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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 정조대왕의 흔적들

younghwan 2011. 2. 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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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은 조선후기 왕실의 학문연구기관이자 도서관으로 원래는 역대 임금의 어제, 친필 등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규장각은 조선 숙종때부터 존재하기는 했으나, 현재와 같은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에 창덕궁에 규장각을 세우고 관리를 두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조선 세종대의 집현전에 그 근원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왕건을 위협하던 세력들을 누르고, 학문이 깊은 신하들을 모아 학문을 토론하게 하고 학문을 장려함으로써 그들을 국왕의 친위세력화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세종대의 집현전 학자들 상당수가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사육신이나 생육신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많은 자료들을 보면 정조는 규장각 학자들을 상당히 우대했으며,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장각은 구한말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가 해방이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으로 변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재전서, 1814년(순조 14), 활자본(정리자).
정조 사망후 순조대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글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다. 규장각에서 출판한 대표적인 책이라하 할 수 있다.

규장각에서 정리하고 인쇄한 정조 문집의 최종본. 정조가 사망한 후인 1801년에 규장각에서 정조의 어제를 종합 정리한 <홍재전서> 필사본을 순조에게 올린 바 있었는데, 이 책은 1801년본을 수정 윤문하여 인쇄한 본이다. 활자는 인연이 깊은 정리자를 사용했고, 총 30질을 인쇄하여 규장각, 홍문관, 세자시강원, 수원의 화령전 등에 배포하였다. <출처:규장각>


수교현판. 정조대왕 당시 규장각의 위상과 정조의 규장각에 대한 기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현판이다.

 수교란 임금이 내리는 가르침을 일컫는 말로서, 수교 현판에는 규장각의 운영에 대한 왕의 명령이 적혀 있다. 규장각에는 총 4개의 수교현판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손님이 오더라도 일어나지 말라.
.각신은 근무 중에 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
.비록 대관과 대제학이라도 전임 각신이 아니면 당 위에 오르지 말라.
.모든 각신은 근무 중에 공무가 아니면 청을 내려가지 말라. <출처:규장각>


초계문신제명록, 정조대왕 당시 규장각의 학문을 진흥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로 당시에 학문을 한다고 하는 젋은 학자들을 초계문신으로 뽑았다고 하는데, 당시의 명단이다.

초계문신에 뽑힌 인물의 명단을 기록한 책. 초계문신은 정조가 문풍을 진작하기 위해 37세 이하의 문신을 뽑아 경서와 시문을 익히고 시험을 보여 그 성적에 따라 상벌을 내리게 한 제도이다. 1786년(정조10)부터 1848년(헌종 14)까지 12차에 걸친 초계문신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규장각>


어전친막제명첩, 1831년(순조31). 정조가 친위세력으로 국왕을 호위하는 별군에 내린 각종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별군직과 관련된 정조의 글과 글씨, 전령의 양식, 제명 등을 묶은 책. 별군직은 병자호란 때에 세자의 시위군관에서 유래하였는데, 나중에는 국왕의 호위를 담당했다. <제어전친막제명첩>은 정조가 1787년에 별군직의 유래와 임무 등에 대하여 적은 글이고, '어진친막'과 '어진친비직려'는 정조가 친필로 써서 별군직에 하사한 것이다. <출처:규장각>


소학제가집주, 이이편, 1694년.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사도세자가 정조에게 물려준 율곡 선생이 쓴 <소학>에 대한 주석서이다. 정조가 상당히 소중히 다루었을 것으로 보이는 귀한 책자이다.

율곡 이이가 편찬한 아동용 학습서 <소학>에 대한 주석서. 이 책은 1694년 개주 갑인자의 활자본으로서, 영조가 1736년 사도세자의 첫돌을 맞이하여 반사한 것을 다시 세자가 1753년 9월22일 정조가 첫돌을 맞이하였을 때 반사한 것으로서 역대왕의 수택이 낀 귀중본이다. 표지 뒷면에는 사도세자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칠언시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출처:규장각>


정조연보


오경백선, 정조편, 1796년. 정조가 오경에서 직접 글을 엄선하여 편찬한 책이라고 한다. 정조대왕의 높은 식견을 보여주는 책자라 할 수 있다.

