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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돈암서원 응도당(보물 1569호), 노강서원 강당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건축

younghwan 2012. 2.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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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암서원은 율곡 이이 선생의 제자로 조선중기 유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을 중심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기 있는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 때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노강서원과 함께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원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었던 곳에 후학들이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1634년(인조12)에 건립한 서원이다. 

 보물 1569호로 지정된 돈암서원 강당인 응도당은 서원에서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던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당과 나란히 배치된 다른 서원이나 향교와는 달리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1880년에 돈암서원이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꽤 큰 규모의 건축물로 건물 전체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은 웅장함을 강조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양쪽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판을 설치하고 눈썹지붕을 툇간처럼 달아낸 것은 인근 노강서원 강당과 이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전경. 궁궐이나 사찰의 전각처럼 웅장함이 돋보이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다른 건물에 비해서 천정과 지붕의 높이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이루어진 강당내부는 온돌방을 별도로 두지 않고 전체가 열려 있는 공간으로 대청마루가 깔려 있다. 양쪽 2칸은 문으로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별도의 문을 설치해 놓고 있지 않으며, 앞면을 제외하고 삼면에 문짝을 달아 놓고 있다. 문을 열어 놓으면 큰 누각과 같은 분위기이며, 상당히 많은 인원이 건물내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규모이다.


강당 내부의 넓은 대청마루, 뒤쪽 1칸은 분합문으로 분리해 놓아서 문을 닫으면 별도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이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건물 양쪽에도 1칸씩 독립관 공간을 형성할 수 있도로고 만들어 놓고 있으나 강당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당에 별도의 온돌방은 설치해 놓고 있지 않다.


강당 지붕을 바치는 대들보와 서까래


지붕의 하중을 받치는 공포는 조선시대 건물로는 드물게 익공계와 비슷하지만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강당은 낮은 축대를 쌓고 잘 다듬은 화강석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워 놓고 있다.


앞면에서 본 응도당


맞배지붕을 하고 지붕이 일반적이 건축물에 비해서 상당히 높고 웅장한 편이며, 비바람을 막기 위해 눈썹지붕을 퇴간처럼 달아내어 놓고 있다.


논산 돈암서원 전경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보물 1569호,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이곳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1880년(고종17)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서 지었다. 서원이나 향교에서 강학공간으로 사용하는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드문 편인데,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전면에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돈암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김장생이 강경 죽림서원을 창건했던 규례를 이어 받은 것이라고 한다. 장수강학의 성격을 가진 강당으로, 원래의 건물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의 주심포 계통의 건물이며, 박공널 밑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판을 설치하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퇴칸처럼 달았다. 응도당은 기와에 씌여 있는 명문으로 보아 1633년(인조 1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논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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