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관아 43

보은군 동헌,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는 건물

옛 보은군 관아터에 남아 있는 동헌이다. 동헌은 지방 수령이 업무를 보던 사무실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건물 내력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순조때 크고 고쳐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으로 오른쪽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 동쪽 1칸과, 안쪽을 높게 만들어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 관아 건물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은군 읍소재지 옛 관아터에 남아 있는 동헌.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왼쪽편에 앞면 4칸 규모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대청마루 안쪽과 오른쪽 1칸을 높게 만들어 누마루와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조선후기 관아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대청마루 앞 통로 역활을 하는 툇마루. 뒷편에서 본 모..

조선 관아 2017.02.07

함양 안의 광풍루

조선시대 안의현 읍치였던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에 남아 있는 광풍루(光風樓)이다. 남강이 내려다 보이는 읍치 동쪽편에 선화루라는 이름으로 조선초기에 처음 세워졌다. 조선중기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이 광풍루라 이름을 붙였다. 관아에서 공식적인 연회나 회의를 위해서 세운 2층 누각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의 비교적 큰 규모이다.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뚫려 있다. 시골이지만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강과 읍치의 옛 풍경은 남아 있지 않지만, 웅장한 누각의 모습은 잘 남아 있다. 안의현(安義縣)은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주변지역이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지방행정 조직이다. 이 지역은 덕유산 남쪽의 여러 갈래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을 중심으로 마을이나 농경..

조선 관아 2016.08.30

부여 부여현(扶餘縣) 관아 내아(內衙), 부여현감이 거처하던 살림집.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을 지키던 부소산성 아래 부여읍 관북리는 옛 백제왕궁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부여박물관이 있었던 곳이다. 옛 부여박물관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는 국왕의 궐패를 모시는 객사, 부여현감의 공식 업무공간인 동헌, 살림집인 내아(內衙)가 남아 있다. 내아(內衙)는 현감이 살던 살림집으로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본채만 남아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의 주춧돌과 기단석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내아 뒷편에는 부여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모신 사당인 도영강당(道江影堂)이 있다. 옛 부여현 관아 건물터 동쪽편에 위치한 내아. ..

조선 관아 2015.06.01

부여 부여현(扶餘縣) 관아 객사(客舍)

부소산성 아래 삼국시대 백제 왕궁터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건물 중 하나인 부여 객사(客舍)이다.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의 중심건물로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건물이자 공식적으로 지역을 방문한 중앙 관리나 외국 사신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이다. 건물은 궐패를 모시는 정당(正堂)을 가운데에, 양쪽에 좌.우익랑을 두고 있다. 정청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좌.우익랑은 앞면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부여 객사는 구한말인 1869년에 지은 건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여박물관 전시실 등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부여객사가 있는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일대는 삼국시대 백제의 왕궁터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부여현 관아가 있었다. 이곳에는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으며, 관아 건물로는 객사..

조선 관아 2015.03.26

부여 부여현(扶餘縣) 동헌

부여읍 옛 부여박물관 마당에 남아 있는 부여현 관아 건물 중 동헌이다. 동헌은 고을 수령인 종6품 부여현감이 재판이나 민원인 알현 등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지방관아 동헌 중에서는 작은 편이다. 왼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앞쪽에 툇마루를 놓았다. 대청마루 처마 밑에 '초연당(超然堂)'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1869(고종6)에 지은 것이라 한다. 부여현(扶餘縣)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연 사비성에 설치된 지방행정단위이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부여도독부가,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여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와 병합되었다가 조선초 독립하여 부여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조선 관아 2015.03.12

김포 통진이청(通津吏廳), 관아 아전들이 근무하던 곳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옛 통진도호부 관아터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인 통진이청(通津吏廳)이다. 구한말 병인양요 직후인 1869년에 중건된 건물로 관아 실무자인 이방을 비롯한 아전들이 근무하던 곳이다. 건물은 앞면 7칸으로 비교적 큰 규모이다. 통진군이 김포군과 합병된 이후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통진도호부는 오늘날 김포시의 서쪽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곶면, 통진면, 하성면 일대를 포함하며, 읍치는 문수산성 동쪽편에 오늘날 월곶면사무소가 있는 군하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옛 통진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들어서 있다. 관아의 흔적으로는 면사무소 내에 남아 있는 고목들과 이방청 건물, 선정비 등이 있으며 근처에 중등교육기관인 통진향교가 남아 있다. 옛 통진도호부 관아 건..

조선 관아 2015.01.19

상주 향청, 조선시대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자치조직

경북 상주시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도심에는 관아건물로서 유일하게 상주향청이 남아 있다. 1950년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향청의 지위가 향리로 격하된 조선중기 이후에 운용된 것으로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향청은 조선초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유향소를 일컫는 말로 지방의 자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유향소는 지방관아에 소속된 아전을 비롯한 하급관리를 감찰하고 지역을 교화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그 유래는 고려의 사심관제도에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조직인..

