고, 학식이 뛰어난 정예의 관리들이 소속되어 각종 서적을 편찬하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마련하는 학문과 정치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였다. 옛 서적을 통해 오늘의 새 정치를 추구 했다는 점에서 규장각은 '법고창신'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200여년의 역사와 풍상을 겪으면서도 규장각에서 편찬.수집된 도서들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남긴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되었고, 국제기구에 의해서 인류가 모두 함께 아끼고 보존해야할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규장각의 대표적인 소장 자료는 그 성격에 따라 세계적인 기록유산, 의궤, 어필과 기록화, 고지도와 지리지, 국제교류에 관한 자료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7종의 국보와 <대동여지도>, <동의보감>,<용비어천가> 등 26종의 보물이 있다. 이중에서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를 비롯하여 조선왕조 의궤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둘째로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종합보고서이다. 왕실의 결혼, 장례, 왕실 잔치 등과 같이 국왕의 일생에 관한 것이 많다. 이밖에도 활쏘기, 악기제조, 외교의전, 궁궐이나 성곽공사, 실록편찬, 국왕이나 관청의 인장 제작 등 실로 다양한 행사를 다루고 있다. 의궤는 행사참여자를 미천한 신분까지 하나하나 기록하고 물품과 비용을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기재할 뿐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모습을 담은 반차도와 도설까지 실려 있어서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이라 불린다.
 셋째 어필과 기록화는 왕실문화의 멋과 품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규장각에는 선조, 효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의 글씨가 남아 있어서 왕의 성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왕세자나 왕실 관련 인물이 쓴 글씨도 남아 있는데, 순원왕후의 한글편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 눈길을 끈다. 연로한 신하들을 예우하는 잔치인 기로연, 왕세자 입학, 청계천 준설, 임진왜란의 전투 모습 등을 보여주는 많은 기록화들은 비디오카메라가 없었던 과거의 행사나 역사적 사건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넷째로 우리땅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고지도와 지리지가 있다. 고지도에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예술성 등이 반영되어 있고, 지리지는 각 군현의 연혁, 인물, 물산, 문화유적 등을 담고 있어서 각 지방의 고유한 역사와 풍속을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규장은은 국내 최대으 고지도 소장처로서 군현지도에서부터 우리나라 전도, 세계지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과 축적의 지도를 볼 수 있다.
 다섯째 세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로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기록인 연행록과, 일본 통신사의 기행문 등이 있고, <노길대언해>, 나 <박통사언해>와 같은 외국어 학습서도 조선시대의 국제교류를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혼일장리역대국토지도>와 <천하도지도> 등의 세계지도를 통해서는 선조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밖에도 규장각에는 조선시대 생활사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문서류를 비롯하여, 학자들이 남긴 개인 문집 2천여 종, 유교 경전과 법전류 등의 책판 등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근대사의 격동을 살펴볼 수 있는 근대정부기록물을 비롯하여, 서구 열강이나 일본과 맺은 조약문 자료도 다수 남아 있는데, 일본의 불법적인 국권침탈과 대한제국 정부의 국권 수호 노력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출처: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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