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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마을 4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경남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로 풍천노씨 입향조인 조선초 문신 노숙동이 처가인 이 마을에서 처음 자리잡은 곳이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일렬로 배치되어 개방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나 형태 등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마을의 대종가이지만 저택의 규모나 형태가 소박하면서도 검소해 보인다.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했던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개평(介坪)이란 말은 두개의 하천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함양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가. 조선중기 풍..

고택_정원 2016.10.10

함양 개평마을, 일두고택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인 일두고택이다. 조선중기 유학자이자 문신인 정여창이 살았던 집터에 후손들이 다시 크게 지은 것이다. 경남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대저택을 넓은 부지에 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었으며, 사랑채는 구한말에 지었다. 폐쇄적인 구조의 경북북부 지역의 한옥과 달리 ‘-’자형구조를 하고 있으며 넓은 마당을 쓰고 있다. TV드라마 '토지'를 비롯하여 많은 사극에 등장했던 한옥이다.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마을 특산물로는 정여창 종가에서 손님을 접대..

고택_정원 2016.09.28

함양 개평마을, 하동정씨 고가

함양 개평마을 고택 중 하나인 하동정씨 고가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자형으로 앞면 6칸의 상당히 큰 규모이다. 사랑채는 앞면 3칸으로 별당 또는 아래채 건물 규모이다. 사랑채가 있던 자리에는 정원수가 있는 넓은 마당으로 바뀌었다. 마을 대저택인 일두고택과 비슷한 시기인 1644년에 지었다고 한다. 양반들의 세거지였던 개평마을의 명성에 걸맞게 이 집 주인은 성균관대 학장과 차관을 지냈다고 한다.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하동정씨, 풍천노씨,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이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함양 개평마을 하동정씨 고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정여창의 후손이 분..

고택_정원 2016.09.21

함양 개평마을, 노참판댁 고가

함양군 개평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하나인 노참판댁 고가이다.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가 일렬로 배치된 전형적이 남부지방 한옥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고 검소한 편이다. 구한말 바둑계의 일인자였던 노근영이 태어나고 살았던 유서깊은 집이다. 이 가옥이 위치한 개평마을은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들의 세거지로 하동정씨, 풍천노씨와 초계정씨가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인 정여창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남아 있는 노참판댁 고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라하며 앞쪽에 사랑채가, 뒷쪽에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구한말 도시한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간채. 사랑채. 앞면 4칸 규모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건축적으로 잘 ..

고택_정원 201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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