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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6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231)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져져 있지 않지만 백제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석등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석등은 승탑이나 석탑처럼 목조건물 형태를 하고 있음 기본적으로 4각, 5각, 8각형을 하고 있으며, 기단이 되는 하대석, 기둥인 중대석과 그 위의 상대석,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 보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231호로 지정된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보물228호)과 석종비(보물229호)

신륵사는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마지막으로 입적하면 그의 제자들이 크게 중창한 사찰로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로 옮겨지면서 원찰로 크게 번창한 사찰이다.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대표적인 원찰인 양주 회암사와 관련이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현재의 신륵사는 조선중기 성종대에 크게 중창될 때의 모습이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조선초를 대표하는 승려인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조사당 뒷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신륵사를 크게 중창시킨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 있다. 나옹선사의 승탑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목조 건물 형태를 하고 있는 승탑과는 달리 인도의 승탑인 스투파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

양주 회암사지, 조선 최대 사찰에서 폐사지로 변해버린 무학대사가 수도했던 곳

양주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양천도에 관여했다고 잘 알려진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사찰로 조선전기에는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선사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 그리고 무학대사가 회암사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절터 뒷편 현 회암사가 있는 곳에 그분들의 부도탑이 남아 있다. 회암사 규모에 대해서는 목은 이색이 쓴 '목은집'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262칸의 건물에 거대한 불상 7구를 모시고, 3천여명의 승려들이 이 사찰에 머물렀다고 한다. 양주 회암사에는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양위한 후 이 곳에서 머물렀으며,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이 곳 회암사에 머물면서 불교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또한..

절터 2010.10.01

양주 천보산 회암사, 무학대사 수도했던 옛 회암사 절터 뒷편에 있는 사찰

양주 회암사는 고려시대 인도이 승려 지공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나옹선사와 무학대사가 수도했으며, 태조 이성계가 머물기도 했던 회암사 옛 절터 뒷편에 위치한 크지 않은 사찰이다. 현재의 사찰을 중건한 것이 언제인지는 설명이 없어서 잘 알 수 없고, 그 위치는 옛 회암사를 창건하고 크게 부흥시킨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세분의 사리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회암사는 대웅전, 조사당, 삼성각 그리고 강당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했던 회암사 옛절터에 비하면 약간은 초라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찰 건물 또한 그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원래의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함께 이 곳에 머물렀으며, 성종때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가 절을 크게 넓혔으며, 명..

전국 사찰 2010.09.30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 화재로 받침돌인 귀부만 남아 있는 나옹선사 부도 탑비 (보물387호)

양주 회암사 동쪽편에 있는 3기의 부도 중 제일 윗쪽에 위치한 나옹선사 부도에는 부도탑이 없어서 형식에 잘 맞지 않아 보였는데 그 탑비는 현재 회암사 서쪽편 언덕에 홀로 서 있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 회암사를 크게 중창시킨 고승으로 그의 호칭은 나옹선사, 보제존자, 선각왕사로도 불리며 그의 사리탑은 이 곳 회암사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원주 영전사지에도 남아 있었고, 그의 영정이 신륵사 조사당에 모셔져 있다. 특히, 신륵사에 있는 사리탑은 조선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석종형 사리탑을 하고 있으며, 영전사지 사리탑은 부처을 사리를 모신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무학대사와 함께 국가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고승이었던 같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그의 부도탑비인 진각선사 왕사비는 최..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양주 회암사 동쪽 언덕에 있는 3기의 부도 중 제일 위쪽에 위치한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이다. 다른 부도와는 달리 앞쪽에 탑비는 남아 있지 않다. 나옹선사는 고려말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양주 회암사를 아주 크게 중창한 인물이다. 나옹선사의 명성에 비해서 그 부도탑은 단촐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앞쪽에 있는 지공선사 부도탑과 함께 전통적인 고승의 부도탑 모양을 하고 있으나, 고려전기의 화려한 부도탑에 비해서는 조형미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도 고려말에서 조선초에는 전국적으로 부도탑을 만들 수 있는 조각가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양주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나옹선서 부도는 8각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전통적이 부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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