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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성 2

남원성, 정유재란때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던 읍성 (사적298호)

정유재란 당시 남원전투는 당시 왜군이 전북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 전투를 벌린 것으로 각지의 의병들과 군민들이 합세해 벌린 큰 전투였으며, 결국 왜군에 패해 모두 살했당했으며, 그당시 살해당한 관민 일만명의 무덤이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이다. 당시 왜군은 칠전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육군도 구례를 함락시키고 남원성으로 총진격하였으며 왜군의 수가 오만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남원성은 경상도에서 호남지역을 거쳐서 서울로 북상할 수 있는 길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3,000명이 파견되었고 각지제서 관군들과 의병들이 모여서 일만이 넘는 민.관이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5만이 넘는 왜군의 주력부대와의 싸움에서 작은 읍성으로는 지키기 어려웠기때문에 남원성에 있었던..

만인의총 (사적272호), 정유재란 때 순절한 일만 남원군민이 묻힌곳

남원 만인의총은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다 죽은 일만 남원군민과 군인들을 합장한 무덤으로 그 역사적 중요성때문에 사적으로 지적된 곳이다. 남원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전주를 통해서 서울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막마지 무렵에 왜군의 총공세가 영남의 진주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고, 전략적 요지인 남원성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 그 싸움에서 남원성은 완전히 불타버리고, 남원군민, 군인 등 일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사했다. 이때 남원의 큰 사찰인 만복사와 선원사 또한 불타버리고 없어졌다. 만인의총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죽은이들을 한곳에 묻고 그들을 추모하는 사당을 지은데서 유래한다. 광해군이 충렬사라는 사당이름을 지었고, 현재 위치에 있는 만인의총은 원래는 남원역 앞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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