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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속마을 13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남 4대길지이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마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한국의 전통 민속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이 마을이 위치한 양동리는 동해안을 따라서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형산강을 만나서 끊어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남쪽으로는 경주에서 발원하여 포항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이, 서쪽으로는 큰 하천인 기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는 상당히 넓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입지조건인 큰 하천의 중상류 지역에 산을 등지고,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하고 있는 마을로 봉화 닭실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천전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로 불리웠던 곳이다. 마을은 안계라는 작은 시내를 경계..

고택_정원 2012.07.18

경주 양동민속마을,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저택 관가정(보물 442호)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입지면에서나 건축형태에 있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보물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이다. 조선 중기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아들이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기본적으로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는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된 형태를 하고 있다. 마당과 넓은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채는 정자형태의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방들과 대청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의 방들도 바깥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간채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고택_정원 2012.06.08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형적인 마을서당인 강학당

경주 양동민속마을 입구에서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 여주이씨 집안의 서당인 강학당이다. 마을입구를 오가는 사람들과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앞면 4칸으로 어린학생들이 공부하던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양쪽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있는 구조이며, 건물 왼쪽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대청마루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서당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방의 호족들이 후세들을 교유시키기 위해서 세운 사립교육기관을 통칭하며, 당나라에서 유학과 문물 등을 많이 받아들였던 통일신라 이후 각처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대체로 서당은 공립교육기관인 향교나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 공부를 하던 마을단위의 ..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자인 심수정

경주 양동민속마을에는 10여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심수정이다.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오랜 기간동안 마을 서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종가집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고 있으며,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다.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누마루는 2칸 규모로 1칸은 난간이 있는 정자 형태로, 1칸으로 문이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심수정은 이언팔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철종대에 불탄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누마루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건물형태에 있어서 구한말에 유행했던 건물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 앞에는 서당으로 ..

고택_정원 2012.06.06

경주 양동민속마을, 회재 이언적 종가집과 보물 411호로 지정된 별채 무첨당

한옥 건물 중 보물로 지정된 많지 않은 건물 중 하나인 보물 411호 경주 양동 무첨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종묘에 배향되었으며 경주 옥산서원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은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앞면 5칸으로 3칸은 대청마루, 2칸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건물로 종가집 본채의 사랑채와는 별개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독서 등을 할 수 있는 정자와 비슷한 성격의 사랑채이다. 대청에는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첨당이 있는 이집은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자 손소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번이 살던 집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여주이씨의 종가집..

고택_정원 2012.06.05

경주 양동민속마을, 18세기에 지어진 고택 대성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어진 경주 양동마을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여러 집안이 살았지만은 대체로 조선중기 중종대에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손소의 후손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가운데 여주 이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로 지정된 고택인 무첨당 안쪽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고택들이 가장 많이 지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대에 지어진 대성헌이 있다. 이 집은 이언적의 11세손인 이능단이 18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손님들이 출입하는 길을 사랑채가 내려다 보고 있..

고택_정원 2012.06.04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경산서당

경주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서당이다. 경산서당은 헌종대에 회재 이언적의 후손인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운 서당인데, 원래는 마을 뒷편 안계저수지 안에 있던 것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선후기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은 대부분 처음에는 후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원 서당에서 출발하여 서원으로 바뀌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는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조선후기는 전국각지에 서원이 난립하던 시기로,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기가 쉽지가 않아서 서당의 형식을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당을 제외하고는 건물규모나 배치는 서원과 큰 차이가 없다. 경산서당은 현재 강당, 동재,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왼쪽편에 관리사로 보이는..

경주 양동민속마을, 천석꾼 부자가 살았던 큰 저택인 낙선당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양반들 집단주거지인 반촌이다. 이 마을에서 제일 안쪽으로는 조선중기 성종대 문신인 손소가 살았던 대종택인 서백당을 중심으로 손씨 후손들이 분가한 낙선당, 창은전사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그 중 이 마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낙선당은 이 마을 경주 손씨 대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서백당 안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망재 손숙돈이 분가할 때 지은 저택이다. 낙선당이라는 저택의 이름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낙선당 손종로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문간채, '-'자형의 사..

고택_정원 2012.06.02

경주 양동민속마을, 마을안쪽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경주손씨 대종택인 서백당과 주변 한옥들

양동민속마을은 영남지방 4대길지로 불리는 곳으로 지금도 양반들의 저택과 초가 160여호가 남아 있는 지주계층인 양반들이 살았던 반촌이다. 이 마을에 주민이 거주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도 여러집안이 이마을에 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주로 조선 중기 성종대 문신이 손소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손소는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며, 중종대에 판서와 우참찬을 지낸 손중돈이 아들이고,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외손자이다. 이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들은 대부분 이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양동마을 제일 안쪽에는 이 마을 ..

고택_정원 2012.05.31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정조대 분가한 후손들이 세운 저택(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고택)

경주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인 마을로 동해안을 따라서 이어진 백두대간이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형산강 지류이자 큰 하천인 기계천, 남쪽에는 형산강이 흐로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형산강을 중심으로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여주이씨와 경주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조선시대 마을입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넓은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앞쪽 언덕에 마을에 늦게 늘어온 여주이씨 집안 종택이 있고, 뒷편에는 이 마을에 먼저 터를 잡은 경주 손씨 대종택을 중심으로 경주 손씨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이 뒷편 언덕에 분가한 후손들의 저택이 많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

고택_정원 2012.05.30

경주 양동민속마을, 큰 저택인 두곡고택과 정자인 동호정,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소재한 양동민속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영남지방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반촌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낮은 산줄기를 따라서 150여채의 옛집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마을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채나 남아 있다. 넓은 평야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양반들의 저택이 들어서 있고, 논밭과 가까운 평지에는 노비들이나 소작농들이 살았던 초갓집들이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이 살던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양동민속마을은 중앙의 큰 길을 중심으로 주로 동남쪽을 바라보는 서쪽편 언덕에 대부분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으며, 후대에 조성된 저..

고택_정원 2012.05.29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 조선중기 유학자 회재 이언적이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보물 413호로 지정된 오래된 한옥인 독락당이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낙향하여 고향에 지은 사랑채이다. 현재 남아 있는 한옥건물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진 건물로 옥산천 계곡물이 흐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별장과 비슷한 성격의 한옥으로 옥산정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이언적은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 중 하나인 양동마을 출신이었나, 서울에서 벼슬을 물러난 후 이 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도 후손들이 이 집에 살고 있다. 독랑당 아랫쪽에는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으며, 옥산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13층석탑이 남아 있는 정혜사 절터가 있다. 지금도 옥산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인근에서는 넓는..

고택_정원 2012.05.28

경주 옥산서원(사적154호),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모신 서원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사적 154호로 지정된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때 문신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전 서원이다. 옥산서원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572년(선조5)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역인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세웠으며, 1573년에 선조로부터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옥산서원은 서원의 건축양식이 정형화된 후기의 서원들과는 달리 건물의 배치나 건축양식에 있어서 자유로우면서도 형식적이고 절제된 형식을 반영하고 있다. 건물은 앞쪽에 강학공간, 뒷편에 제향공간을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으며, 서원을 출입하는 길이 있는 방향에 다른 서원에 비해서 넓은 고직사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서원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누각건물이 무변루가 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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