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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신라 흥덕왕릉(사적30호), 통일신라 전성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왕릉

younghwan 2012. 5. 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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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사적 30호로 지정된 신라 42대 흥덕왕릉이다. 이 왕릉은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인 원성왕의 괘릉과 함께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반영한 무덤으로 석물의 배치에 있어서 약간 다른면이 있지만 구성요소는 괘릉과 거의 유사하다. 왕릉은 둘레석을 두르고 있으며, 둘레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고, 바깥에 난석이 둘러져 있다. 왕릉 중앙에는 전대나 후대의 왕릉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그리스.로마신전의 제단에서 볼 수 있는 큰 제단이 놓여져 있다. 석물은 왕릉입구임을 알려주는 화표석 1쌍, 문.무인상 1쌍, 2쌍의 사자상 중 하나가 없어진 3개의 사자상이 남아 있다. 특히, 무인석은 괘릉과 마찬가지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왕릉 앞쪽에는 비석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거북모양의 받침돌만 남아 있다. 주변에서 비석의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흥덕'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흥덕왕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흥덕왕은 경주 괘릉의 주인인 원성왕의 손자로 즉위하자 당에 사신을 파견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당으로부터 차를 들여와 차를 전국적으로 재배하게 하였으며, 복식제도 등을 고쳤다고 한다. 흥덕왕릉은 경주 도심에서 북쪽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안강읍 북쪽, 양동민속마을과 옥산서원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흥덕왕릉은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되는 왕릉 중 하나로 당의 문물을 받아들인 신라 전성기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마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흥덕왕릉. 왕릉임을 멀리서도 알 수 있게, 경주 특유의 꾸불꾸불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경주지역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흥덕왕릉 들어가는 길. 곧게 자란 나무는 없고 각기 제멋대로 꾸불꾸불하게 자라고 있어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소나무숲 나이로 보이는 흥릉왕릉


흥릉왕릉 전경. 정면에 왕릉이 있고, 그 앞쪽에 사자상과 문.무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다.


왕릉의 봉분은 밑둘레 65m로 신라 왕릉 중에서는 중간정도 규모읻.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전형적인 통일신라 왕릉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봉문의 크기에서부터 문무인석 등은 괘릉과 함께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되었던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제단은 탁자모양의 조선왕릉의 석상과는 달리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당나라를 통해 서방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봉분을 둘레석으로 둘러져 있으며, 호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입체감이 돋보이는 부조상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다.


12지신상.


봉분 바깥쪽의 난간석. 난간은 남아 있지 않고 기둥들만 남아 있다.


봉분 앞에 세워진 1쌍의 사자상. 괘릉의 사사장은 문.무인석과 나란히 세워졌던데 비해서 흥덕왕릉은 봉분 앞에 세워져 있다.


괘릉에는 2쌍의 사자상이 세워져 있는데 비해서 흥덕왕릉 사자상은 봉분 앞에 1쌍, 봉분 옆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원래 이곳에도 2쌍의 사자상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덕왕릉 앞에 세워져 있는 1쌍의 문.무인석.


1쌍의 무인석. 괘릉과 함께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심목고비의 얼굴에 수염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인석


관복을 입고 있는 1쌍의 문인석


무인석과는 달리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왕릉입구임을 알려주는 화표석


왕릉 앞에서 본 문.무인석


왕릉 한쪽편에 세워져 있는 비석. 웅장하게 만들어진 거북받침돌만 남아 있다.


비석 몸돌은 남아 있지 않고, 거북 얼굴도 많이 파손되었지만, 후대에 만들어지 비석의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상당히 웅장하게 만들어졌다.


많이 파손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거북 얼굴


약간은 형식적인 느낌을 주는 거북의 발과 등껍질의 문양


비석을 올려놓았던 자리. '흥덕'이란 글자가 새겨진 비석 파편이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경주박물관에서 소장.전시중인 흥덕대왕비 조각


흥덕대왕비 거북받침돌


왕릉입구의 제실로 보이는 건물


내부에는 2동의 건물이 있는데, 그리 오래된 건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경주 흥덕왕릉이 있는 안강읍 육통리 마을


신라 흥덕왕릉, 사적 30호,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이 능은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 김수종/김경휘)를 모신 곳이다. 왕은 지금의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차를 들여와 재배하도록 하였다. 밑둘레 65m, 직경 22.7m, 높이 6.4m 되는 이 능의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돌난간을 둘렀다.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가 있고, 앞쪽에는 문인석.무인석을 세웠는데 무인석은 서역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장화부인과 함께 매장했다'고 하였다. 1977년에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사무소의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무덤의 앞 왼쪽에는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당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 양식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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