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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창경궁] 홍화문(보물384호)과 외조(外朝)의 외행각

younghwan 2012. 9.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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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다른 궁궐 정문과는 달리 동쪽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보물 384호로 지정된 홍화문은 성종 15(1484)에 처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으로 광해군 8년(1616)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정문으로도 사용했던 건물로 여러 차례 수리를 하고 단청을 입혔기때문에 옛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17세기초 목조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다. 궁궐 정문으로서는 작은 규모라 할 수 있는 3문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양쪽에 한쌍의 십자각을 두었다고 한다. 위층은 마루를 깔고 나무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홍화문 바깥쪽에는 지금은 서울대병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이 언덕에는 조선시대 활터인 함춘원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대병원에는 함춘원 옛터임을 말해주는 출입문이 남아 있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창덕궁 후원 연못들과 춘당지를 거쳐서 흐르는 금천이 있고,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인 옥천교가 제일 먼저 보인다.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 출입문인 명정문 사이를 외조(外朝)라고 한다. 외조는 행각으로 둘러져 있으며, 국왕의 즉위식이 이곳에서 치러지고, 정전에서 국가적인 행사를 치룰때 하급관리들이 대기하는 장소이다. 외조 남쪽으로는 조선시대에는 국왕직속기관에 해당되는 많은 관청건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은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도로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재로 조선후기 임진왜란 직후인 1616년에 중건된 것으로 앞면 3칸에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궁궐 정문이다.


열려있는 홍화문 사이로 명정문 앞 창경궁 외조가 보인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외조에 비해서는 약간 좁아 보인다.


홍화문 현판과 단청


홍화문에는 잘다듬은 화강석을 깔아 놓고 있다. 보통 궁궐의 정문에는 계단과 답도가 설치되어 있고, 해치상을 비롯한 석수가 세워져 있는데, 홍화문 앞에는 없다. 동궐도에 나타난 그림에서도 계단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홍화문 내부 천정


홍화문 추녀마루의 잡상


홍화문은 궁궐 건물의 정문답게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다. 수차례의 중건과정을 거치면서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3개의 출입문으로 이루어진 홍화문


홍화문을 들어서면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과 바깥세상을 분리해주는 금천이 흐르고 금천을 건너는 옥천교를 볼 수 있다.


홍화문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 원래 홍화문 바깥쪽 언덕은 왕실전용의 활터인 함춘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대병원이 들어서 있다.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정전 출입문인 명정문과 황화문 사이에는 박석을 깧아 놓은 삼도가 있다. 궁궐에서 정전 출입문 앞을 외조(外朝)라고 부르며, 국왕의 즉위식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정전에서 행사가 있을 때 하급관리들이 바깥에서 대기하는 장소이다.


창경궁 외조는 행각으로 둘러져 있으며, 외조에는 궁궐을 관리하는 관리들의 사무실이 궐내각사들이 들어서 있었다.


창경궁 홍화문과 옥천교


회랑으로 되어 있는 창경궁 외조의 행각


바깥쪽에서 본 창경궁 외조 행각


조선시대에 그려진 동궐도를 보면 창경궁 외조 남쪽편에는 많은 궐내각사 건물들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화재와 동물원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남아있는 건물은 없다. 지금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


창경궁 궐내각사터.


2009년 창경궁 홍화문(안쪽)


2012년 창경궁 홍화문(안쪽)


2009년 창경궁 홍화문(바깥)


2012년 창경궁 홍화문(바깥)


창경궁 앞을 지나는 도로

홍화문과 외행각
창경궁의 중심 부분이 동향이기 때문에 정문인 홍화문(보물384호)도 동쪽으로 세워졌다. 1616년에 다시 세워진 이 문 앞에서 국왕이 일반 백성들을 친히 만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왕실 언덕인 함춘원에 활터를 세워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규모는 3칸 대문이지만 좌우에 한 쌍의 십자각을 세워 '궐(闕)'이라는 품격 높은 대문 형식을 갖추었다. 대문 안쪽에 명당수인 금천을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옥천교(보물 386호)를 건너는 상징적인 마당을 만들었다. 이 마당을 둘러싼 외행각은 궁궐을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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