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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16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대성전(大成殿, Dachen palace)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으로 공묘(孔廟) 정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중앙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를 좌.우에 같이 모신다고 한다. 공묘는 문묘(文廟)라고도 중국,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각국에 많이 세워졌다. 공자묘가 있는 노나라 수도였던 취푸(曲阜) 공묘 대성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북경 국자감 공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균관 문묘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있는 향교에 대성전을 두고 공자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취푸 공묘 정전(正殿)에 해당하는 대성전은 공자 사후 노나라 애공이 공자의 집에 사당을 세운 이래로 오늘날 까지 이어져 왔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공묘에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중국(China) 2014.03.10

[성균관] 전사청과 수복청,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이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동.서재에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중심으로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으로서의 역활도 아주 중요했다. 이는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나 사설교유기관 역할을 했던 서원도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로 성균관의 원래 명칭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으로 문묘(文廟)라 한다. 성균관은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있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도 성균관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운영했던 문묘답게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 대성전 서쪽편에 별도로 ..

[성균관] 대성전과 동.서무 (보물141호),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공식적인 명칭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文廟)이다. 중국에서는 국자감, 지방에서는 향교라고 하며 건물의 배치와 기능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은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인재들을 양성하고 학문을 논하는 강학공간이 뒷쪽에 배치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균관대학에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은 매년 봄.가을에 공제를 제사하는 석전제를 지내는 제사기능만 남았다고 할 수 있으며, 전국 유림들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 제향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경주향교, 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에 자리한 조선시대 경주부 중등교육기관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고도이다. 또한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영남지역의 중심도시로 동경 또는 경주라고 불려왔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경주는 종2품의 외관직인 부윤이 고을 수령인 지금의 직할시에 해당하는 큰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에 부(府)가 설치된 도시는 한성과 평양,경주에 먼저 설치되었고 함흥과 전주, 큰 도시였던 의주,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경주는 조선시대에도 큰 고을을 유지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흔적으로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있는 경주읍성과 월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주향교를 들 수 있다. 현재 경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경주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최부잣집을 중심으로 반촌이 형성되어 있는교촌마을로 신라 궁궐이었던 월성 동쪽편에 자리잡..

성주향교 대성전과 명륜당(보물 1575호), 동묘서학의 특이한 공간 배치

대구광역시와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 성주군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고려초 지방호족인 이총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로 승격되기도 했으며, 조선초 태종대 전국적인 군현제 개편때에는 성주목이었으나, 인근 대구에 경상감영이 있었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작은 규모의 고을인 성산현으로 존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산현 관아 소재지는 성산가야 고분군이 인근에 있는 성주읍 경산리로 옛 관아 건물로 동헌인 성산관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성주향교가 남아 있다. 옛 성산현 관아가 있던 성주군 경산리는 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읍성 북쪽 낮은 구릉에는 이지역 중등교육기관이 성주향교가 있다. 성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세워진 향..

공주향교, 충청감영에서 운영하던 향교

옛 충청감영과 공주목이 있었던 공주의 공식 교유기관인 공주향교이다. 옛 감영이 있던 공주사대부고에서 금강방면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주택가 위치하고 있다. 금강 중류에 위치한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이자 금강 수운, 호남지역과 서울간의 교통로에 위치한 아주 큰 고을이자, 충청도 관찰사사 근무하던 충청감영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공주라는 큰 고을에 위치한 공주향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나주향교나 전주향교는 그 규모에 있어서 한양의 성균관에 비길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곳 공주향교는 웬만한 군현에 소재한 향교와 비슷한 규모로 보인다. 공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뒷쪽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유생들이 ..

홍성 결성향교

결성현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결성.서부.구항.은하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결성현 읍치는 현재 결성읍성이 있었던 자리인 결성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다. 결성현은 천수만에서 홍성군과 예산군을 포함하는 내포평야를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을 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을이다. 결성현에서 관장하던 교육기관이었던 결성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해왔었던 지방교육기관으로 현재의 위치로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결성읍성을 현재의 결성면 소재지에 세우게 되면서 이전하였다고 한다. 향교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결성면 소재지에서 북쪽편으로 약간 떨어진 구릉지에 세워진 이 향교는 공자와 성현들을..

양천향교, 서울에 남은 유일한 향교로 조선시대 양천현 중등교육기관

양천현은 동쪽으로 양화도, 서쪽과 남쪽으로는 부평부, 동남쪽으로는 금천현, 서북쪽으로는 김포현과 경계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현단위 행정단위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강서구와 양천구가 옛 양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산은 없고 김포공항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들어서 있으며, 조선시대 소금창고였던 염창이 주변에 있다. 양천향교는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서 현재의 건물은 옛터에 1981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조선시대 향교는 각 고을마다 수령이 설치.관리하였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수도인 한양의 동.서.남.중에 설치한 성균관의 부속기관인 사부학당이 있었고, 서울 주변 토지는 서울의 권문세가의 땅이었기때문에 향교에 대한 수요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고 법령에 정한바가..

