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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 11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사굴산문(闍崛山門)과 조계종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문(闍崛山門)이다. 사굴산문은 범일(梵日, 810~889년)이 846년에 강릉 사굴산 굴산사(掘山寺)에서 처음 열었다. 범일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16년간 머물다 847년 귀국하여 굴산사를 창건한 후 40여 년간 머물면서 선법을 베풀고 제자를 가르쳤다. 범일의 제자 행적은 당나라에 유학한 후 귀국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구산선문 중 사굴산문이 가장 번창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 초 혜소국사 혜조(慧照)가 사굴산문을 이끌고 천태종에 밀려 위축되고 있던 선종을 크게 부흥시켰다. 그는 송나라에 유학하여 당시 유행하던 선풍(禪風)과 유교와 융합되는 경향을 체험했으며 왕명으로 송과 거란의 대장경 등을 가져오는 등 고려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사굴산문..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봉림산문(鳳林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봉림산문(鳳林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원감대사 현욱(玄昱, 787~869)이 봉림산문을 처음 열었다. 현욱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13년간 머물면서 선법(禪法)을 배웠으며 837년 귀국하여 남원 실상사에 머물다 왕명에 따라 여주 고달사(高達寺)를 크게 중창하고 선법을 베풀었다. 현욱의 제자 진경대사 심희(審希, 855~923년는 김해지역 호족의 후원을 받아 창원에 봉림사를 창건하여 본격적으로 봉림산문을 형성하였다. 봉림사는 후삼국 전란 중에 지역 호족들이 몰락하며서 쇠퇴하여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며 여주 고달사는 고려초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하였다. 여주 고달사(高達寺) 여주 고달사는 창건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구산선문 봉림산파를 ..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사자산문(獅子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철감선사 도윤(道允, 798 ~ 868년)이 처음 열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의 제자 징효 절중(折中, 826 ~ 900년)에 의해 산문이 형성되었다. 도윤은 28세 때 당나라에 들어가 22년간 머물며 선법(禪法)을 배웠으며 당나라 회창폐불로 847년에 귀국하여 선법을 베풀었다. 금강산에 머물다 말년에 화순 쌍봉사에서 머물다 입적했다. 징효대사 절중은 금강산에서 철감선사에 선법을 배웠으며 전국 각지를 유랑하면서 수행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자산문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영월 사자산 흥녕사(興寧寺), 화순 쌍봉사(雙峯寺) 등이 있다. 영월 사자산 흥녕사(興寧寺, 현 법흥사)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사자산 중턱에 위치한 법흥사(法..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성주산문(聖住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이다. 통일산라 말 문성돵 때(846년) 무염이 보령 성주사에서 처음 열었다. 낭혜화상 무염(801~888년)은 무염은 태종 무열왕 8대손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20여년 동안 머물면서 선(禪)을 배웠다. 845년 귀국하여 성주사에서 머물면서 베풀면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그중 현휘는 고려 태조에 의해 국사가 되었으며 충주 정토사에서, 대통은 제천 월광사에서, 여염은 양평 보리사에 머물면서 선법을 선양하였다. 성주산문은 고려초 왕실을 후원을 받아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강 일대에 주요 사찰들이 위치하고 있다. 낭혜화상탑비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업적을 자세히 적고 있는데 당대 최고 문인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 최인곤이 글씨를 썼다. 비..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희양산문(曦陽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이다. 봉암사(鳳巖寺)는 통일신라 승려 지증국사 도헌(道憲)이 머물렀다 하여 그를 개산조로 여겨졌는데 그의 비문에 따르면 실제 희양산문을 열지 않았고 고려초 봉암사를 크게 중창한 정신대사 긍양(兢讓, 878 ~ 956년)이 고려초에 봉암사에 머물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긍양은 당에 유학하여 25간 머물면서 선(禪)을 배우고 돌아왔다. 고려초희양산문에 속한 사찰로는 희양산 봉암사를 비롯하여 금강사 유점사, 포항 보경사 등이 있다. 문경 희양산 봉암사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는 통일신라말 지증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희양산문의 종찰로 참선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선도량으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47년..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동리산문(桐裡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동리산문(桐裡山門)이다. 통일신라 말 승려 혜철(惠哲, 785~861년)이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태안사(泰安寺)에서 동리산문을 열었다. 혜철은 경주 출신으로 영주 부석사에서 화엄(華嚴)을 배웠으며 813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법(禪法)을 배웠다. 귀국 후 곡성 태안사에 머물렀다. 고려 건국과 도참설(圖讖說) 등에 큰 영향을 미쳤던 도선(道詵)을 비롯하여 후백제 견훤의 추앙을 받았던 경보 등이 동리산문을 계승하였다. 혜철, 도선 등 동리산문 주요 승려들은 화엄을 먼저 배우고 선법(禪法)을 계승한 것으로 볼 때 화엄종과 긴밀한 관계였던 것을 보인다. 동리산문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곡성 동리산 태안사(泰安寺)를 비롯하여 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광양 중흥사, ..

