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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11

강화산성(사적132호), 남문 안파루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은 전체 둘레 7.2km의 큰 성곽으로 4개의 성문과, 2개의 수문, 남.서.북장대, 암문 등이 출입시설과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현재의 강화산성은 병자호란때 파괴된 것을 숙종대에 강화유수 허질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 궁성의 내성 규모로 남산과 북산을 연결하여 석축형 형태로 쌓은 것이다. 강화산성에는 남문인 안파루, 동문인 망한루, 북문인 진송루, 서문인 첨화루를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첨화루는 강화읍 남쪽편 지역에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다. 남문은 서북쪽 하점면과 송해면을 제외한 강화도 대부분 지역 사람들이 사용했기때문에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성문이었으며, 자연스럽게 남문 주위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남문을 이용한 사람의 통행이 많았기때문에 서울 보신각종처럼..

강화산성(사적132호), 남산 정상(해발223m) 남장대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던 남장대가 있는 남산은 해발 22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에 고려산(해발 436m)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없어 멀리 한강하구와 개성지역, 동쪽으로는 문수산성, 갑곶나루와 염하(강화해협), 서북쪽으로는 강화고인돌이 있는 송해면 일대의 들판과 해안, 서쪽으로는 고려산 고갯길과 국화저수지, 동남쪽으로는 팔만대장경을 새겼던 선원사 절터가 있는 선원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유수부 관아가 행궁이 있는 강화읍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강화산성은 둘레 7 km에 이르는 규모가 큰 산성이지만 실제로는 고려시대 대몽항전을 위해 쌓았던 성곽 중 고려궁 주변에 쌓은 궁성에 해당하는 내성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강화산성은 서울에서 강화..

강화산성(사적132호), 석수문에서 남장대 아래 암문까지

강화산성 성벽은 서문과 석수문을 지나면 해발 22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강화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남장대가 설치된 남산으로 성벽이 이어진다. 남산은 관아와 행궁이 있는 북산에 비해서 경사가 가파르고 주변과 마을이나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고갯길이 많지 않은 편으로 실제로 남산 성곽은 적이 공략하기 힘들고 주변지역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도 많지 않은 편이며 남산 정상 남장대 아래 암문을 통해서 능선길을 따라 강화도 남쪽지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강화산성은 강화읍 남쪽 남산과 북쪽 북산을 연결한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는 산성인데, 산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은 지역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용이하나 큰길과 연결되는 동쪽과 서쪽은 평지에 석축을 쌓았기때문에 실제로 적의 공격에 취약한 부분..

강화산성(사적132호) 서문 첨화루와 구한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강화읍 중심부를 지나서 강화지석묘 방향의 48번 국도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산성의 서문과 성루인 첨화루이다. 지금은 서문 옆에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성벽이 북쪽 북산과 남쪽의 남산을 연결하고 있다. 강화산성은 전체 약 10 km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산성이자 읍성의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 산성 성곽은 북산 능선과 남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석축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도로가 지나가고 마을이 형성된 남문과 서문 주위의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되고 있다. 서문 주위의 성벽 서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언덕까지의 성벽은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서문 주변 일부만 최근에 성벽을 복원해 놓고 있다. 서문 안쪽으로는 구한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장소인 연무당 옛터가 있고, 또한 ..

강화산성(사적132호) 북문 진송루와 주변 성벽

강화읍 관아와 행궁이 있던 관청리에서 북산 고갯길을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강화산성 북문과 문루인 진송루가 있다. 강화산성 북문은 행궁에서 한강하구 바닷가에 위치한 송해면 일대와 연결해주는 교통로이지만, 서문이나 동문을 통해서도 송해면으로 갈 수 있기때문에 통상적인 교통로라고 보기는 힘들고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과 마찬가지로 강화산성이 함락되는 경우 국왕이 피신할 수 있는 도주로에 해당하는 길로 보인다. 북문이 있는 고갯길은 남.서.동문과 달리 비고적 높은 고갯길이며, 주변에는 민가가 거의 들어서 있지 않으며, 한강하구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북문 동쪽으로는 북쪽해안을 경계하면서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북장대가, 서쪽으로는 고려산 북쪽 송해면 일대를 감시할 수 있는 서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

강화산성(사적132호) 북장대터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남산, 북산 그리고 서문 부근 3곳에 장대를 세워놓고 있다. 그 중 북장대는 북산 정상 부근 강화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화산성 북장대는 강화읍과 산성 북쪽 송해면 지역과 연결해주는 고갯길에 있는 암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북문인 진송루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서 조금만 걸으면 오를 수 있다. 북산이 해발 140m로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인데다 진송루가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어 약 5~10분 정도 걸으면 북장대가 있던 봉우리를 오를 수 있다. 북장대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봉우리까지 걸어서 올라온 수고에 비하면 그 전망은 꽤 뛰어난 편이다. 북장대에 오르면 강화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한강하구와 그 너머 북녁땅..

