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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34

강화 손돌목 돈대, 광성보 언덕에 위치한 돈대

강화 해안을 지키는 많은 돈대를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높은 곳에 위치한 손돌목 돈대이다.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 3개가 있으며, 여장은 벽돌로 쌓고 있다. 광성보가 관리하는 돈대 중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광성보 주변 포대와 돈대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이며, 내부에는 무기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 돈대 아래 해안가에는 용두돈대와 광성포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광성포대, 남쪽에는 덕진진에 속한 남장포대와 덕진돈대가 위치하고 있다. 초지진부터 광성보까지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포대와 돈대가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손돌목은 염하(강화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른 곳으로 청나라의 침입때 인조가 이곳을 건너서 피신했고,..

강화 광성돈대, 광성보 성문과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방어시설

강화와 육지 사이를 흐르고 있는 염하를 감시하는 많은 돈대와 포대 중에서 광성보 문루인 안해루 옆에 위치하고 있는 광성돈대이대. 대부분의 돈대가 사각형 또는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서 광성돈대에는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염하(강화해협)이 흐르는 강화해안에서 동쪽으로 약간 돌출된 곳에 설치된 광성돈대엔 북쪽과 동쪽으로 4곳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으며, 광성보를 출입하는 성문인 안해루를 엄호하면서 해안을 방어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1977년에 이곳을 정비하면서 돈대내부에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3문의 포(砲)가 설치/전시되어 있다. 광성돈대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 5년(1679) 함경도.황해도.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강화 광성보, 신미양요의 현장

강화와 육지 사이를 흐르는 좁은 수로인 염하를 지키는 여러 요새들 중의 하나인 광성보이다. 광성보는 숙종대에 강화도 해안 전역에서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7보 중 하나로 북쪽으로는 용진진, 남쪽으로는 덕진진과 초지진이 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염하) 남쪽편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적인 요지로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가까운 지역에 밀집되어 있으며, 방어시설로 많은 포대와 돈대가 배치되어 있다. 광성보는 광성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를 거느리는 지휘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해안가를 따라 쌓은 성벽을 출입하는 문루인 안해루가 남아 있다. 구한말 병인.신미양요와 일본은 운요호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으며,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이 곳을 지키던 조선병사 대부분이 순국했던 곳이기도 하다. 광성..

강화 북일곶돈대, 일몰이 아름다운 장화리마을에 위치한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해안 방어를 위해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승병과 어영군을 동원하여 40일만에 완공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인 강화도 서남부 해안을 감시하던 북일곶 돈대이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소재한 이 돈대는 검암돈, 장곶돈, 미곶돈과 함께 장곶보 소속으로 강화도의 서남쪽으로 돌출한 지형인 북일곶에 위치하고 있다. 북일곶돈대는 강화 서남해안으로 돌출한 북일곶 언덕 위에 세워진 돈대로 석축의 높이는 높은 곳이 2.4m이고, 전체 둘레는 120m 규모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돈대 내부에는 대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가 정면에 2개, 남.북 방향으로 모서리에 1개씩 4개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다. 북일곶이 위치하고 있는 장화리마을은 강화에서도 해넘이 풍경이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

강화 선수돈대, 석모도 앞바다를 지키던 돈대

조선은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패배 이후 북방민족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조선 숙종대에 강화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강화유수부가 소재한 지역에 강화산성을, 그 바깥쪽에 외성을, 해안에는 돈대를 구축하여 해안경비를 강화하였다. 강화 해안의 돈대는 숙종대인 1679년 병조판서 김석주가 건의하고, 강화유수 윤이제의 주도로 전국의 승병들을 동원하여 해안 주요 요지 49곳에 돈대를 설치하였다. 이후 보강을 통해 구한말까지 53돈대를 운영 했다고 한다. 돈대는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에 50명 이내이 병력이 머물면서 적을 감시하고 방어하던 요새로 그 형태는 원형, 사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돈대는 병자호란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방어시설 형태로 화포와 총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강화군 화도면 내리 후포항 뒷..

