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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청동기시대 유물

younghwan 2013. 4. 1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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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지역, 만주지역과 같은 문화권으로 기원전 1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중국 황화지역의 고대문명과는 다른 문화권으로 지배층 무덤인 고인돌, 비파형 동검 등 이 지역 청동기 문화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한반도에서 청동기문화는 지배층 무덤인 고인돌인 분포하는 대동강유역을 비롯한 한반도 서남해안에 많이 분포하고 있지만, 동해안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청동기시대 유적들이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수렵과 채취, 어로가 주 생계수단이었던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가 확산되면서 정착생활이 이루어지고 비교적 큰 규모의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집단내에서는 사회적, 계급적으로 분화가 일어났다. 청동기시대는 발전된 도구인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시기를 일컫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 등이 많이 사용되었고 청동기는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의기로서 지배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평안도나 한반도 서.남해안과는 달리 지배계층이 무덤인 고인도은 많이 발견되는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에 사용되었던 간석기와 토기 등 생활도구와 청동으로 만든 의기 등이 골고루 출토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는 청동기의 사용, 농경의 본격화, 민무늬토기가 유행한 시기이다.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독널무덤이 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4세기경까지 지속되며, 당시 창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사용되었다. 마을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오늘날 농촌과 비슷한 대규모 마을이 생겨났고, 집단 내에서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도 생겼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으로 그 형태에 따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분류된다. 한편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중국에서 철기가 도입되면서 초기철기시대로 접어든다. 철기는 북부지역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한반도 전체로 확산되었다.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은 사회 분화를 촉진하여, 각 지역에서 정치 집단이 형성되는 토대가 되었다. <출처:대구박물관>


간돌창(대구.경북지역, 청동기시대)


간돌칼, 간돌검은 무기로 사용된 청동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이다. 검의 형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밑동에 슴베가 달려 있는 것도 있지만, 손에 쥐고 사용하기 위한 자루가 달린 것이 많다. 간돌검은 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등에서 출토된 예가 많지만 집터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그런데 무덤에 묻힌 것 가운데는 늦은 시기의 것일수록 자루에 비해 날 부분이 길거나, 반대로 손잡이가 너무 크게 만들어져 의기화하는 경향이 있다. <출처:대구박물관>


자루없는 화살촉, 대구.경북지역 출토, 청동기시대, 화살촉, 화살촉은 자루에 부착하는 방법에 따라 뿌리가 있는 유경식과 뿌리가 없는 무경식이 있다. 유경식이 더 많이 출토되며 삼각형에서 버들잎형으로 진화한다. 청동기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출처:대구박물관>


자루 있는 화살촉, 대구 경북지역 출토, 청동기시대


대롱옥.비취옥(영덕 오포리, 청동기시대), 대롱옥목걸이(대구 대천동, 청동기시대)


고깔동기(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이형동기(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청동거울
당시의 거울은 요즘의 거울처럼 얼굴어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니고 햇빛을 반사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거울이 광명이나 빛을 상징하는 신성하고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을 말해준다. 거울의 모양이 둥근 것은 태양의 모습을 본 뜬 것이다. 그리고 뒷면의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는 태양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선이나 각종 성스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거울의 소유자는 마을이나 어느 지역의 제사장과 같은 우두머리가 아니었을까? 거울을 보면 머리에는 관을 쓰고 몸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제사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처:대구박물관>


본뜬 거울(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장대투겁, 대구 신천동, 철기시대


청동꺽창(대구 신천동, 철기시대), 꺾창은 긴 자루를 창몸과 직각이 되도록 옆으로 끼워 사용하는 무기이다. 찍거나 베어 당기는데 쓰이며, 중국에서는 원래 차전에서 쓰인 것으로 피홈이 없는 형식이며 丁자 형태가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꺾창은 피홈이 있고 자루에 끼우는 부분도 짧은 것이 특징으로 중국식 꺽창과는 형태상의 차이가 있다.


투겁창(대구 팔달동, 철기시대), 투겁창(대구 신천동, 철기시대)


청동방울(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청동도끼(대구 서변동, 철기시대)


말갖춤(대구 평리동, 철기시대)


요령식동검(구미 선산읍, 청동기시대), 한국식동검(대구지역, 철기시대)

요령식 동검,
청동기문화의 대표 유물인 요령식동검은 그 형태적 특징에 의해 비파형동검 또는 지역적 분포에 의해 만주식동검으로도 불리운다. 이 동검의 전형적인 형태는 검신 아래 부분의 너비가 넓고 둥글어 비파모양이다. 가운데에서 약간 위쪽에 위치한 좌우의 돌기가 뚜렷하다. 후기로 갈수록 검신 아래 부분의 너비가 좁아지고 좌우돌기가 미약해지며 등대의 척돌이 형성되지 않은 것도 나타난다. 슴베 끝에 홈이 파진 형식은 남한지방에만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대구박물관>

한국식동검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이 변화되어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것으로 청동기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검신과 손잡이가 따로 만들어졌으며, 검신이 요령식동검에 비하여 직선화되어 있고 허리가 뚜렷하 마디를 이루도록 갈라진 형태이다. 초기의 한국식 동검은 허리와 마디가 뚜렷하지 않지만, 후기로 갈수록 마디가 뚜렷해지며 등대의 날이 밑동까지 미친다. 또한 피홈의 홈도 1조에서 2조 이상으로 변화한 예도 등장한다. 동검과 함께 출토되는 칼자루는 목제에서 청동제로, 칼자루 끝장식도 석제에서 청동제로 변화한다. 원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슴베 가까이에 구멍이 있는 한국식동검 또는 철검으로 변화하게 된다. <출처: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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