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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부 3

광주 남한산성 관아 건물인 침괘정과 천흥사종이 걸려 있었던 종각

광주부가 있었던 광주부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많은 관청들과 성벽을 관리하던 사찰과 큰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지고 관아건물로는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연무당과 연못인 지수당,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지만 관아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침괘정 정도만이 남아 있다. 조선 영조대에 지어진 침괘정은 문헌상 기록으로 무기제작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건물의 형태는 온돌방과 마루바, 회랑 역할을 하는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는 집무실로 사용했던 관아 건물로 보인다. 아마도 부근에 무기를 제작하는 공방과 창고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한산성 행궁 앞 광장에는 산성내에 시간을 알려주는 종각이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국보 280호로 지정된 천흥사 종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수도 ..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산성도시를 세우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국방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숙종대와 영.정조대에 남쪽 성벽 부근을 비롯하여 방어상 취약했던 지점에 옹성을 쌓는 등 많은 보완이 있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한강 동남쪽 지역을 관장하던 광주목 관아를 옮기고 행궁을 건설하는 등 행정적으로도 보완이 있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갖춘 유일한 행궁으로 비상시 국왕이 거처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였다. 남한산성을 관장하던 광주목사는 원래부터 정3품의 높은 관직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부로 승격하여 종2품의 부윤 또는 정2품의 유수가 수장으로 있었으며,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청 수장인 수어사도 겸하게 되었다. 평사시 남한산성에는 약 천명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주민은 4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산성을 축..

[경기도박물관] 남한산성특별전, 남한산성의 축성과 무기류

남한산성은 광주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한성백제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을 쌓은 주장성에서 오늘날과 같은 산성의 모습으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전기에도 효과적으로 몽고군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다.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등장한 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조 2년부터 4년에 걸쳐 주변 지형에 따라 오늘날의 형태와 비슷하게 축조되었으며, 행궁과 관아시설, 4개의 대문과 장대 등을 갖추어 유사시를 대비하고 했다. 행궁은 서쪽의 청량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향으로 건축되었고, 중요 관청의 위치와 방향 및 도로 역시 행궁의 방향을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산성안에는 산성을 축조할 때 동원된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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