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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11

[부산박물관] 삼국시대의 부산

부산지역은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구석기시대 이래로 인류가 정착해서 살아왔던 지역으로 많은 유적지들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지나면서 도구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늘어남에 따라 촌락을 이루어 살기시작했으며,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던 촌락들이 점차로 온천천과 수영천이 흐르는 동래지역을 중심으로 성읍국가를 형성하였다. 삼한시대에는 변한12국 중 하나인 독로국이 자리잡았으며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부산은 김해의 구야국과 함께 가야연맹체에서 가장 강력했던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발달한다. 동래의 복천동고분군은 이지역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당시 이지역의 번영을 보여주는 큰 무덤들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김해의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평가받고 ..

지역박물관 2013.06.14

김해 수로왕릉 숭선전과 숭안전, 수로왕과 역대 금관가야 왕들의 위패를 모신 전각

수로왕릉은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시조이자 금관가야을 건국한 수로왕의 능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답데 그 능역은 상당히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대체로 유교적 형식을 갖추고 있는 조선왕실의 종묘와 유학자들을 모신 서원의 형식이 혼합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로왕릉은 원래의 왕릉에 봉분과 문.무인석 등은 조선왕릉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며, 그 옆으로는 종묘 정전에 해당하는 수로왕과 허황옥의 위패를 모신 숭선전, 역대 가락국 왕들의 위채를 모신 숭안전,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제기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는 박혁거세를 모신 숭덕전, 미추왕릉 앞쪽에 미추왕,문무대왕,경순왕을 모신 숭혜전, 탈해왕릉의 숭신전을 들 수 있다. 수로왕릉 능역은 대체로 삼국유사에 기..

[김해박물관] 가야의 대외교류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한반도남부지역에 자리잡았던 진국과 삼한시대에도 한반도는 한.중.일 무역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유 중 하나가 고조선이 해상연안무역을 통제하면서 이익을 얻었기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생겨났던 많은 성읍국가들 중 상당수가 한.중.일 해상무역로에 위치한 충청도 서해안, 영산강 하구의 나주지역, 한반도 동남부의 사천, 창원, 울산지역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청동제 의기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가야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잇점으로 고대 이래로 한반도와 일본, 중국을 연결하는 주요 거점 중 하나로 파도가 거센 대한해협을 건너기 위해 잠시..

지역박물관 2012.04.23

김해 예안리 고분군(사적 261호), 밭으로 변해버린 금관가야 고분군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낙동강 서쪽편 대동리 들판에 소재한 고대국가인 금관가야의 고분군이다. 다른 고분들과는 달리 봉분이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대부분 밭으로 변해버린 곳이다.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고분은 금관가야 지배층이 아닌 일반인들이 묻혔던 곳으로 덧널무넘, 구덩식돌넛무덤, 독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등 총 181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은 가야시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 변천한 가야의 매장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약 2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부산대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고 하며 일부는 김해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예안라 고분군은 도로변에 있는 밭에서 발견된 것으로 얼마전까지는 다..

[김해박물관] 금관가야와 대가야, 가야연맹체를 주도했던 세력

가야는 삼한시대 변한에 해당하는 낙동강 서쪽을 중심으로 군소 성읍국가들이 발전한 연맹체 형태였다. 주로 낙동강 하류의 금관가야, 가야산일대의 대가야, 남해안 일대의 소가야, 함안지역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국가들이 철을 기반으로 한.중.일 연안무역의 중심지로서 삼국시대에는 백제, 신라와 패권을 다투었다. 구지봉 전설과 김해김씨의 시조로 잘 알려진 수로왕이 서기 42년에 세운 금관가야는 가야, 남가야, 가락국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구야국에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남해안 연안무역로를 장악하여 해상활동과 낙동강을 통한 철의교역을 바타으로 전기 가야를 주도했다. 금관가야의 유적지로는 왕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김해 봉황대 유적과 통치자들의 무덤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 등이..

