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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전각 2

[창경궁] 통명전(보물818호)과 양화당, 대비가 거처하던 창경궁의 중심 공간

창경궁은 원래 세종때 상왕인 태종이 거처하기 위해서 처음 조성되었으며, 그 후로는 왕실의 어른인 대비들을 위해서 성종대에 창건된 궁궐이다. 창경궁은 왕의 거처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비를 비롯하여 많은 후궁들과 그들의 소생을 비롯하여 주요 왕실 가족이 거처하던 공간이었다. 창경궁 안쪽 후원과 가까운 곳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통명전과 양화당은 창경궁의 핵심적인 건물로 통명전은 국왕이 거처하는 침전으로, 양화당은 대비가 거처하는 곳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국왕은 대비의 거처 근처에서 머물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통명전은 대비의 거처인 양화당과 함께 대비가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렴청정 기간 등 대비의 위상이 높았을 때, 대왕대비가 존재했을 때, 또는 왕의 생모가 대비가 아닌 경우 등 여러 ..

궁궐_종묘 2012.09.14

[경복궁, 조선의 법궁] 태원전,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션던 건물

경복궁 제일 뒷편으로 걸어들어가면 새로이 단장한 일군의 건물군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던 태원전이다.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태원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곳 태원전은 평상시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국장이 있을때 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보통 국왕이 승하했을때 시신을 모신 관은 빈전에 안치하면서 국장절차가 시작되며 왕릉을 조성하고 발인할 때까지는 5개월이 소요된다. 그 이후에는 신주를 삼년상 기간동안에 혼전에서 모시는데, 그 장소가 경복궁에선는 태안전이 그 역할을 한다. 실제로 고종이 이 태안전을 세운 이후에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한 기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건물인 관..

궁궐_종묘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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