김포향교, 김포현의 중등교육기관

김포공항 서쪽편에서 강화도가 있는 서해안까지가 현재의 김포시이다. 조선시대의 김포현과 통진현이 합쳐진 곳이 현재의 김포시이고, 현재 김포시청을 중심으로 김포현이 존재했었다. 김포현은 남쪽으로는 부평부, 북쪽으로는 통진현, 서쪽으로는 서해안, 동쪽으로는 양천현과 경계를 이루는 영역이다. 옛 김포현의 흔적인 관아 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관청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김포향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김포향교는 원래 김포장릉 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장릉의 조성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그 내력이 적혀 있지 않는 것으로봐서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또한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구한말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

서울 문묘 성균관, 조선시대 공립 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가장 오래된 대학

성균관의 정식명칭은 서울 문묘로서 제례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이 있으며 성균관은 보통 향교나 서원은 뒷편 안쪽에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고, 앞쪽에 교육을 담당하는 건물이 있으나, 성균관은 제사 기능을 하는 대성전이 앞쪽에 있고 강당인 명륜당이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균관에서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강당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도서관인 존경각, 관리들이 근무하던 정록청, 제2과장이 열렸던 비천당이 있다. 명륜당 앞에는 넓고 높은 월대가 있고, 지붕에는 잡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명륜당 앞에서는 조선시대 과거도 많이 치러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명륜당은 성균관의 상징적인 건물로 주변 동네 이름도 명륜당에서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다. 성균관에서 제..

나주목 관아,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우리나라 지방 교육기관이다. 서울문묘의 성균관과 비슷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서울 성균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그 중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물론 서울 문묘의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앞며5칸 옆면 4칸의 웅장한 나주 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출입문인 외삼문. 나주향교라 적힌 돌기둥과 하마비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나주향교 내삼문 내삼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대성전. 궁궐 건물을 연상시키는 규모이다. 대성전 편액 나주향교 대성전 월대 대성전 부속 건물. 강학공간인 명륜당 월대에서 본 대성전 건물 안쪽에서 본 ..

평택향교,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평택시 팽성읍은 옛 평택현 청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평택시에서 남쪽편 안성천이 아산만과 만나는 넓은 곡창지대의 중심지였고, 아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팽성읍에는 지금 옛 평택현의 흔적으로 객사와 향교가 남아 있고, 다른 관청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는데 아마도 팽성읍사무소에 관청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택향교는 이 지역의 공립교육기관으로 평택현이 큰 고을이 아니었기때문에 향교의 규모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이 향교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강당인 대성전과 기숙사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향교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보통 홍살문 옆에 하마비가 있다. 향교와 관련된 공덕비. 향교 정문인 외삼문..

중국 북경 국자감 - 공자 위패가 모셔진 대성전(大成殿) 내부

국자감 대성전에는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우리나라 성균관과 향교 대성전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성전 내부 정면에는 공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양쪽으로 제자들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중국에서는 박물관의 의미를 강조하다보니 내부에 유교 제례의식에 필요한 각종 악기와 제례도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벽위쪽에는 각종 편액들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걸려 있어 복잡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국자감 대성전 내부 중앙에 모셔진 공자 위패. 대성전 공자 위패 위쪽에 걸린 편액 대성전 공자 위패 좌.우에 배치된 제자들과 성현들의 위패. 대성전 내부에 걸린 편액들과 천정 대성전 내부에 전시중인 유교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악기들. 편경,편종,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유교 제례의..

중국(China) 2009.10.08

중국 북경 국자감 대성전(大成殿), 공자 위패를 모신 대성전의 시초

북경 국자감은 원나라때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을 세우고, 유학 교육기능을 갖는 강학공간을 그 주위에 세움으로서 오늘날 국자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경의 국자감은 고려시대 국자감과 조선의 성균관, 각 지역의 향교의 형태를 갖추게 한 모범이 되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북경에서는 자금성의 규모에 비해서 국자감의 크기나 비중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 성균관이나 서원, 향교 들은 전묘후학(前廟後學)의 건물배치로 앞쪽에 대성전이나 사당을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을 두는 것이 보통이나, 북경 국자감은 동쪽에 대성전이 있고, 서쪽편에 강학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국자감이 먼저 세워진 것으로 보아, 전묘후학의 건물배치..

중국(China) 2009.10.06

중국 북경 국자감 - 대성전(大成殿) 마당 고목과 비석들

공자 위패가 모셔진 국자감 앞 마당에는 우리나라 성균관 대성전과는 달리 은행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들어서 있고, 마당 양쪽으로는 거대한 비석 11개가 비각안에 있다. 아마도 향을 피운다는 의미로 마당에 향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이며, 색다른 풍경의 마당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당 자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규모 비해서는 넓이는 좁은 편에 속한다. 아마도 제사를 지낼때 참석대상 인원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성문을 통해 대성전을 들어가는 길. 아마도 황제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당에는 행사를 위한 광장이 조성되어 있지는 않다. 대성전 앞 마당에 심어진 거대한 향나무. 세월의 흔적을 느길수 있는 향나무. 대성전 앞 마당 좌.우에는 11개의 거대한 비석이 비각 안에 놓여 있다...

중국(China) 2009.09.30

중국 북경 국자감 - 대성문(大成門), 대성전 출입문

북경 국자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출입하는 대성문(大成門)이다. 우리나라 성균관의 경우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로 앞쪽에 제사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이 있고, 뒷편에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북경의 국자감은 동쪽에 대성전이 있고, 서쪽에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벽옹과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문은 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성균관의 신삼문(神三門)에 해당하는데 규모나 화려함은 성균관에 비해서 낫지만, 중국이라는 나라 규모에 비해서는 작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국자감 대성전 출입문이 대성문.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통로 입구에 공자석상이 자리잡고 있다. 대성문은 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된 대성문 계단. 황제의 가마가 ..

중국(China) 200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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