지역박물관 2012.04.16

김해 봉황동유적지 (사적2호), 초기 금관가야의 주거유적지

김해 봉황동 유적은 김해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수롱왕릉 정면에 위치한 봉황대라고 불리우는 구릉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대규모 생활.생산유적이다. 이 일대는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생산과 주거의 거점지역이었으며, 이후 대규모의 주거지, 고상건물지, 방어시설, 한국 최대 깊이의 패총 등이 발굴되는 점 등으로 보아 금관가야 지배층 집단의 중심 거주지역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2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황동유적은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남동쪽의 조개무덤인 회현리패총과 봉황대 일대의 주거유적을 합쳐서 봉황동유적지로 확대지정되어 있다 봉황동유적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선사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집터와 조개더미로 이루어진 곳으로 실제로 눈에 보..

[김해박물관] 금관가야의 성립, 김해 양동리고분 유적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대성동고분군과 수로왕릉이 있는 김해 구도심에서 7km 정도 떨어진 양동리고분군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까지 오랜기간에 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5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약 5천여점에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이곳은 낙동강유역가 가장 가까운 항구인 마산항에서 약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또다른 삼한시대 지방의 유력세력이었던 마산에서 13km정도 떨어진 주남저수지에 위치한 창원 다호리지역과 이는 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던 함안의 아라가야와도 비슷한 조건으로 한반도 연안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졌으며 교역을 통해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누렸던 지역으로 여겨진다. 양동리고분군에서는 상당히 많은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한.중.일 해상무역활동과 ..

지역박물관 2012.04.15

[김해박물관] 가야의 여명, 삼한시대 국제무역항 사천늑도와 지방 유력세력인 창원 다호리 유적

한반도 고대국가인 고조선은 중국 전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함에 따라서 밀려난 북경주변 연나라 세력들이 점차로 밀려들면서 위만조선으로 세력이 교체되고 고조선지배계층들이 한반도 지배계층들이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중국 사서인 , , 등에 나타나는 한반도 세력으로 기원전 3~2세기에 진국이 있으며, 그 세력의 흔적은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 아산 남성리 등에서 남아 있다. 진국은 경상도북부의 진한, 낙동강 하구의 변한, 충청.전라도의 마한으로 구성된 삼한으로 분리되며, 이들 국가들은 통일된 중앙집권국가라기보다는 지역에 세력을 갖춘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지역에는 진국의 변경이라는 의미로 변한으로 불리는데 이는 진한 연맹체에 속하지 않는 낙동강서안과 하류지역..

지역박물관 2012.04.15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341호), 대표적인 금관가야 고분

김해시 구도심 중심부에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길이 약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가야고분군들과는 달리 거대한 봉분을 만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관가야가 자리잡고 있던 김해중심부에 건국설화와 관련된 구지봉, 대성동고분군, 수로왕릉, 봉황동유적지가 하천을 따라 남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1~5세기에 걸친 오랜 시기에 걸쳐서 조성된 무덤군으로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구릉 정상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기존의 무덤위에 새로운 무덤을 중복 축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이지역 지배세력의 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중국제 거울..

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454호),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에 이르는 고분군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양동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군 중에서도 가장 많은 5천여점의 유물의 발굴된 유적지이다. 기원전 2세기 삼한시대부터 원삼국, 삼국시대에 이르는 기원후 5세기까지의 무덤 500여기가 산재해 있는 곳으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고, 그 면적은 3만여평 정도이다. 현재 양동리 고분군은 유적 발굴이후 봉분들을 복원해 놓고 있지 않아서 유적지가 아니라 동네 뒷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양동리 고분군에서는 한식청동거울과 폭이 넓은 투겁창 등 중국 및 일본계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 고분의 주인들은 지역의 유력집단으로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형 목곽묘와 외래계유물, 수정..

철의 왕국 가야의 발자취를 찾아서 - 금관가야(김해), 대가야(고령), 아라가야(함안), 사천 늑도

가야는 삼국시대 상당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입니다. 당시에 철이 많이 생산되었고 중국, 한국, 일본과 교역에서 아주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높은 문화.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입니다. 부족연맹체로서 낙동강을 따라서 주요 거점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 김해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가야는 낙동강 중류의 고령.합천지역에 있었고 그외에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이 존재했었습니다. 그외에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던 삼천포항 앞에 자리한 작은 섬인 늑도에도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 가야 유적지 탐방 (금관가야) 1.가야탄생 설화 구지봉, 2.수로왕릉, 3.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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