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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 조선과 세계와의 만남

younghwan 2011. 2. 2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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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실록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고문서를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에서는 조선시대 대외관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은 조선초 세종에서 성종때까지의 문신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학자 중 한명인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는 비록 원본은 없지만 조선시대에 일본과의 공식외교관계를 끌어가는데 있어서 지침서가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실제로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거나,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이들이 쓴 기행문 형식의 보고서들이 많은 것 같았다. 또한 외교관계를 끌어감에 있어서 꼭 필요한 통역을 위한 실무교육자료들과 구한말 외교협정문서, 구한말에 많이 읽혔던 외국에 대한 소개자료 등이 소장.전시되어 있다. 규장각이 전시.소장하고 있는 자료로 볼 때 조선은 주변국들과 결코 적지 않은 수준으로 소통하고 있었으며, 구한말에 세계정세의 변화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동제국기. 해동제국기는 조선 성종때 학자인 신숙주가 세종때 일본을 다녀온 경험과 당대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만든 대일외교관계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후대에 필사한 책이 전시되어 있다.

신숙주가 1471년에 왕명을 받아 일본의 지세와 국정, 교빙왕래의 연혁, 사신 접대의 절목 등을 정리한 책. 1443년(세종25)에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견문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종 문헌기록과 고사 등을 참고하고 현실적인 외교관례 등을 참작하여 편찬하였다. 본서는 <해동제국총도> 등 7장의 지도와, <일본국기>, <유구국기>, <조빙응접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일외교의 모범서로서 조선후기 통신사들의 필수 서적이 될 만큼 외교 현장에서 많이 활용되었으며, 후대 학자들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자주 인용했던 책이다. <출처:규장각>


열하일기는 조선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저서이자, 청나라와의 교류관계를 아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실학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잘 알려진 <호질>,<허생전>같은 소실이 실려 있기도 하며, 당시 청나라 북경과 서울에서 청나라까지의 사신들의 행로에 대한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다.

1780년(정조4) 북학파 학자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온 후에 쓴 기행문. 1783년에 완성되었다. 애초에 목적지인 연경에 갔다가 당시 건륭제가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휴가를 취하고 있어서 열하까지 갔기 때문에 제목을 <열하일기>라 한 것이다. <도강록>은 압록강에서 요양에 이르기까지 15일간의 기록이며, <일신수필>은 신광녕에서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주로 병참 지대를 지나가는 9일 동안의 기록이다. <관내정사>에는 '호질'이, <옥갑야화>에는 '허생전'이 실려 있다. 일기 곳곳에 저자의 해학이 녹아 있으며, 수레.시장.점포 등 신문물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이 나타나 있다. <출처:규장각>


영접도감사제청의궤. 이 의궤는 선조 국장시 참석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절차를 기록한 의궤로 조선시대 외교의전절차를 잘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1609년 4월 선조의 장례식에 참여한 명나라 사제천사 웅화 일행을 영접한 절차를 기록한 의궤. 사제청이란 승하한 선조를 조문하러 온 명나라 사신에 대한 접대와 사제.사부.사시 의식 전반에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기구이다. 책의 뒷면에는 웅화 일행의 행사를 채색으로 그린 <천사반차도>가 실려 있다. <출처:규장각>


조선신사교환시서. 조선후기 조선과 일본간의 상호 이해때문에 지속된 조선통신사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48년(영조 24)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 일행과 일본인 아미십주가 주고 받은 시문을 기록한 것. 통신사의 제술관이었던 박경행과 아미십주 사이에 교환된 시문이 가장 많으며, 서기로 수행했던 이붕환과 이명계 등이 지은 시문도 수록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파견된 통신사 일행은 일본 체류기간 동안 성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학문과 문물을 일본에 전수해 주었는데, 특히 이들의 글씨와 그림은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서 통신사가 가는 곳마다 이들의 시문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출처:규장각>

전통과 세계의 만남
규장각 자료 중에는 전통문화의 폭과 깊이와 함께 동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접촉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도 많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와 주로 교류한 국가는 중국과 일본이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여행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은 연행록과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의 기행문은 전통시대 흔치 않았던 세계와의 만남을 생동감 있게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 <지봉유설>이나 <성호사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은 서양의 나라에 대해 얻은 정보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노걸대언해>,<박통사언해> 등의 외국어 학습서도 눈길을 끈다. 이들 자료를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가 결코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음과 함께 세계의 조류에 부단히 접촉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선구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화동고지도>, <천하도지도> 등의 세계지도를 통해서 선조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출처:규장각>


노걸대언해. 중국책자에 한자음과 한글번역을 실어 놓은 책으로 조선시대 한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한다.

