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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성립, 철을 바탕을 성장하다.

younghwan 2011. 9. 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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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이후 삼한시대 진한의 중심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철을 생산하고 제련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신라 영역에서는 울산 달천 광산에서 철을 생산하여 경주 황성동 공방에서 이를 제련하고 가공하였다고 하며,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도 했다고 한다. 당시 철은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변한에서 많은 철을 생산하고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신라는 이들 지역을 위협하기도 하면서, 상호 거래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초기 철기 제작과 관련된 유적지로서 불국사 부근의 구정동 고분군과 경주 남산 동남쪽에 위치한 조양동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들과 초기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대릉원 동쪽편 고분과 주택들이 섞여 있는 쪽샘지구에 위치한 월성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동시대의 장신구와 생활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월성리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이들은 교역을 통해서 옥을 비롯한 다양한 사치품들을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었으며, 당시 경주지역은 상당한 수준은 경제력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철을 바탕으로 성장하다
신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바로 '철'이었습니다. 철을 제련하는 것은 당시 최고의 기술이었고, 철을 가진 세력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철은 돈처럼 통용되었고 주변 세력과의 주요한 교역품이었습니다. 신라 건국 초기, 큰 무덤에서는 한국식동검, 중국 한나라의 거울과 동전, 흉노와 관련된 청동단추 등과 함께 철제품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당시 지배자들이 철제품을 매개로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높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신라가 성장하는 3세기 대의 큰 널무덤에서는 철로 만든 무기나 덩이쇠를 무덤 바닥에 깔아놓은 예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경제력의 상징으로서 신라가 철을 제련하여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수출하면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쇠투겁창, 4세기 경주 구정동. 삼한에서 삼국시대로 넘어가는 원삼국시대에는 중국이나 서역과 마찬가지로 창을 던져서 적을 살상하는 투겁창이 무기로서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많은 투겁창들이 전국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미늘쇠, 4세기, 경주 구정동. 미늘쇠는 철을 이용하여 만든 무기이지만, 실제로는 신분을 나타내거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을 추정되고 있는 무기이다. 삼한시대 이후 한.중.일 철무역을 주도했던 변한의 가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유물이다.


쇠화살촉, 4세기, 경주 황성동.구정동/포항 목성리


쇠재갈멈치, 4세기, 경주 조양동

신라의 서막
울산 달천 광산에서 캐온 철광석을 경주 황성동의 공방으로 가져와 다양한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구들은 신라를 넘어 일본, 중국에까지 수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하였고 그것이 새로운 나라인 '신라'를 만들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출처: 경주박물관>



가슴걸이, 4세기, 경주 월성로 가-13호 무덤 출토유물로 삼국시대 초기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귀금속으로 만든 장신구나 생활수준으로 볼때 초기 경주지역의 지배층들은 교역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곱은옥


재갈


금목걸이


금바리


금귀걸이


화살통 


경주 역사지구인 대릉원 동쪽편 황오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계림로고분군, 월성로고분군 등과 주택들이 모여 있는 쪽샘지구는 최근에 주택들을 허물고 역사유적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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