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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삼일교까지 걷기

younghwan 2012. 7. 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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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이루어진 서울 도심 옛 한양도성을 이루는 분지의 물들이 모여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10.84km의 하천이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때에는 자연하천을 유지하고 있어서 홍수가 나면 민가에 침수를 일으키고, 평소에는 생활하수가 고여있어서 매우 지저분하였다고 한다.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뒤 수차례에 걸쳐서 청계천을 준설하는 토목공사를 하였는데, 3대 태종대에 처음 준설공사를 하였고, 조선후기 영조대에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뒤 고종대와 일제강점기에도 준설공사가 있었으며, 1960년대에는 청계천을 복개하여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를 건설하였다. 최근인 2002년에 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고가도로와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오늘날 볼 수 있는 공원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청계천 입구인 무교동 일대에서 종로에서 남대문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지나가는 광교까지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가장 중요한 상업지역을 형성하던 곳으로 지금은 무교동과 을지로를 중심으로 업무용 빌딩들이 가장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2000년대 이전까지는 청계천을 복개한 넓은 도로와 고가도로, 회색빛 빌딩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황량한 도심 풍경을 만들어 내던 곳이었는데 청계천 복원공사 이후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행사와 집회가 이루어지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도심공원으로 바뀐 곳이라 할 수 있다. 광화문 동아일보사옥에서 시작되는 복원된 청계천은 실제 자연하천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인공적인 연못이나 수로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회색빛 도시에서 시원함을 주는 개천을 흐르는 물과 초록빛의 크고 작은 수목들, 중간중간에 있는 크고 작은 휴식시설과 광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찾게 만들고 있다.


청계천 입구에 세워진 복원공사를 기념하는 소라껍질모양의 조형물. 광화문 대로와 만나는 지점에 설치된 조형물 주변으로 크지는 않지만 청계광장이 형성되어 있고, 크고 작은 집회와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날도 어김없이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청계광장 뒷편으로 청계천에 인공적으로 맑을 물을 공급해주는 분수에서 폭포처럼 청계천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원래 청계천은 물이 많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한강물을 끌여들여서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인공적인 면이 많기는 하지만, 황량한 도심 한가운데로 시원한 물이 흐를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폭포에서 인공적으로 흘려보내는 물이 떨어져 청계천 물길이 시작되는 곳.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많은 행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흐르는 물 위에 등을 달아 밤거리 조명으로 눈길을 끄는 연등행사가 많이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5월말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서 그런지 불교와 관련된 연등을 만들어 놓고 있다.


청계천에 설치된 연등 조형물


청계천에 놓여진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 원래 이곳에서는 과일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서  모전이라고 불렀던 지역으로 마을이름을 따서 모전교라 한다.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허물었던 것으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모전교는 다리의 규모가 크지 않은 편으로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편은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오피스빌딩과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무교동이 있다.


모전교와 광통교 사이의 청계천. 이 곳에는 수풀들이 심어져 있지 않아서 전형적인 도심의 연못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라 계단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시대 청계천에서 설치된 다리 중 가장 큰 다리였던 종로와 남대문을 연결하는 도로에 설치되었단 광통교를 상류쪽에 옮겨서 복원해 놓고 있다.


글자가 적혀 있는 광통교 돌기둥


석수와 돌난간이 세워져 있는 광통교. 조선시대 세워진 다리로 그 폭은 4차선 정도로 상당히 크고 넓었던 다리임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음식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이래로 오피스빌딩이 밀집하여 서울 특유의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청계천 옆을 지나는 도로와 빌딩에 세워진 조형물. 청계천이 복원되기전에는 이곳에는 8차선 이상의 큰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으나, 지금은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좁은 도로로 바뀌었다.


청계천이 광통교를 지나면 수로 양쪽으로 수초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청계천을 따라서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나무들도 심어져 있어 도심의 작은 공원을 만들고 있다.


청계천을 건너는 조그만 다리


작은 돌다리


청계천을 따라서 걷는 산책로


광통교와 광교 사이를 흐르는 청계천


청계천을 건너는 가장 큰 다리인 광통교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은 자동차가 지나가는 광교가 놓여져 있다.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은 조선시대에도 많은 상점들과 수공업자들이 물건을 만드는 점포들이 있었다고 한다.


광교 다리 밑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여름 동안 햇볕을 피하여 물가아 앉아 노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광교를 지나는 큰 도로.


광교 다리를 중심으로 넓지는 않지만 나름 휴식공간이 있어서 이 곳에서 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광교에서 서울 도심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지금은 공기와 물이 흐르는 하나의 시원한 통로를 만들어주고 있다.


광교를 지나면 청계천의 폭이 넓어지고 수목들도 많이 심어져 있어서 나름 자연스러운 분위를 만들어 주고 있다.


광교를 지나 장통교를 향해서 흐르는 청계천


조선시대 5부 25방 중 하나인 장통방이 있던 자리에 있어 장통교라고 불리는 다리이다. 남산에서 발원해 회현동을 거쳐 내려오는 하천이 청계천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60년대 청계천을 복개할 때 없어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 도심의 중심인 종로와 을지로를 연결해 주는 광통교


광통교 앞 작은 공연장이 있는 광장


장통교 주변에는 정조대왕의 화성행렬 반차도를 벽면에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장통교를 지나면 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이 있는 삼일교까지 청계천이 이어지고 있다.


삼일교 부근을 흐르는 청계천


남산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보이는 곳에 작은 폭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상류에 비해서 하천의 폭이 넓어지고 수목이 많이 심어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종로에서 남산1호터널을 연결해주는 큰 도로가 지나는 삼일교.


삼일교 아래에도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청계광장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 있어서 그런지 쉬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준천시가열무도, 1760년(영조 36). 1760년에 도성내 하천 준설공사를 완성하고, 이를 기념하는 무사들의 무예 시험 행사를 4첩으로 기록한 그림. 홍수피해 방지와 하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국왕 영조의 지대한 관심속에서 공사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공사현황과 경비, 인부, 말 등의 숫자 등을 기록한 <준천사실>에 의하면 도성내의 하천 공사는 1760년 3월 역사를 시작하여 4월 16일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동원된 인부가 총 5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공사였다. 흥인문 남쪽에 있는 오간 수문에 행차하여 준천의  현장을 관람한 영조의 자리와 국왕을 수행한 관리의 모습을 비롯하여, 하천변에서 소와 수레 등 각종 도구를 활용하여 준설 작업에 열중인 인부들의 모습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출처:규장각>


준천사실, 1760년. 1760년 청계천 준설 공사 업무를 주관한 준천사의 사업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한성판윤 홍계희가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는데, 책 머리에 영조의 어제 서문과 한성부 판윤에게 내리는 교서가 있으며, 다음에 본문에 해당하는 <준천사실>과 <준천사절목>이 실려 있다. <출처: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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