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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낭산 (사적 163호),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가 있는 신라인들이 신성시여겼던 숲

younghwan 2012. 7. 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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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도심에서 울산방향의 국도와 철도가 지나는 동남쪽에 위치하는 낭산은 선덕여왕릉을 비롯하여 사천왕사, 황복사 등의 절터가 있는 곳으로 사적 16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낭산은 누에고치모양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해발 100m 정도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신라인들이 신성시여겨왔던 곳이다. 삼국시대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법흥왕대에 신라인들이 신성시여겼던 숲에 7처가람이라는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사천왕사, 영묘사, 담엄사 등이 세워졌는데, 그 중 낭산에는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경주 낭산은 보문동.구황동.배반동 일대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낮은 야산으로 북쪽편으로는 황룡사와 분황사가 있고 서쪽편으로는 경주의 궁궐이 월성이, 동쪽편으로는 명활산성 아래 신라 6촌 중 하나로 설씨성을 받은 명활산 고야촌이 있다. 남쪽으로는 울산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낭산 자락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는데 북쪽편에는 신라 왕실의 기복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황복사가 있다. 낭산 남쪽편 언덕에는 선덕여왕능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칠처가람 중 하나이자 문무왕과 관련되어 있으며 통일신라 호국불교 또는 밀교와 관련이 깊은 사천왕사가 있었다. 낭산 허리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화장터로 알려져 있는 능지탑지가 있다. 경주 낭산은 5세기 실성왕대부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선덕여왕과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과 관련이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낭산의 지리적 위치는 울산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길은 삼국시대 이래로 신라와 적대적 관계를 이루었던 왜(倭)가 침입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가까운 경로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신라왕실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낭산을 신성시 여겼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일본의 침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던 문무왕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은 것과 이런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낭산 남쪽으로는 문무왕의 뒤를 이었던 통일신라 전성기 왕들인 신무왕, 신무왕, 성덕왕, 효소왕 등의 무덤들이 위치하고 있다.



신라 6촌 중 하나인 명활산 고야촌 부근에 위치한 진평왕릉에서 본 경주 낭산. 경주 남산 동쪽편에 위치하는 누에모양의 작은 구릉으로 신라가 형성되던 삼국시대 초기부터 왜(倭)와 가장 가까운 교통로인 울산과 경주를 연결하는 길이 경주 도심으로 접어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신성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국도 옆에 사천왕사와 선덕여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볼 수 있다. 입구에는 이 곳이 사천왕사 절터임을 알려주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다.


사천왕사 절터 입구의 발굴 현장. 입구에 비석을 세웠던 거북받침돌을 볼 수 있다.


사천왕사에는 문무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 세워졌는데, 조선 후기 정조 20년(1769)에 경주부윤 홍양호가 비석을 발견하여 경주 관아에서 보관하다가 없어졌던 것이 2009년 경주지역 민가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비문에서는 신라에 대한 찬미와 신라 김씨의 내력, 문무왕의 유언과 장례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경주 낭산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천왕사 절터. 사천왕사는 황룡사, 불국사와 함께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큰 절이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위해서 크게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 이 절은 삼국통일 이후 호국불교와 밀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발굴조사 결과 많은 사천왕사에서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천재 조각가인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녹유사천왕상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사천왕사 절터는 현재도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건물터에는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들이 놓여 있다.


사천왕사 절터에서 출토된 건물 지붕을 장식했던 치미. 치미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궁궐건물이나 사찰 불전 건축에 많이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에 주로 사용한다.


사천왕사지에서 발견된 유물중 가장 인상적인 녹유사천왕상. 동시대에 활약한 조각가이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그 조각수법이 매우 사실적이고, 중앙아시아 간다라 미술품의 조각수법과 유사하다.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내려다 본 사천왕사지. 그 남쪽으로는 망덕사지가 자리잡고 있다.


