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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7

강진 백련사, 다산초당과 함게 있는 고려 백련결사운동의 본산

강진 백련사는 강진만을 굽어보고 있는 사찰로 고려시대 무인집권기 및 대몽항쟁기에 불교개혁운동인 백련결사운동을 이끌었던 사찰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과 인접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백련사는 백련결사운동을 이끌었던 고려시대의 사찰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아니고,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왜구의 침입으로 폐사되었다가 세종때 재건되었다고 한다. 백련결사운동이란 고려시대 문벌과 결탁한 보수적인 교종세력에 맞서서 민중에 기반한 실천적인 불교를 표방했다고 한다. 당시 지눌이 주도한 선종 중심의 조계종과 함께 대표적인 불교개혁운동이었다한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에 다산초당에서 가까운 이 곳 백련사를 자주 들러 차를 마시고 백련사 주지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많은 사..

전국 사찰 2010.09.12

강진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 유배생활기간 실학을 완성한 곳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은 강진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만덕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초당이다. 지금의 건물은 50년대 다산유적보존회에서 기와집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하며, 앞으로 원래의 모습인 초당으로 복원될 예정이라 한다. 이 곳 강진의 다산초당은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가장 오랜기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다산의 외가에서 마련해 준 거처라 한다. 다산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종가집인 녹우당이 있는 해남이 이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서 다산의 실학사상을 정리하고 많은 책을 집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곳 다산초당에서 내려다 보는 강진만으로 풍경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다산 생가가 있는 양수리 부근 한강의 풍경과 조금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다산이 고향과 비슷한 곳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를 찾아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정조때 문신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그는 농업을 중시하는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저서로는 그의 유배생활 중에 저술한 ,, 경세유표 등이 포함된 등이 있다. 정약용 선생은 현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으며, 정조때에 벼슬길에 올라 많은 업적을 남겨 놓고 있는데 당시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시 사용한 한강 부교를 만든 것을 비롯하여 거중기를 개발하여 수원화성을 축성하는데 사용하는 등 과학적 지식과 식견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사후 노론의 표적이 되어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그의 형 정약전과 함께 유배되어 18년간 전남 강진 등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가 유배생활을 주로 했던 곳으로는 그의 외가인 고산 윤선도 고택이 있는 ..

다산초당 아래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귤동마을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에서 강진만으로 내려오는 길에 자리잡고 있는 강진 귤동마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 곳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셨던 다산초당을 오르는 길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다산초당을 처음방문하는 사람은 도로표지판을 따라서 찾아가다보면 다산유물전시관 주차장을 통해서 다산초당을 찾아가게 되는 이 곳 귤동마을을 통해서는 쉽게 다산초당을 찾아갈 수 있다. 귤동마을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20여년 가까이 유배생할을 했던 했던 다산초당 아래에 있는 마을로 다산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생활할 수 있도록 모셨던 사람들이었으며, 지금도 다산의 흔적을 찾아서 오는 많은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다산초당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강진 귤동마을 정겨운 시골 돌담길 분위기가 나도록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 ..

고택_정원 2010.08.31

강진 다산초당 천일각, 다산이 고향 생각날 때 강진만을 내려다 보던 정자

다산초당에서 연못을 지나면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책을 갖추고 손님을 맞던 사랑채 역할을 했던 동암이 있고, 동암을 지나서 조금더 걸어가면 강진만이 내려다 보인는 작은 정자인 천일각이 있다. 천일각에서는 강진만 바다와 바다건너 칠량과 천관산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보는 강진만은 넓은 바다는 아니고, 다산의 고향이자 생가인 양수리 부근 한강변의 다산생가 뒷동산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마도 다산은 이 곳 정자에서 고향생각을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산초당의 사랑채격인 동암에서는 다산이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건물은 다산초당과 같은 시기에 복원한 건물이다. 다산초당 동암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강진만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

조선 관아 2010.02.27

강진 백련사, 주불전인 대웅전

백련사의 중심 불전은 대웅전을 신라시대 창건된 이후 여러 차레의 전란으로 수차에 걸쳐서 중수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효종때 중수된 건축물이라 한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건축된 여러 대웅전 건물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앞면3칸, 옆면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다포계이다. 백련사 중심불전인 대웅보전. 팔작지붕, 다표계, 단층 등 전형적인 조선후기 건축물의 형식을 하고 있다. 대웅전 문살에는 장식을 많이 하지는 않고 있다. 대웅전 편액 전형적인 조선 시대 건축양식인 다포계 공포. 화려한 단청과 함께 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대웅전.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高麗) 때에는 팔국사(八國師)의 도량(道場)이었다고 하..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들어가는 길

강진만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백련사는 고려말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였던 사찰로 아름다운 숲과 강진만 바다를 볼 수 있는 매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사찰이다. 특히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는 길 주변에 높이가 평균 7m나 되는 동백나무들이 천그루이상 있는 곳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백나무숲의 조성에 다산 정약용선생이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알려진바는 없다고 한다. 백련사는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언덕위에 있는 자동차로 사찰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주차장 안내판에도 써 있듯이 20분 정도만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거리이고, 아름다운 동백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놓치기에는 아까운 길이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구구역임..

전국 사찰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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