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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Italy)

[로마] 로마포럼의 세베루스황제 개선문(Arch of Septimius Severus)

younghwan 2012. 8. 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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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도심에 남아 있는 고대국가 로마의 유적지인 로마 포럼에서 카피톨리아 언덕 아래에 위치한 세베루스의 개선문(Arch of Septimius Severus)이다. 하얀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개선문은 기원후 203년에 세베루스 황제(Emperor Septimius Severus)와 두아들인 카라칼라(Caracalla)와 게타(Geta)의 파티아잔(Parthians) 원정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개선문이다. 이 개선문은 고대 로마포럼 광장에서 약간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개선문이다. 르네상스시대 이후 폐허화된 로마를 표현한 그림에서 땅속에 파묻힌 형태를 하고 있는 개선문이 이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아치형 출입문 앞에는 기단석위에 세워진 복합형 기둥이 놓여 있다. 양쪽 아치위에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으며, 남쪽 기둥에는 황제와 그의 아들들이 네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행진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개선문은 그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로마포럼 지역이 홍수로 땅속에 아랫부분이 묻혀 있었으며, 이곳에 있었던 로마에서 상당히 중요한 교회의 일부분으로 여겨졌기때문에 약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개선문을 세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두아들인 카라칼라와 게타는 대표적인 군인황제시대의 황제로 로마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제국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재정비하였던 황제들이다. 그의 아들 카라칼라는 212년 칙령을 공표하여 제국내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조치는 로마제국을 확대하였으나, 화폐가치의 하락과 인플레이션 등 제국의 총체적인 문제를 야기하여 로마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세베루스 황제의 시기에는 근동의 강력한 세력인 파르티잔이고도 하는 사산조페르시아와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으며, 이 개선문은 파르티잔원정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로마가 파르티잔에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카피톨리아 언덕을 넘어가면 첫번째로 보이는 로마시대의 유적인 세베루스황제의 개선문이다. 중앙아 큰 아치형 출입문과 그 양쪽에 작은 아치형 출입문이 있는 하얀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개선문 아치 상단에는 글자가 적혀 있으며, 그 아래에는 세베루스황제와 그 아들들이 근동에서 파르티잔과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다.


개선문 상단부에 새겨진 글씨.


개선문 가운데 아치에 새겨진 부조상. 날개달린 천사처럼 보이지만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개선문의 3개의 출입문 중 인도에 해당하는 양쪽 출입문 위에 새겨진 부조. 세베루스 황제의 파르티잔 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개선문의 아치형 출입문 앞에는 기단석위에 세워진 복합형 기둥이 놓여 있다.


개선문 기둥 아래 기단부에 새겨진 인물상


세베루스황제 개선문 앞에 인물상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


북쪽편에서 본 세베루스황제 개선문


남쪽편에서 본 세베루스황제 개선문


세베루스황제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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