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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진해 여좌천 벚꽃길, 로망스다리로 유명해진 벚꽃의 명소

younghwan 2012. 4. 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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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맞이하는 대표적인 봄축제인 진해 군항제를 대표하는 명소로 떠오르는 진해 여좌천 꽃길이다. 오래전 TV드라마에 등장했던 이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장소로 봄철 벚꽃이 만개했을때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여좌천은 진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장복산에서 발원하여 해군사관학교 옆 바다로 흘러드는 그리 길지 않은 작은 도시하천으로, 진해 내수면양식연구센터가 있는 내수면생태공원의 연못을 거쳐서 냇물이 흐른다. 여좌천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풍경이 일본의 유명한 벚꽃명소 중 하나인 쿄토의 '철학자의 길'과 비슷하다.

 여좌천 벚꽃길은 여좌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심어진 벚꽃이 만개하면 개천을 중심으로 벚꽃들이 터널을 이루면서 화려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원래 이 길은 진해의 대표적인 주택가인 여좌동에 있는 평범한 길이었고,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 이 곳에 심어진 벚꽃들은 진해 도심이나 다른 곳에 비해서 늦게 심어진 것으로 대체로 80년대초 태풍으로 개천둑이 무너진 후 보수하면서 심어진 것으로 수령은 30~40년 정도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 꽃피는 모습이 최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도심의 벚꽃들이 화려했었는데, 대부분 노령화되면서 꽃이 많이 피지는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반면에 늦게 심어진 경화역, 여좌천, 안민고개길 등이 새로운 벚꽃의 명소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좌천 양쪽에 심어진 벚꽃들이 꽃터널을 이루고 있다. 올해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군항제가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벚꽃이 늦게 피어 날씨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도심에서만 조금씩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다.


여좌천은 장복산에서 발원하지만, 계곡은 거의 없는 편이으로 여좌천 동쪽편에 있는 내수면 생태공원의 연못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 연못에서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주고 있다.


연못에서 여좌천으로 작은 개울을 통해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다.


여좌천 산책로가 시작되는 지점. 원래는 다른 하천과 마찬가지로 하수도 역할을 했던 평범한 하천이지만, 이곳이 관광의 명소로 떠오르면서 양쪽을 산책을 할 수 있는 목재데크를 설치하고, 하천 옆에도 작은 산책로를 설치해 놓고 있다.


여좌천 옆으로 최근에 개설된 자동차 도로


여좌천 양쪽으로 벚꽃터널 아래를 산책할 수 있도록 목재데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벚꽃이 질때 꽃잎이 눈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즐기에 좋을 것 같다.


벚꽃은 온도에 민감해서 그런지, 조금 아래쪽에는 벚꽃에 제법 피었는데 약간 위쪽에 있다고 아직 벚꽃이 피지는 못하고 있다. 벚꽃이 만개할 때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냇물이 흐르는 개천 옆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설치해 놓고 있다.


오래전에 TV드라마에 등장하여 여좌천길을 관광명소로 떠오르게 한 로망스다리 주변에는 다른 곳에 비해서 일찍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목재데크로 산책로를 조성하면서 다리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지만, 원래는 이곳에만 철제로 만든 작은 다리가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유명관광지의 특징적은 모습을 이곳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중국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서 벚꽃 풍경을 즐기고 있다.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로망스다리 주변의 벚꽃


이곳에서는 군항제를 대표한 이벤트 중 하나인 불빛축제를 하고 있는데 벚꽃 주변으로 화려한 조명을 설치해 놓고 있다.


벛꽃의 명소인 로망스다리. 예전의 좁은 철제다리대신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넓게 만들어 놓고 있으며 주변에는 행사를 위해 많은 조명들을 설치해 놓고 있다.


제일 먼저 꽃망울을 터트린 로망스다리 주변의 벚꽃. 만개했을때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벚꽃터널의 장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아래쪽에서 본 로망스 다리 주변


진해를 대표하는 장면들을 담은 사진공모전 작품들로 장식한 담장들


여좌천 벛꽃


여좌천 벚꽃터널


여좌천은 철도가 지나가는 곳까지 자연하천처럼 흐르다 도심에서는 복개되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옛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이 곳에서 여좌천 벚꽃길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여좌천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해군사관학교 부근의 모습.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에서 조성했던 여좌천의 모습의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하천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좌동의 연혁과 이름의 유래
여좌동은 역사적으로 웅천현 상서면, 웅천군 상서면, 창원군 웅서면, 마산부 웅서면, 마산부 진해면,창원군 진해면, 창원군 진해읍 등의 관할로 변천하여 왔다. 1955년에 진해시정이 펼쳐지면서 여좌동을 3개 행정동으로 나누어 새로운 행정동으로 획정되었던 여좌1가동과 여좌2가동을 1986년에 통폐합하여 "여좌동"으로 개편하였다. "여좌동"이란 이름은 법정동명이자 행정동명이다. 1910년에 일본이 점탈하기 이전에 우리 고장은 "여명리.좌천리.신좌천리"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 해군에서 우리 고장을 점탈하여 동양최대의 진수부로 건설할 야욕을 가지고 주민을 밀어내고 이름도 "북방시가"라고 고치고, 도시계획을 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 군비 축소의 조류는 예정한 최대의 군항 시설계획을 "요항부"로 격하하게 했고, 도시계획도 무산되어 주민들이 되돌아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육군부대인 소위 "진해만 요새사령부"가 주둔하였고, 2차대전말기에는 일본 군속의 관사, 이른바 근로동원 학도들의 기숙사(현 대야초등학교자리)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귀환 동포의 입주, 한국전쟁 피난민의 입주 등으로 오늘날과 같이 인구밀도가 조밀해 졌드며, 동명은 우리 식으로 개칭하면서 "여명리.좌천리"의 머리글자를 따서 "여좌동"이 되었다. <출처: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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