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경희궁 7

[경희궁] 영조의 어진을 모신 태령전과 서암

조선시대 서궐이라 불리웠던 경희궁은 정전.동궁 등 1,500여칸에 이르는 큰 궁궐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되었고,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었다. 태령전은 경희궁에 있던 많은 전각들 중 하나로 국왕의 집무장소였던 편전이 자정전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던 건물이다. 원래는 특별한 용도가 없었던 건물인데 영조대에 영조자신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로 사용하면서 태령전이라 불렀다. 이 건물 또한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던 것인데, 경희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복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태령전 뒷편에는 서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왕암이라고 하며, 이곳에 왕기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이 서궐을 창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경희궁이 있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 정원군의 사..

궁궐_종묘 2012.08.19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편전인 자정전이다. 편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등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경희궁은 국왕이 많이 머물렀던 궁궐이 아니었기때문에 편전이기는 하지만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가 임시로 보관되기도 하였다. 자정전은 편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로 행각으로 둘러져 있다. 우물마루가 깔려 있는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과는 달리 정전처럼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건물을 크게 꾸며 놓고 있지는 않다. 광해군대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을 들어가는 출입문인 자정문. 규모가 크지는 않고 소박해 보인..

궁궐_종묘 2012.08.17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과 조정

경희궁은 원래 있었던 수많은 전각 중에서 정전영역에 해당되는 숭전전과 편전에 해당되는 자정전만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광해군 때 건립된 건물로 원래의 건물 일제의 의해 개조되어 동국대에서 법당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증을 통해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에 정전으로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하였다. 지금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많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국왕 즉위식이 있었고 궁궐로 사용되었던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서궐이라고 불렸던 경희궁은 조선시대 5대궁궐 중 하나로 임진왜란 직후인 광해군 때 창건되어 조선후기 동안 국왕이 거처하던 궁궐로서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원래의 경희궁은 정전인 숭전전을 ..

궁궐_종묘 2012.08.10

[경희궁(慶熙宮)] 흥화문(興化門)과 금천교

흥화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많은 수난을 받았던 경희궁의 정문이다. 경희궁은 일제에 의해 헐려서 없어지고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다 최근에 복원된 궁궐이다. 정문인 흥화문은 일제에 의해 이토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한떄는 신라호텔이 있는 장충동으로 옮겨져서 호텔정문으로 사용되다 경희궁이 복원됨에 따라 현재의 장소에 옮겨졌다고 한다. 경희궁 앞으로는 서울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광화문과는 아주 가까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은 창덕궁을 비롯한 기존 궁궐의 정문이 2층 문루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반해서 단층으로 지어졌다. 규모는 앞면 5칸에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광해군이 경덕궁을 세울때 공사중지를 주장하는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궁궐_종묘 2012.07.30

서울 새문안과 경희궁 주변 주택가 골목길, 양옥이라 불렀던 60년대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

서울 도심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 대로 서쪽편에 조선시대 궁궐 중 서궁에 해당하는 경희궁 주변에는 조선시대에는 새문안, 비변삿골, 메주가 맛골 등 여러 마을이 있었는 대체로 한양도성의 서대문에 해당되는 돈의문 안쪽이라하여 새문안이라고 부른다. 세종문화회관 부근은 조선시대 중요한 관청인 비변사가 있어서 비변삿골이라고 하며, 새문안교회 주변에는 관청 납품용 메주를 쑤는 곳이 있어 메주가맛골이라고 하며, 그 안쪽은 돈의문 안쪽에 있다고 해서 새문안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서대문은 조선태조때에는 서돈문이 있었는데, 세종대에 서돈문을 폐하고 돈의문을 현재의 위치에 세웠기때문에 새문안 또는 新門內라고 불렀다고 한다. 새문안은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이었던 육조거리인 광화문 대로와 아주 가까이 있었..

한국의 풍경 2012.07.21

서울 경희궁(慶熙宮), 일제의 수난을 많이 받은 궁궐

조선의 궁궐 중의 하나인 경희궁입니다. 오랫동안 서울고등학교 부지가 있던 장소로 지금은 앞쪽에 서울 역사박물관입니다. 한때는 임금의 즉위식도 치러지고 거처하기도 했던 궁궐이지만 규모가 제일 적었고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일제에 의해서 수난을 가장 많이 받았던 궁궐입니다.  정전인 숭전전 건물은 일본 사찰에 팔려서 지금은 동국대 내부에서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정문이 흥화문도 그때 옮겨져서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입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조선의 궁궐이었던 점을 돌이켜보면 고증을 통해서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조선의 궁궐 중 가장 많은 수난을 받았던 경희궁의 정문입니다...

궁궐_종묘 2010.09.03

경희궁 숭정전, 법당으로 쓰이는 비운의 궁궐 전각

경희궁 숭정전 건물은 서궐이라고 불리던 경희궁의 정전으로 일제 강점기때 해체되어서 일본인 사찰의 법당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동국대 캠퍼스 정문 언덕에 남아 있다. 조선후기 광해군때 지은 건물로 일제가 경희궁을 없애고 일본인 학교인 현 서울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비운의 건물이다. 경희궁은 국왕이 항상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방의 행궁처럼 임시로 머무러던 이궁으로 크게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궐의 정전인데 이를 허물어서 사찰 법당으로 사용했다는 것에서 일제나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느끼게 한다. 이 전각은 남산 기슭에 있는 조계사 법당으로 쓰다가, 1976년에 이 곳 동국대학교로 옮겨져서 학교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여러차례 장소를 옮기고 궁궐 ..

궁궐_종묘 2010.09.0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