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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보물801호), 응진전, 조사전

younghwan 2011. 5. 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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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마곡사는 주불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을 앞쪽에 두고 뒤쪽 언덕에는 석가여래불을 모신 대웅보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 점이 특이다. 대웅보전은 중앙에 석가여래불을 두고,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전형적인 사찰의 불전이다. 보통 웬만한 규모의 사찰에는 대웅보전만을 두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수행을 중요시하는 마곡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으로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과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을 두고 있다. 사찰을 찾는 신도들을 중시하는 사찰에서 많이 두고 있는 관음전을 경내에 두고 있지 않다.

조선중기인 효종때 세원진 마곡사 대웅보전은 외관상 2층 건물 형태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건물형태로 인근에 있는 부여 무량사 극락전과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다포계 공포와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 화려하면서 웅장한 느낌을 주는 외관을 하고 있다. 응진전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로 건축적으로는 화려하거나 특징적인 양식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는 건물이다.


마곡사 대광보전 뒷편 언덕에 위치한 대웅보전. 앞면 5칸에 옆면 4칸으로 건물로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 효종때 공주목사의 지원을 받아서 세워졌다고 하며, 임진왜란때 승병활동으로 공을 인정받아 전국적으로 많이 세워진 사찰 건축물들 중 하나이다.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여 상당히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처마에 활주를 받쳐놓고 있다.


대웅보전 문살에는 장식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다.


처마끝에 달려 있는 풍경


마곡사 대웅보전 전경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801호)
이 건물은 대광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년(효종2년)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중심에 석가여래불을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던 다포식으로서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감을 준다. 팔작지붕으로 된 네 모서리에 처마를 받쳐주기 위한 활주가 세워져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 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출처:공주마곡사>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응진전. 이 불전은 사찰을 성격을 잘 말해주는 불전인데, 전국에 있는 많은 사찰 중에서 응진전이나 나한전을 두고 있는 사찰은 이 사찰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승려들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마곡사에는 부근에 크고 작은 암자들을 두고 있으며, 다른 사찰에 비해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를 상당히 많이 두고 있다. 순천 송광사와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는 마곡사의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응진전은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건물자체로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응진전 내부


마곡사 응진전 전경

마곡사 응진전
이 건물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16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며, 중생을 바른 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성자를 말한다. 철종 3년(1852)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전면에만 창호를 달아 출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삼면은 회사벽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조사전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불전으로 다른 불전과는 달리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조상을 모시는 유교적인 사당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불전이라 할 수 있다.


조사전 현판. 보통 조사당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마곡사에서는 불전의 의미가 강한 전(殿)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조사당에 모셔진 고승들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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