통일신라 불교 구산선문 가지산문(迦智山門)

통일신라 선종(禪宗)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장 먼저 선종을 이끌었던 가지산문(迦智山門)이다. 가지산문은 개창조인 도의(道義)가 784년 당에 유학하여 중국 선종을 이끌었던 혜능(惠能)이 머물렀던 보단사(寶檀寺)에서 선종을 배웠으며 821년 신라로 돌아와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염거(廉居)는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렀으며 선풍을 확산하였다. 홍척(洪陟), 체징(替徵)이 염거에게 선법을 배웠으며 체칭은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에 머물면서 가지산문이 형성되었다. 체징은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강진 무위사에 활동한 선각대사가 법통을 계승하였다. 고려초 선종은 일시 침체하였으나 12세기에 학일(學一)이 운문사에 머물면서 다시 부각되었으며 13세기 후반 일연(一..

영월 법흥사, 선종 구산선문 중 한곳

영월군 사자산 중턱에 위치한 법흥사(法興寺)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면서 창건한 흥녕선원이 있던 곳으로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이다. 통일신라말 진성여왕 때 전쟁으로 불타버리기 전까지 참선도량으로 크게 융성하였다.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고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진 곳에 지어진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손꼽힌다. 법흥사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중건한 건물들이다. 사찰내 흥녕선원을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탑과 탑비(보물 612호), 자장율사가 수행하던 곳이라는 석분 등이 남아 있다. 법흥사가 있는 사자산과 주변 계곡의 경관도 빼어나다. 영월 사자산 법흥사.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중 사자산..

전국 사찰 2018.01.23

문경 봉암사, 현대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수행사찰

봉암사는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김천 직지사의 말사로 되어 있지만 승려들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참선승방으로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조계종 내에서도 그 위상이 높다. 사찰내에는 국보로 315호로 지정된 지증대사탑비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 정진대사 승탑과 탑비, 삼층석탑, 극락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원래 삼층석탑이 있는 경내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 동쪽편에 큰 규모의 대웅전을 짓고 주불전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사찰 서쪽편에는 대표적인 참선도량답게 큰 규모의 승방을 두고 있다. 이 사찰은 일반 신도에는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하고 있는 참선도량답게 다른 사찰에 비해서 승려..

전국 사찰 2013.06.20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 섬세한 조각상이 있는 승탑과 최치원이 글을 지은 탑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이다. 지증대사 승탑은 통일신라말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대표하는 것으로 2층의 기단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승탑 각부분에 화려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8각형으로 각면이 밑단에는 사자를 조각하였으며, 기단 윗단에는 전설속 동물인 가릉빈가를 새겨 놓고 있다. 이 승탑의 가장 특징부분인 가운데 받침돌에는 당시 악기를 보여주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다. 8각으로 이루어진 탑신에는 앞.뒤로 문을 새겨 놓고 있으며, 사천왕상과 보살의 모습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비는 비는 지증대사의 승탑을 세우면서 그 내력..

강릉 굴산사지(사적448호)와 당간지주(보물86호), 통일신라 선종사찰인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굴산 굴산사 절터

굴산사지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굴산사는 통일신라후기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후기 선종을 크게 전파한 구산선문 사찰 중 하나이다. 범일국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 굴산사에서 40년동안 지내면서 불법을 공부하고 전파하였다. 구산선문은 기존 교종의 교리 중심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주는 본래 의미를 전한다는 선종의 성격을 갖고 있다. 통일신라말기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지방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유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의상대사의 화엄십찰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불교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굴산사는 후삼국시대 세력균형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

절터 201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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