강화 굴암돈대,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 바다를 지키던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바다를 감시하는 굴암돈대이다. 강화도 양도면 하일리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이 돈대는 강화해안방어를 위해 강화도호부에 설치한 진무영 소속의 돈대라고도 하며, 외포리에 있었던 정포보 소속이라고도 한다. 강화도 마니산 서북쪽 해안을 경계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 곳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돈대이다. 굴암돈대 북쪽으로는 가까운 곳에 정포보 소속의 건평돈대가 남쪽으로는 장곶보 소속의 송강돈이 있다. 굴암돈대는 원형으로 석축을 쌓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잘 다듬은 큰 화강석 석재로 석축을 쌓고 있어서 꽤 견고해 보인다. 이 돈대가 위치한 곳은 바닷쪽으로 돌출해 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

강화 망양돈대, 외포리선착장 뒷편에 위치한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지키는 망양돈대이다. 망양돈대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연결해 주는 카페리호 선착장이 있는 외포리선착장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망양돈대가 지키는 수로는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마다 중 그 폭이 가장 좁고 썰물시에도 갯벌이 잘 드러나지 않는 협곡과 비슷한 지형으로 강화해안에서는 선박이 정박하기 좋은 곳이다. 망양돈대는 석각돈, 삼암돈, 건평돈과 함께 내가면 외포리 '성안'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던 정포보 관할의 돈대이다. 외포리 선착장 서쪽편 언덕에 위치한 이 돈대는 높이 3m, 폭 25m, 둘레 120m 정도의 정방형돈대로 바다 방향으로 4문의 포를 장착할 수 있는 포좌와 성벽위에 여장을 두..

강화 계룡돈대, 강화도 서북쪽 제방 남쪽끝 작은 섬에 세워진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도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 남쪽 작은 언덕위에 세워진 계룡돈대이다. 계룡돈대가 위치한 곳에 원래 갯벌위에 있던 작은 섬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북쪽 무태돈대가 있는 창후리선착장까지 길게 쌓은 해안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을 북쪽편으로는 별립산, 봉천사, 고려산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곳으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고인돌이 주로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다. 남쪽편으로는 국수산과 황청리, 외포리 선착장이 있고, 석모도의 넓은 간척평야와 마주하고 있다. 갯벌위에 있었던 작은 섬에 쌓은 계롱돈대는 길이 30m, 너비 20m, 석축높이 3~5m로 작은 규모의 돈대이다. 북쪽편으로는 망양돈대가 있고 남쪽편으로는 지금은 남아 ..

강화 망월돈대, 바다를 막은 제방에 쌓은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 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쌓은 53돈대 중 강화 서북쪽 해안에 쌓은 제방에 위치한 망월돈대이다. 이 돈대가 위치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일대는 남쪽편 외포리 부근 국수산와 북쪽편 별립산 주변을 긴 제방으로 연결하여 간척한 곳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간척지는 조선후기 강화도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자체적인 식량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망월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고려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내가천 수로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보통 돈대는 해안가 높은 언덕에서 사방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에 이 곳 망월돈대는 해안가 평지에 약간의 둔덕을 만들어 그 ..

강화 무태돈대, 교동도 입구 바다를 감시하던 돈대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교동도와 강화 본섬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무태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총포와 화포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병자호란 이후에 나타난 방어시설로 강화도의 돈대는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승군 등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무태돈대는 인화돈 등과 더불어 인화보 소속으로 삼도수군통어영이 있었던 교동도 남산포의 경기수영 외곽수비를 담당하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던 돈대이다. 석축으로 쌓은 직사각형의 돈대로 길이가 44m 정도이다. 돈대에는 바다방향으로 포좌4문과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무태돈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교동도와 강화본섬을 오가는 카페리호가 정박하는 창후리 선착장 북..

강화 삼암돈대, 석모도 앞 해로를 지키던 돈대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해로를 지키던 삼암돈대이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접경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도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로 조선후기에 나타난 방어시설 형태이다. 조선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가 승군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삼암돈대는 숙종때 쌓은 53돈대 중 건평.망양.석각돈대와 더불어 정포보 관할하에 있었다고 한다. 이 돈대는 둥글게 쌓은 돈대로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 설치되어 있고, 성위에는 여장이 55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입문은 북쪽 1군데만 두고 있으며 내부에는 화약고를 설치했던 터가 남아 있다. 석모도를 오가는 카페리가 정박하는 외포리 선착장 서쪽편 ..

