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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서울 헌릉(사적194호), 조선초기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조선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younghwan 2012. 8. 1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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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남쪽편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를 모신 능이다. 조선후기 정형화된 왕릉과는 달리 고려왕릉의 형태가 남아 있는 조선초기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의 봉분이 같은 언덕에 조선된 쌍릉으로 다른 왕릉과는 달리 봉분 앞에 혼유석,장명등 등 석물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또한 세조 이후의 왕릉에는 잘 볼 수 없는 병풍석을 두르고 있어 조선 왕릉 중에서는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또한 왕릉 앞에는 조선후기와는 달리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태종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태조대에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종을 옹립하고, 2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종종을 이어서 왕위에 올랐다. 태종대에는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을 제압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한 왕이다. 헌릉에는 불교적인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원찰은 세우지 않았다.



조선초기 왕릉의 형식을 볼 수 있는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 조선중기 이후의 왕릉과는 달리 봉분에 병풍석을 둘렀으며, 쌍분의 형식을 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비롯하여 석물들을 별도로 설치해 놓고 있다.


조선 3대 태종과 왕비의 능인 헌릉 전경.


왕릉 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들어가는 길인 참도. 신도와 어도로 구분된 다른 왕릉의 참도와는 달리 하나의 길만 있다.


홍살문을 지나 참도는 정자각에 연결되어 있고 그 오른편에 신도비를 세운 비각이 있다. 조선후기와는 달리 조선전기 국왕의 능 앞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왕릉에서 제사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


헌릉 정자각 월대는 후대에 세워진 왕릉의 정자각에 비해서 낮게 설치되어 있다.


헌릉에는 국왕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2개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의 신도비가 임진왜란때 훼손되어 1695년에 하나를 더 세웠다고 한다. 신도비는 세종의 영릉까지만 세워졌으며 그 이후에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헌릉 봉분으로 올라가는 길. 헌릉은 봉분 입구까지만 개방되어 있어 가까이서 봉분과 석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헌릉은 2개의 봉분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쌍분의 형태를 하고 있다.


봉분 주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으며, 그 앞에는 혼유석을 별도로 설치해 놓고 있다.


쌍릉으로 설치된 헌릉 앞에는 망주석을 제외하고는 석물들을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은 1쌍, 양석과 호석은 4쌍씩, 문무인석과 마석은 각각 2상씩 배치되어 있다. 이는 고려 왕릉을 기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능 앞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과 신도비


헌릉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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