조선 관아 2013.10.17

상주 침천정,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

상주시 북천 임란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침천정이다. 앞면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정자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는 지방 수령이 중앙에서 방문한 관리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거나 전쟁 등의 위급한 상황시 관내 주요 인사들이 회의를 하기 위한 장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정자인 영남루, 죽서루, 촉석루 등이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인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반면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침천정은 경치좋은 곳에 개인이 세웠던 정자와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이는 상주목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건물이 상산관이 그 규모가 크고 웅장했기때문에 손님접대나 회의에는 객사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침천정은..

조선 관아 2013.10.10

안산 안산읍성 및 관아 건물터

경기도 서해안에 위치한 안산은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장아구현이 설치된 이래 여러차례 그 명칭과 지위가 바뀌었는데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던 고려말 해안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안산군으로 승격된 이래 그 지위가 유지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개편으로 시흥,과천과 함께 시흥군으로 통합되었다가 이지역에 반월공단이 세워지면서 도시화되어 1986년 안산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인구 70만이 넘는 대도시로 인천과 함께 수도권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오늘날 안산은 서해안 갯벌을 간척하여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도시로 시화호가 있는 해안 주변에 도심이 형성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안산군 읍치는 도심 동북쪽 군포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리산 서쪽편 자락에 위치한 수암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은 국..

안산 안산객사, 옛 안산읍성에 남아 있는 안산군 관아 건물

안산군은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읍치는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 규모로 종3품 군수가 고을 수령이었다. 안산은 서해안 시화호 일대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수리산 서쪽 수암동에 읍성과 관아터가 남아 있다. 안산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때문에 해안에는 조선중기까지 초지진이 설치되었으며, 서해안 방어와 연안항로의 중요한 요지였다. 안산군은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에 폐지되고 수원시.시흥군 등에 편입되었다가 1970년대 안산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안산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산읍성이 있었던 안산시 수암동 일대에는 안산군 관아가 있었는데 옛 관아건물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지금..

조선 관아 2013.09.02

진주 경상우병영 관아 건물터와 문루인 영남포정사

진주성은 조선후기 경상우병영이 주둔하던 곳으로 공북문 안쪽 언덕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공간인 운주헌을 비롯하여 관덕당, 공진당 등 관아 건물과 무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다. 옛 관아건물들은 구한말 병영이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개편될 때 경상남도 감영이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부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이곳에 도청이 설치되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옛 관아 건물터에 인근에 있던 청계서원과 사당이 옮겨져 들어서 있고 옛 관아건물로는 병영과 감영 문루였던 영남포정사가 남아 있고, 공식적인 누각이자 남장대였던 촉석루와 관아 누각으로 사용되었던 북장대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국방상 주요한 요지에 설치된 군사조직으로 관찰사 또는 지방관인 목사가 겸..

조선 관아 2013.08.01

대구 경상감영 징청각, 관찰사가 머물던 거처인 내아

대구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관아건물들이 해체되면서 대구시와 경북도를 관할하는 많은 관청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원래 경상감영에는 응향당, 제승당, 응수당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옛 관아 건물로 관찰사 집무공간이었던 선화당과 살림집인 징칭각이 남아 있다. 선화당 뒷편에 위치한 징칭각은 관찰사가 머물던 살림집으로 1601년(선조34)에 대구에 감영이 설치될때 세워진 건물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6년(순조6)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일제감정기에 감영을 해체하고 감영에 경북도청이 설치될 때 많은 건물들은 없어졌지만 징칭각은 사무실로 개조하여 사용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 이곳에 중앙공원을 조성하면 대청마루만 있..

조선 관아 2013.04.15

과천 온온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관아 객사

과천시는 서울 남쪽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를 흐르는 양재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정부청사, 서울대공원, 경마장 등이 있는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이다. 고려시대 과천에는 과주가 설치되었고 조선초 태종대에 종6품 현감이 고을수령인 과천현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과천은 강남의 양재동, 사당동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충남, 호남 지역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교통로가 서울로 연결되는 관문이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과천현감은 그 직위는 종6품으로 그리 높지 않지만 남태령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는 수많은 교통로가 지나가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감사 등과 함께 지방관리 중에는 중요한 요직으로 정치.경제적인 이권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태령을 지키던 관리나 포졸들의 횡포는 당시 꽤 심했다고 한다. 옛 과..