강화 초지진과 초지돈대, 강화해협 입구를 지키는 신미양요 현장

강화해협 입구에 위치한 초지진은 임진왜란 이후 비상시 수도역할을 해야 하는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 7보 중 하나로 원래 안산 초지량에 있는 수군을 병자호란 이후 강화로 옮기고 진(鎭)으로 승격시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초지진은 강화도 동남해안의 제물포에서 염하를 지나 서울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던 군사조직으로 종4품이 만호를 수장으로 산하에 성암돈, 장자평돈, 초지돈을 관할하고 있다. 북쪽으로 덕진진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선두보와 경계를 이룬다. 초지진은 북동해안의 월곶진과 함께 강화도와 한양으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으로 구한말 신미양요 때 미군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고, 그후 일본이 일으킨 운양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초지진은 산하에 초지돈대를 포함하..

강화 분오리돈대, 드넓은 강화 갯벌과 서해안 낙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 국방을 강화할 목적으로 강화도 해안에 구축한 53돈대 중 강화도 남쪽 해안을 지키던 분오리돈대이다. 강화해안의 돈대는 조선 숙종대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4,300명과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의 승군 8,900명을 동원하여 40여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돈대는 조선후기에 나타는 방어시설로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석축을 쌓고 크고 작은 포구나 총구, 여장을 설치하여 적을 방어하는 시설로 기존의 성곽과는 다른 개념의 방어시설이다. 분오리돈대는 강화도에 설치된 5진 7보의 군사조직에 속하지 않고 별도의 돈장을 두어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이는 서쪽의 송곶돈대와는 3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절벽에 세워진 요새로서 작은 성곽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강화 후애돈대, 강화도 남동해안을 지키던 돈대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53돈대 중 강화도 남쪽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의 해협을 지키던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후애돈대이다. 이 돈대는 강화도에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 7보 중 남동해안을 담당하던 길상면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 서문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던 선두보 소속의 돈대이다. 선두보 소속돈대로는 후애돈,동검북돈,택지돈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자료에는 이 곳에 택지돈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후애돈대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 돈대는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쌓은 돈대 중 하나로 화강암을 사각형으로 석축을 쌓았으며, 위쪽에는 여장을 아래쪽에는 포좌를 설치해 놓은 돈대이다. 석축과 여장 일부분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강화 연미정과 월곶진이 설치된 월곶돈대, 북녁땅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정자.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에 침입에 대배하여 국방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된 강화도에는 군사조직으로 5진 7보가 설치되었고 방어시설로는 강화산성, 외성, 53돈대가 숙종대까지 설치되었다. 월곶진은 한강이 서해로 나가면서 강화해협인 염하와 서해로 나누어진 곳에 위치하고 하고 있어며, 한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인 문수산성과 마주 하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월곶진에서 다른 진.보보다는 높은 종3품인 첨사가 담당하는 군사조직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하에 옥창돈, 월곶돈,휴함돈,적북돈을 두고 있다. 월곶진은 강화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으로 옛날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가는 배가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리던 곳이며, 한양에서 강화를 방문하는 인사들이 배를 타고 올때 이 곳에서 내려 강화산성..

[경복궁] 동십자각, 경복궁을 지키는 동쪽편 망루

경복궁 남동쪽 도로변에 홀로 서 있는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의 동.서를 지키는 망루로서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서십자각은 없어지고 동십자각은 도로에 홀로 남아 마치 원래부터 길거리에 있던 것 처럼 보인다. 북경 자금성과는 달리 경복궁은 성으로서의 방어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은 궁궐 그 자체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 동십자각은 많지 않은 경복궁 방어 시설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대로변에서 서 있으며, 서울이 오래된 고도임을 말해주고 있는 여러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경복궁 동십자각은 앞면, 옆면이 모두 3칸으로 성벽으로 돌로 쌓은 기단부 위에 누각을 올려 놓고 있다. 경복궁 동십자각 상단부 누각 동십자각 기단부. 망루에는 계단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없어진 것 같다. 측면에서 본 경..