사천왕사 뒷편으로 보이는 선덕여왕능이 있는 낭산 남쪽편 언덕


사천왕사 뒷편에는 낭산 남쪽 봉우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신라 27대 선덕여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남쪽편 자락으로 일제가 철도를 부설해 놓았다.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능은 낭산 남쪽편 봉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 낭산 남쪽 능선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선덕여왕릉. 진흥왕릉이나 무열왕릉 등과 마찬가지로 봉분만이 남아 있고 별다른 장식이나 석물 등을 두고 있지는 않다. 주위에는 전형적인 경주지방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낭산 동쪽편 마을.


경주 동쪽 명활산 고야촌에 자리한 보문사 절터에서 본 누에모양의 낭산 허리에 해당하는 지역. 동쪽편 언덕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낭산 허리부분에는 문무왕을 화장한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능지탑지가 있다.


울산과 경주를 연결하는 국도로 경주에서 가장 혼잡한 곳이라고 할 수 배반동 4거리 부근에서 능지탑지로 올라오는 길.


천년고도 경주에서 신성시 여기는 장소 중 하나인 낭산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능지탑지, 현재 복원되어 있는 것은 원래의 능지탑은 아니고 기단부만 일부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화장한 장소라고 한다.


기단부만 복원되어 있는 능지탑. 원래는 5층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탑신부는 남아 있는 석재들을 모아서 올려놓은 것으로 원래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곳을 발굴할 때 소조불상 파편이 나왔기 때문에 탑묘라고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능지탑 동쪽편으로 보이는 경주 남산


능지탑 근처에서 출토된 석조관음보살 입상. 이 보살상의 머리는 오래전에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1975년에 몸체가 발견되었고, 1997년에 연꽃대좌가 발견되어 전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낭산 동쪽편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능지탑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낭산 마애삼존불이 있는 중생사가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입상, 경주 낭산 출토, 8세기. 이 불상은 경주 낭산 중생사 터 부근에 있던 삼존불 가운데 오른쪽 협시보살로 여겨지는데 현재 본존불과 왼쪽 협시보살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낭산 북쪽편 누에의 머리처럼 보이는 곳에는 신라 황실의 기복신앙과 관련되었다고 전해지는 황복사 절터가 있다. 원래 이곳에는 삼국시대에 세워진 황복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나 삼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옛절터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지명을 따서 불렀던 것 같다. 황복사는 652년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절의 내력을 보면 신라황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었던 것 같다. 황복사는 불교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에 세워진 흥륜사, 황룡사, 분황사 등과 함께 낭산 북동쪽 끝 자락에 세워졌던 사찰로 보인다.


황복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황복사 절터에는 석탑으로 2개의 탑이 세워졌던 감은사나 불국사와는 달리 1개의 석탑만이 있다. 이전의 석탑은 10m가 넘었던 것에 비해 이 석탑은 높이 7.3m로 삼층석탑이 정형화되어가던 전환기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 아미타불좌상(국보79호)와 부처입상(국보80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각각 넣은 것으로 보인다.


황복사지삼층석탑 조성 내력이 자세히 적혀 있는 사리함 뚜겅. 성덕왕이 부왕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상 2구를 비롯하여 사리 등을 넣었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모습. 지금과는 달리 낭산주변은 도심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사찰들이 낭산 주위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 동쪽 보문동 절터에서 본 경주 낭산

경주 낭산, 사적 163호, 경주시 구황동.배반동.보문동
경주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 양쪽에 각각 봉우리를 이루었다. 산허리는 잘록하며 높이는 108m로 그다지 높지 않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옛부터 서라벌의 진산으로 불리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신라 실성왕 12년(413)에는 구름이 일어 보이면서 오랫동안 향기가 피어 올랐다. 나라에서는 하늘에서 신령이 내려와 노니는 것으로 여기고, 그 후로는 나무도 베지 못하게 하였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이 살았으며, 문창후 최치원이 공부하던 독서당도 있다. 남쪽 능선에는 선덕여왕의 능이 있고, 그 아래쪽에는 호국 사찰로 알려진 신라 향가의 현장 사천왕사터가 있다. 동북쪽에는 황복사터와 삼층석탑이 있으며, 서쪽 중턱에는 낭산 마애삼존불이 있고, 그 주변에 문무왕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 등이 남아 있다. <출처: 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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