조선 관아 2013.04.04

서산 관아문, 옛 서산군 관아 아문과 노거수

서산은 충남 서해안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가야산 서쪽편에서 태안반도 사이에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고장으로 동쪽으로 당진.예산, 남쪽으로 홍성, 서쪽으로 태안군에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산시에는 충청병영이 있었던 해미현과 서령군이 있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서쪽끝 태안반도 끝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세금으로 걷어들은 물자를 운반하던 조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장이다. 남쪽의 천수만, 북쪽의 아산만을 통해 바다와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때문에 고려말, 조선초 왜구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곳이며, 병자호란 이전까지 서해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 해미읍성에는 충청병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서산시청을 비롯한 서산시 주요 관..

조선 관아 2013.03.26

서산객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관아 건물

서산군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물인 객사 건물이다. 원래 서산시청 내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구한말 근대 초등교육기관을 세울때 대부분은 기존에 손님이 묵는 숙소로 이용했던 객사건물과 객사터가 초등학교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고 동헌건물은 읍사무소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서산군의 경우는 객사건물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읍사무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서산객사는 앞면 8칸의 '-'자형으로 생긴 큰 건물이다. 보통 객사건물은 '궐패를 모신 가운데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익랑형식으로 약간 지붕이 낮은 숙소건물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건물은 전체가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며, 내부 구성은 다른 객사들과 동일하다. 건물이 지어진 형태로 볼 때 구한말에 크게 ..

조선 관아 2013.03.23

순천 낙안읍성 옥사(감옥)와 연못

순천 낙안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지방고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부 해안가지역이기 때문에 평지에 읍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데, 동.서을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관청 건물들이 있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객사를 제외한 읍성내 관청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관청의 배치나 구성요소들을 잘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의 옥사는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하였던 건물로 다른 읍성과 다른 점은 관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큰 길은 관아로 연결되며 동쪽편에는 비상시 읍성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연못들이 있고, 연못안쪽에 옥사터가 있었다. 옛 옥사..

조선 관아 2012.10.21

광주 남한산성 행궁(사적480호), 비상시 국왕이 머물수 있는 행궁이자 광주부 관아 건물

남한산성에 있는 옛 광주부 관아 건물이자 국왕이 임시로 머물수 있는 행궁이 설치된 사적 480호로 지정된 남한산성 행궁이다. 이 행궁은 비상시 국왕이 임시 거처로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 역할을 하는 좌전과 우실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이후 없어졌다가 최근에 옛 기록을 참조하여 복원하였다. 행궁은 국왕의 거처로 정전과 편전에 해당하는 하궐과 국왕이 머무는 내전에 해당하는 상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쪽편에 광주부 관아 건물인 좌승당과 광주유수의 숙소라 할 수 있는 일장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왕을 수행한 인원들이 머물 수 있는 많은 행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강이남 일대를 다스렸던 큰 규모의 지방관청이 광주부 관아는 원래 남한산성 아래 하남시 일대에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충주 관아공원, 도심공원으로 변모한 옛 충주목 관아터

충주 지역은 삼국시대에 중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 충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984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충주목이 설치되어 구한말 행정구역개편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 행정단위인 목(牧)은 정3품의 외직문관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큰 고을로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2목을,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20목을 두었으며, 감영인 설치된 지역에서는 관찰사가 겸직하기도 했다. 충주지역은 남한강 중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강조운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으며, 조령과 죽령을 통해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해주는 육상교통로의 중심이기도 했다. 충주 관아공원은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읍성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 조성한 도심공원으로 충주목 동헌인 청령헌과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제금당이 남..

조선 관아 2011.11.03

충주 청령헌, 충주목 관아 동헌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목 관아터에 조성된 관아공원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충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인 청령헌이다. 이 건물은 구한말인 1870년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다시 세운 건물로 건물 자체로는 오래된 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한말에 지어진 관아 건물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앞면 7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는 그 규모가 큰편이다. 왼쪽 2칸은 온돌방,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오른쪽 1칸과 왼쪽끝 1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던 것을 1983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기존의 관아 건물 형식을 유지하면서 누마루를 비롯하여 세부적으로 구한말 건축양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

조선 관아 2011.10.23

강화유수부 이방청, 유사시 행궁 역할이 부여되었던 관아 건물

고려시대 대몽항전기간동안 궁궐이 있었던 강화 고려궁지에는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관아와 행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있었던 건물로는 행궁, 동헌, 이방천, 만녕전, 외규장각 등의 건물이 세워졌었는데 지금은 강화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강화에는 국방상 중요한 곳에 설치되었던 유수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강화유수는 종2품의 상당히 높은 관직에 해당된다고 한다. 강화유수부 관아는 강화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청이기는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비상시 국왕이 대피할 수 있는 행궁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존의 동헌이나 이방청 등의 건물도 비상시 중앙부처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상당히 크게 지었다고 할 수 있다. 1654년(효종5)에 강화유수 정세규가 세운 강화유수부 이방청은 다른 지방의 이방청이..

조선 관아 2011.09.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