궁궐_종묘 2010.09.06

[만리장성 거용관] 서쪽 3,4,5번째 돈대와 성벽

만리장성에서 가장 웅장한 모습중의 하나인 거용관 서쪽편 가파른 능선을 따라서 세워진 성벽과 돈대이다. 2번째 돈대까지는 일반적인 만리장성의 성벽위와 비슷한 모습으로 마차2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지만, 3번째 돈대부터는 통로가 좁아지면서 경사가 있는 계단길을 따라서 올라가야만 한다. 계단길을 걸어서 여러 돈대를 지나야만 거용관이 있는 계곡을 이루고 있는 서쪽편 언덕위에 오를 수 있다. 북경여행 일정상 5번째 돈대까지만 올라가 보았지만, 계단길을 계속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쉬운 코스는 아닌듯하다. 이 곳에서 설명하기에 동쪽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쉬운 코스에 속하고, 서쪽편은 경사가 심해서 힘든 코스로 분류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웅장한 모습에 반해서인지 유명세 때문인지 서쪽편 능..

중국(China) 2010.07.08

[만리장성 거용관] 서쪽편 첫번째, 두번째 돈대와 성벽

북경의 관문인 거용관 서쪽편 성벽은 경사가 있는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성벽으로 만리장성 성벽 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벽이다. 약간 경사가 있으며, 넓은 성벽위 통로가 있는 다른 곳의 만리장성 성벽과는 달리 이 곳에는 두번째 돈대까지만 넓은 길이 있고, 그 다음부터는 좁은 계단길을 통해서 산능선을 따라서 쌓은 성벽길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거용관 출입문인 옹성 서쪽편 첫번째 돈대는 화포를 발사할 수 있는 규모가 큰 망루이다. 구운 벽돌로 쌓은 앞면 3칸, 옆면 3칸규모의 이 돈대에는 창문에서 화포를 발사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유리기와를 올려놓은 목조건축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두번째 돈대부터는 일반적인 만리장성의 돈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만리장성 거용관 서쪽편의 첫번째..

중국(China) 2010.07.08

중국 만리장성, 북경 팔달령 장성 동쪽 능선 3번째 돈대에서

북경 팔달령 장성 관문 동쪽편 능선 올라가서 3번째로 만나는 돈대이다. 장성을 오르는 길이 약간 가파르게 되면서 아래쪽 팔달령 장성 관문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변함없은 넓은 성벽위를 걸어올라 가면 언덕위에 있는 북경올림픽을 기념하는 입간판과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가게 된다. 아직도 위쪽으로는 끝없이 장성이 이어지고 있다. 팔달령 관문 동쪽 능선을 따라서 있는 성벽을 걸어올라가게되면 3번째로 만나는 돈대이다. 아래쪽 돈대에 비해서는 약간 개방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곳 돈대까지만 오르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팔달령 장성 돈대 내부의 모습. 이 곳도 원래는 2층 돈대였던 것 같아 보인다. 돈대에는 1층에는 창문형태이고 2층은 흉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돌로 쌓은 세번째..

중국(China) 2010.06.12

중국 만리장성, 북경 팔달령 장성 동쪽 능선 돈대(1,2번째)

만리장성 팔달령 동쪽 능선을 따라서 있는 돈대 중 1,2번째 돈대까지이다. 장성 위는 상당히 넓은데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장성을 오르내릴 수 있는 것 같다. 돈대는 규모가 크고 지붕이 있으며,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 형태로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돈대에 만리장성 내부에서 장성위로 오를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아마도 통로 앞에는 병사들의 막사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만리장성 팔달령 관문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서 끝없이 이어지는 장성. 팔달령 장성 동쪽 능선 첫번째 돈대 입구. 돈대는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았으며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구조이다. 만리장성 흉벽. 벽돌로 쌓았으며 우리나라의 성벽에 비해서 높이가 높아 보인다. 이 곳..

중국(China)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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