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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돈대 12

강화 용두돈대(龍頭墩臺), 손돌목 해협을 지키는 돈대

용두돈대는 광성보에서 염하(강화해협) 해안의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손돌목돈대 아래에 볼 수 있다. 용두돈대는 고종8년(1871)에 손돌목돈대 아래 해안에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광성포대를 설치할때 외곽초소 겸 포대로 세워졌다고 하다. 용두돈대는 김포와 강화사이에서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편 광성포대, 덕진진의 남장포대, 김포쪽 덕포진 포대와 함께 강화해협(염하)을 지나다니는 선박을 공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손돌목은 강화해협 중에서도 그 폭이 가장 좁고 물살이 거센 곳으로 이 좁은 해협을 그냥 통과한 후 다시 밀물이 들어 올때까지는 퇴각하기도 상당히 어려운 지형을 하고 있어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라 할 수 있다. 이 해협을 손돌목이라 하고 인조의 무능함을 ..

강화 손돌목 돈대, 광성보 언덕에 위치한 돈대

강화 해안을 지키는 많은 돈대를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높은 곳에 위치한 손돌목 돈대이다.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 3개가 있으며, 여장은 벽돌로 쌓고 있다. 광성보가 관리하는 돈대 중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광성보 주변 포대와 돈대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이며, 내부에는 무기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 돈대 아래 해안가에는 용두돈대와 광성포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광성포대, 남쪽에는 덕진진에 속한 남장포대와 덕진돈대가 위치하고 있다. 초지진부터 광성보까지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포대와 돈대가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손돌목은 염하(강화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른 곳으로 청나라의 침입때 인조가 이곳을 건너서 피신했고,..

강화 북일곶돈대, 일몰이 아름다운 장화리마을에 위치한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해안 방어를 위해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승병과 어영군을 동원하여 40일만에 완공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인 강화도 서남부 해안을 감시하던 북일곶 돈대이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소재한 이 돈대는 검암돈, 장곶돈, 미곶돈과 함께 장곶보 소속으로 강화도의 서남쪽으로 돌출한 지형인 북일곶에 위치하고 있다. 북일곶돈대는 강화 서남해안으로 돌출한 북일곶 언덕 위에 세워진 돈대로 석축의 높이는 높은 곳이 2.4m이고, 전체 둘레는 120m 규모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돈대 내부에는 대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가 정면에 2개, 남.북 방향으로 모서리에 1개씩 4개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북일곶이 위치하고 있는 장화리마을은 강화에서도 해넘이 풍경이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

강화 장곶돈대, 강화도 서남단 해안을 지키는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 서남부 해안을 감시하던 장곶돈대이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소재한 이 돈대는 검암돈, 북일곶돈, 미곶돈과 함께 강화도 서남부 해안을 관장하던 장곶보 소속으로 석모도 남쪽해안과 마주하고 있는 돌출된 지형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도의 명산인 마니산 능선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는 농지나 마을이 거의 없는 편이다. 장곶돈대는 언덕위에 큰 돌로 둘레 95.7m, 높이 3m로 석축을 쌓았으며, 그 형태는 원형을 이루고 있다. 돈대 내부는 다른 곳에 비해서 약간 넓은 편이며, 바다를 향해사 4문의 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를 설치해 놓고 있다. 원래 성벽 위에는 여장을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강화 굴암돈대,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 바다를 지키던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바다를 감시하는 굴암돈대이다. 강화도 양도면 하일리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이 돈대는 강화해안방어를 위해 강화도호부에 설치한 진무영 소속의 돈대라고도 하며, 외포리에 있었던 정포보 소속이라고도 한다. 강화도 마니산 서북쪽 해안을 경계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 곳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돈대이다. 굴암돈대 북쪽으로는 가까운 곳에 정포보 소속의 건평돈대가 남쪽으로는 장곶보 소속의 송강돈이 있다. 굴암돈대는 원형으로 석축을 쌓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잘 다듬은 큰 화강석 석재로 석축을 쌓고 있어서 꽤 견고해 보인다. 이 돈대가 위치한 곳은 바닷쪽으로 돌출해 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

강화 망양돈대, 외포리선착장 뒷편에 위치한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지키는 망양돈대이다. 망양돈대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연결해 주는 카페리호 선착장이 있는 외포리선착장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망양돈대가 지키는 수로는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마다 중 그 폭이 가장 좁고 썰물시에도 갯벌이 잘 드러나지 않는 협곡과 비슷한 지형으로 강화해안에서는 선박이 정박하기 좋은 곳이다. 망양돈대는 석각돈, 삼암돈, 건평돈과 함께 내가면 외포리 '성안'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던 정포보 관할의 돈대이다. 외포리 선착장 서쪽편 언덕에 위치한 이 돈대는 높이 3m, 폭 25m, 둘레 120m 정도의 정방형돈대로 바다 방향으로 4문의 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와 성벽위에 여장을 두..