중국어 회화체의 책으로 전해온 <노걸대> 원문에 두 종류의 한자음을 달고 우리말로 언해해 놓은 책이다. 상.하 2권 2책으로 상권 처음에는 변욱이 쓴 서문이 있고 하권 끝에는 교정관과 서사관의 명단이 실려 있다. <노걸대언해>류의 책들이 갖는 자료적 가치는 다른 역어류들과 마찬가지로 비록 언해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구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자료들이 불경이나 유교의 경서를 언해하였기 때문에 당시 일상 구어를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나 이 책은 원문이 회화체의 책이기 때문에 당시 우리의 구어로 번역된 것이다. 원문 밑에 기록되어 있는 두 종류의 한자음은 왼쪽의 것이 정음이고 오른쪽에 있는 것이 속음으로, 당시 중국 한자음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출처:규장각>


첩해신어, 사역원 편. 조선시대 국가교육기관인 사역원에서 펴낸 일본어 교재이다.

1676년(숙종 2)에 사역원에서 역관들을 교육하기 위해 간행한 일본어 학습용 교재, 본서의 초고를 쓴 이는 강우성으로,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618년(광해군 10) 경에 초고를 완성하였고, 이를 1676년에 간행하였다. 1415년(태종 15) 사역원 설치된 후 처음에는 한학과 몽학만 개설되었다가 나중에 왜학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신어' 또는 '신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서의 체재를 보면, 큰 글씨로 일본 문자를 쓴 다음 그 오른쪽에는 한글로 발음을 적고, 왼쪽에는 우리말로 그 뜻을 기록하였다. <출처:규장각>


방언집석, 1778년. 조선시대 어휘집으로 각 어휘에 대해 5개국어로 적어놓고 있다고 한다.

서명웅이 중국어, 한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 등 5개 언어의 어휘를 함께 풀이해 놓은 어휘집. 4권 2책의 필사본으로 <보만재잉간>에 수록되어 있다. 서명응이 각 언어에 능한 역관의 도움을 받아 1778년에 완성하였다. 87개 부류에 5,006개의 어휘가 실려 있다. 전시한 면을 보면 '신자'라는 한자는 우리말로 '몸'이라는 뜻이며, 중국어로는 '신즈', 만주어로 '버여', 몽골어로 '버여', 일본어로 '미'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출처:규장각>


사민필지. 구한말 선교사가 만든 세계지리서로 당시 사람들에게 서구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 책이라 한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한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 초판이 간행되었고, 1895년에 학부에서 한글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하였다. 본서의 서문에서 저자는 천하만국 사람과 풍속이 마치 한집안처럼 서로 통하는 지금 국제교섭을 원할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국의 이름.지방.폭원.산천.소산.국정.국세.군사.풍속.학술 등 천하의 형세를 잘 알아야 하므로 이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본 전시도서는 1889년에 간행된 한글본이다. 구한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구세계를 알리는 데 있어 큰 기여를 한 책이다. <출처:규장각>


태서신사람요. 중국에서 발간된 서양역사를 정리한 책으로 구한말에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18~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정리한 책. 영국인 마간서가 지은 책을 1895년에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이제마태가 구역하고 청나라 학자 채이강이 필술하여 만들었다. 역자 이제마태는 서문에서, 근대 서양의 역사를 통해 구민.보국의 방책을 얻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중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번역하였다고 하였다. 본서는 1897년에 조선의 학부 편집국에서 간행한 것으로, 간행 연도를 볼 때 아마도 청나라에서 이 책이 편찬된 직후 바로 조선에 수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에서 서양의 역사와 문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규장각>

외교협정 형식과 절차
개항 이후 외국과의 조약 체결에 필요한 외교협정의 절차와 형식에 관한 법령이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비준권자인 왕이 협상대표를 임명하고 최종 비준하는 절차를 거쳤고 또한 당시 국제관습법인 '공법'에 준하여 체결되었다. 대체로 외교협정에는 주권과 관련된 정식조약, 주권에 저촉되이 않는 범위 안에서 행정적 편의를 위해 주재 공사와 외무대신의 책임 아래 국가 원수의 비준 발부를 생략하는 협약.의정서, 그리고 제3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당사국만의 약속인 각서 등이 있었다. 이러한 외교협정은의 구별은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 형식과 절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외국과 체결한 정식 조약으로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 서구열강과 체결한 통상조약 등이 있다. 이 정식조약이 외교협정으로서의 공식성을 갖기 위해서는 대개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1) 국서접수, 2)의정부 개최, 3)협상대표 임명, 4) 조약협상 및 조인
<출처:규장각>


조일수호조규.

1876년 2월 2일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통상조약이다. 모두 12개 조항으로 부산과 5도 연해안 2개의 항구의 개항, 개항장 내 일본인 영사재판권 인정 등을 담고 있다. <출처:규장각>


각국과의 통상조약비준교환에 대한 전권위임장

1883년 3월 10일 고종이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영목에게 서양 각국과의 통상조약비준교환에 대해 전권을 위임한 위임장이다. 전시 면의 마지막에 국새인 <대군주보>가 선명하다. <출처:규장각>


조미수호통상조약비준교환에 대한 전권위임장

1883년 2월 4일에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서가 조미수호 통상조약 비준서의 교환에 대한 전권을 푸트에게 위임한다는 영문위임장이다. 백악관 문양의 압인과 미국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선명하다. <출처: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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