정조가 오경 중에서 학자가 항상 익혀야 할 100편의 글을 선정하여 편집한 책. 정조는 학자들이 오경의 핵심을 빠른 시간에 학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 선정된 글은 <주역> 7편, <상서> 12편, <시경> 66편, <춘추> 10편, <예기> 5편 등 총 100편이다. 전시면은 정조가 규장각 직제학 이만수에게 책을 하사하면서 준 어찰인데, 이 책이 그 집안의 보물로 전해지기를 기대했다. <출처:규장각>


윤음언해. 정조의 말을 정리하여 한글로 적어서 출판한 책으로 주로 궁중에서 읽었을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조선후기 한글이 일반민중에게 보편화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781년부터 1784년까지 정조가 내리 각종 윤음(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의 언해본 12종을 모은 책. 아래 윤음은 1781년 제주 3읍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지자 각종 구휼과 헤택을 베풀라는 내용이다. 윤음을 한글로 옮겨 모은 것은 궁중이나 일반 백성에게 읽히기 위해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규장각>


금속활자 전사자.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의 오빠 박종경이 1816년에 청나라 무영전취진판 <이십일사>의 자체로 주조한 금속활자. 박종경의 호를 따서 돈암인서체자라고도 하며 활자 실물 200여 자가 규장각에 남아 있다. 대한제국 말기까지 개인문집이나 과학기술서, 도교서, 불서 등의 인쇄에 주로 쓰였고, 규장각 소장 <사소절>이 이 활자로 간행되었다.


어정인서록

정조가 자신의 즉위 20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그리고 영조의 비 김씨가 51세 되는 해인 을묘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 해 전인 1794년에 전국의 장수한 노인들을 선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고 상을 내린 일의 전말을 기록한 책이다. 본문은 활자로 간행하였고, 권두에 수록된 정조의 어제서는 목판으로 찍었다. 당시 시상 내역을 보면, 조관으로 70세 이상, 사서인으로 80세 이상 되는 사람에게 1자급을 더하였고, 부부가 해로한 경우는 추가로 상을 내렸으며, 100세가 넘는 사람에게는 조야를 막론하고 숭정의 품계를 내리도록 하였다. 이 때에 전국적으로 포상을 받은 사람이 모두 75,145인에 이르렀다. 우측의 판목은 정조의 어제서를 새긴 책판의 일부이다. <출처:규장각>


고금도서집성. 중국 청나라에서 편찬한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으로 북경에서 상당한 거금을 주고 구입한 책이라하고 한다. 규장각에서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서 소중히 다루었던 책자로 보인다.

청나라에서 1725년에 편찬한 백과사전으로 5,022책의 활자본이다. 고금의 서적에 수록된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한 백과사전으로 총 권수는 1만권, 목록만 40권에 이른다. 1777년 북경에 파견된 서호수가 은자 2,150냥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책의 첫째면마다 정조의 도서인인 '조선국', '홍재','만기지가','극' 등의 도장이 찍혀 있다. <출처:규장각>


전제분류문고, 1887년

청나라 상해에서 1887년에 인쇄한 10책의 석판본이다.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에 소장된 도서로 크기가 6.4m x 6cm인 수진본으로서 표지에 '집옥재'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출처:규장각>

수진본
옛 책 가운데에는 한 손에 들어오는 매우 작은 책도 있었는데, 이를 소매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의미에서 '수진본', 두건을 넣는 작은 상자에 넣을 수 있다고 하여 '건상본'이라고도 한다. 수진본은 장소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기존 책의 단점을 보완하여 크기를 대폭 축소함으로써 손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 사서오경 또는 시문류를, 학승들이 주요 불경을, 그리고 그 밖의 인사들이 평상시 자주 보는 것을 조그마한 책에 작을 글씨로 깨알같이 써서 소매에 놓고 다녔다. 명 등림이 <사서집주>를 보완하여 편집한 글에 등욱이 편차하고 기문우, 두정기가 교정하여 1886년 6책으로 간행한 <사서비지> 11.5 x 6.7 cm, 청 홍균이 역대 사료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1887년 10책으로 간행한 <전제분류문고>는 6.4 x 6cm 밖에 되지 않는다. <전제분류문고>는 역대 전적에서 내용을 성현, 제왕, 보좌 등 45개 항목을 지정한 뒤 세부적으로 종류를 기술하는 백과사전류로서 평상시에 필요에 따라 열람하기 쉽도록 수진본으로 간행하였다. <출처: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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