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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종3품 부사가 고을 수령인 죽산도호부에 위치하고 있는 죽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산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에 송문주 장군이 성을 크게 고치고 몽골군을 물리쳤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죽산은 청주와 충주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죽주산성은 삼국시대부터 북쪽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쌓은 산성으로 지형적으로도 북쪽편이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외성,중성,내성으로 여러겹 성벽을 쌓아 두고 있다. 반면에 죽산도호부 관아가 있는 현재의 죽산면소재지는 죽주산성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편 지형은 대체로 경사가 급한편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가 쉽게 되어 있다. 죽주산성은 동쪽편 청주와 용인을 연결하는 17번 국도 방향의 동문이 주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에는 동.서.남.북의 4방향으로 성문이 있으며, 테뫼식산성과 비슷하게 성문을 들어오는 길도 경사가 심한편이다. 동문을 제외하고는 성문에 문루나 아치형 홍예를 두지 않은 평거식성문을 하고 있다. 여러겹으로 쌓은 죽주산성에는 북쪽과 남쪽 모서리에 전통적인 방어시설인 치성을 쌓아두고 있다.



죽주산성 서북방향의 장대역할을 하는 언덕. 바깥쪽으로 외성으로 서치성과 연결된다.


죽주산성 서쪽편 성벽. 그 아래로 언덕으 경사가 심하기때문에 적이 산성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은 방향으로 특별한 방어시설은 두고 있지 않다.


죽주산성 서쪽편에 위치한 비봉산 정상


죽주산성 서남쪽 치성. 죽주도호부 관아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으며, 남문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치성은 남문을 엄호하면서 사방의 적을 감시하고 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 장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서치성 방향의 성벽


죽주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죽산도호부 관아가 있는 죽산면소재지 부근. 주변에 상당히 넓은 농지가 있으며, 안성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있다. 남쪽편으로는 칠장사와 청룡사가 있는 산악지대이며 차령산맥과 연결된다.


옛 성벽의 석축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서치성.


서치성 동쪽편으로 죽산도호부 관아와 연결되는 남문이 자리하고 있다. 죽주산성 남쪽편도 경사가 있는 편이며,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남문은 성문의 크지 않은편이며 외형으로는 암문과 비슷한 평거식 성문을 하고 있으며, 문루는 두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남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서치성


죽주산성 정문격인 동무으로 내려가는 성벽길


산성 동남쪽에도 작은 규모로 치성이 세워져 있다.


치성부근 성벽의 석축. 복원된 다른 곳과는 달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석축을 쌓는 방법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조선시대에 이 산성을 수리하면서 쌓은 석축으로 생각된다.


죽주산성 정문인 동문 주변의 성곽


산성내부는 그리 넓지는 않은 편으로 민가 등은 원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내부에는 여러곳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작은 암자와 송문주 장군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산성내부에서 본 남쪽편 성벽


죽주산성 내부 북쪽편에 남아 있는 내성의 석축. 죽주산성 내부가 함락되었을 때 중성으로 피신하여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죽주산성내부 우물과 건물들어 있었던 자리


송문주 장군 사당.

송문주 장군
1231년(고종18) 몽고의 장수 살리타가 구주를 공격할 때 서북면 병마사 박서의 휘하에서 성을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낭장에 특진되었으며, 1236년(고종23)에는 죽주방호별감이 되었다. 이듬해 몽고군이 쳐들어오자 백성들과 함께 죽주산성으로 피난하였다. 몽고군이 산성을 포위하고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몽고군이 포를 쏘아 성문이 부서졌지만 성안에서도 포를 쏘며 맹렬히 대항하여 물리쳤다. 또한 몽고병이 짚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화공을 했을 때는 성문을 열고 일시에 기습하여 많은 몽고군을 죽였다. 결국 몽고군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15일만에 퇴각하였다. 그는 몽고군의 공격법을 미리 알고 대비를 하였기에, 백성들은 그를 '귀신' 또는 '신명'이라 하였다. 이 공으로 좌우위장군이 되었다. <출처:안성시청>


죽산면소재지 관아부근에 위치한 봉업사 옛절터에서 본 죽주산성. 산성의 높이는 평지에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공략하기에 쉽지않은 지형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죽주산성,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죽산은 충청북도 청주와 충주가 만나는 중부 내륙의 길목이어서 일찍부터 서울로 통하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이 죽주산성에 이르러 항복을 권유하자 죽주방호 별감 송문주 장군이 15일 동안을 싸워 적을 물리쳤다. 장군은 일찍이 귀주성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있어 대비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신명(神明)’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진을 치기도 하였다. 현재 성의 둘레는 1688m, 높이는 2.5m 정도이며 부분적으로 수리를 많이 하였다. 남쪽 성벽의 양쪽 끝과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는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남아 있으며, 남문 성 바깥에 물길을 돌린 도랑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성 안에는 몽고 침입 때 큰 공을 세운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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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 죽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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