강화 계룡돈대, 강화도 서북쪽 제방 남쪽끝 작은 섬에 세워진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 남쪽 작은 언덕위에 세워진 계룡돈대이다. 계룡돈대가 위치한 곳에 원래 갯벌위에 있던 작은 섬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북쪽 무태돈대가 있는 창후리선착장까지 길게 쌓은 해안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을 북쪽편으로는 별립산, 봉천사, 고려산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곳으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고인돌이 주로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다. 남쪽편으로는 국수산과 황청리, 외포리 선착장이 있고, 석모도의 넓은 간척평야와 마주하고 있다. 갯벌위에 있었던 작은 섬에 쌓은 계롱돈대는 길이 30m, 너비 20m, 석축높이 3~5m로 작은 규모의 돈대이다. 북쪽편으로는 망양돈대가 있고 남쪽편으로는 지금은 남아 ..

강화 망월돈대, 바다를 막은 제방에 쌓은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에 위치한 망월돈대이다. 이 돈대가 위치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일대는 남쪽편 외포리 부근 국수산와 북쪽편 별립산 주변을 긴 제방으로 연결하여 간척한 곳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간척지는 조선후기 강화도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자체적인 식량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망월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내가천 수로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돈대는 해안가 높은 언덕에서 사방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에 이 곳 망월돈대는 해안가 평지에 약간의 둔덕을 만들어 그 ..

강화 무태돈대, 교동도 입구 바다를 감시하던 돈대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교동도와 강화 본섬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무태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총포와 화포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병자호란 이후에 나타난 방어시설로 강화도의 돈대는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승군 등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무태돈대는 인화돈 등과 더불어 인화보 소속으로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었던 교동도 남산포의 경기수영 외곽수비를 담당하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던 돈대이다. 석축으로 쌓은 직사각형의 돈대로 길이가 44m 정도이다. 돈대에는 바다방향으로 포좌4문과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무태돈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교동도와 강화본섬을 오가는 카페리호가 정박하는 창후리 선착장 북..

강화 삼암돈대, 석모도 앞 해로를 지키던 돈대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삼암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도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조선후기에 나타난 방어시설 형태이다. 조선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가 승군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삼암돈대는 숙종때 쌓은 53돈대 중 건평.망양.석각돈대와 더불어 정포보 관할하에 있었다고 한다. 이 돈대는 둥글게 쌓은 돈대로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 설치되어 있고, 성위에는 여장이 55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입문은 북쪽 1군데만 두고 있으며 내부에는 화약고를 설치했던 터가 남아 있다. 석모도를 오가는 카페리가 정박하는 외포리 선착장 서쪽편 ..

강화 분오리돈대, 드넓은 강화 갯벌과 서해안 낙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 남쪽 해안을 지키던 분오리돈대이다. 강화해안의 돈대는 조선 숙종대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4,300명과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의 승군 8,900명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돈대는 조선후기에 나타는 방어시설로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석축을 쌓고 크고 작은 포구나 총구, 여장을 설치하여 적을 방어하는 시설로 기존의 성곽과는 다른 개념의 방어시설이다. 분오리돈대는 강화도에 설치된 5진 7보의 군사조직에 속하지 않고 별도의 돈장을 두어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이는 서쪽의 송곶돈대와는 3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절벽에 세워진 요새로서 작은 성곽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강화해안진지, 김포 덕포진 포대

김포 대곶면 염하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덕포진이다. 덕포진은 조선시대 해안가 진영으로 포대와 파수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강화해안가 염하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초지진, 덕진진, 남장포대와 함께 서울로 들어가는 뱃길을 지키는 군사전략상 아주 중요한 요새로 특히 포대를 구성하여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와 함께 협공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포구인 김포 대명리 포구 인근에 위치한 덕포진은 언제나 소풍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조용한 역사 유적지로 역사체험과 소풍을 겸할 수 있는 좋은 명소라 할 수 있다. 김포 덕포진은 염하를 지나가는 선박을 향해 포를 발사할 수 있는 중포가 설치된 포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염하 건너편에 설치된 남장포대와 함께 가장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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