강화산성(사적 132호), 동문에서 북산으로 연결되는 성벽

강화읍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북산 해발 14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강화읍 북쪽을 장벽처럼 막아주고 있다. 고려시대 궁궐과 조선시대 행궁, 관아가 들어서 있는 관청리는 대부분 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북산은 관청리에서 동쪽편 출입문인 동문과 북산 서쪽편 고갯길에 위치한 북문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으며, 능선을 따라서 북문과 서문 사이가 석축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곽길을 따라서 북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멀리 개성 지역 평야와 한강하구, 동쪽으로는 조선후기 강화도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한눈에 들어오기때문에 한강하구를 통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강화도가 고려시대 이후 국방상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의 유적지로 그 중요성이 강..

강화산성(사적132호), 동문인 망한루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을 두고 또한 4개의 암문, 2개의 수문을 두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파괴했던 것을 숙종대에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강화산성 4개의 성문 중 동문은 염하를 건너는 나루터인 갑곶진과 한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연미정 부근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동문은 안쪽으로는 '망한루', 바깥쪽에는 '강도동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궁과 관아가 있는 관청리 일대와 직접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주로 강화부를 방문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 동문은 구한말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2000년대에 복원하였다. 당시 프랑스군은 동문을 돌파하여 강화부 관아와 행궁을 불태우고 규장각에 있던 많은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 동문 동쪽에는 낮은 동..

강화 석수문, 강화산성 서문 부근 동락천에 세운 수문

강화 석수문은 강화산성 서문에서 약간 남쪽편에 위치한 수문이다. 강화 고려산에서 발원하여 강화읍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에 설치했던 작은 수문으로 강화산성을 구성하는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때 전국적으로 국방시설을 재정비 할때 강화산성을 쌓으면서 설치한 수문으로 조선시대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토목관련 유적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유적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수문은 이 수문의 3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수문은 잘 다듬은 화강석을 여러단 쌓아 교각으로 만들 그 위에 화강석으로 홍예를 쌓아 올렸다. 구한말에 갑곶나루로 옮겨 돌다리로 사용하다가 현재의 위치로 70년대에 옮겨져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복원된 부분이 있어서..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현장 강화산성 (고려성)

강화산성은 강화도 내에서 대몽항전을 수행했던 강화읍내에 있는 성입니다. 정식명칭은 강화산성입니다만 산성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읍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입니다. 북쪽으로는 대몽항전씨 최씨정권이 개성을 생각하며 이름지은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을 연결하여 강화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서 국방상 상당히 중요했던 성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城) 중에서 내성(內城) 역할을 했던 성이고 요지를 연결한 중성(中城)과 해안가의 외성(外城)으로 겹겹히 강화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고와의 화친 후와 병자호란 이후에 강화의 궁궐 건물과 성벽 등 방어 시설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 강화산성 탐방 1. 강화산성 서문/석수문/연무당 옛터 2. 강화산성 남문 3. 강화산..

강화 강화산성, 해안가에 벽돌로 쌓은 강화전성

강화해안에 오두돈대 아래에 있는 벽돌로 쌓은 전축성인 강화전성입니다. 강화산성을 구성하고 있는 강화외성 중의 일부분으로 대몽항쟁 기간부터 존재해 왔던 성벽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이 강화외성의 전축성은 수원화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전축성이며 수원 화성보다 쌓은 연대가 약간 빠르다고 하며, 건축사적으로 의미있는 유적이라 합니다.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에서 강화 강화도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인 강화외성 중의 하나인 오도돈대 아래 갯벌위에 쌓은 성벽이 강화전성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강화전성은 일반적으로 성을 쌓는데 쓰이는 다듬은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리 전축성입니다. 석축과 다양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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