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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6

여주 명성황후생가, 민유중 묘막으로 지어진 집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이다. 이 가옥은 조선후기 숙종의 장인이자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부원군 민유중의 묘막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가옥은 솟을대문이 있는 '-'자형 행랑채, 사랑채와 중문이 있는 'ㄱ'자형 문간채, 'ㄱ'자형 안채, 바깥쪽에 '-'자형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짜임새있게 꾸며진 중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살 보여주고 있다.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중을 묘막으로 지어진 이 가옥은 서울 북촌 감고당과 함께 민유중 후손들이 살아왔던 집이다. 원래 가옥 중 안채만이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사랑채, 행랑채, 별당을 복원하였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민유중의 5대손으로 영천군수 벼슬을 끝으로 서울 감고당에서 사망했다. 명성왕후는 이곳에서 태어나 8..

고택_정원 2013.04.03

여주 감고당, 북촌에 있던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를 배출한 유서깊은 사대부 저택

감고당은 숙종이 계비인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 지어진 집으로 현재 서울 북촌의 중심인 덕성여고 교정에 위치하고 있던 저택이다. 이저택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채로 이루어진 조선후기 서울 권문세족이 살았던 저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ㄷ'자형 안채는 비교적 조선후기 한옥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채는 중국풍의 누마루를 하고 있으며 유리창문을 사용하는 등 구한말.일제강점기 부호들이 살았던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숙종이 인현왕후 친정을 위해 지어진 이 집은 왕후의 부친이 민유중이 이곳에서 살았으며, 인현왕후가 장희빈으로 인해 폐위되었던 기간동안 이곳에서 거처하였다고 한다. 민유중의 후손으로 민유중 무덤 부금 묘막에서 살았던 민유중의 종손 민치록의 딸인 명성황후는 8세때부터..

고택_정원 2013.04.01

남양주 홍유릉 홍릉(사적 207호), 대한제국 황제의 능으로 조성한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 합장릉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능으로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홍릉은 이전의 왕릉과는 달리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때문에 황제의 예를 따라서 능을 조성하였다. 홍릉은 기존 왕릉의 제사시설이었던 정자각을 없애고 대신 '-'형의 앞면 5칸짜리 침전을 세워 놓았으며, 능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대신 침전앞 참도 양쪽으로 문.무석인과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석상을 순서대로 세워 놓고 있다. 참도도 기존에 어도와 신도의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을 3단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능역 입구에 위치해 있던 재실 또한 왕릉 바로 앞으로 옮겼으며, 그 규모 또한 상당히 큰 재궁을 조성해 놓고 있다. 홍릉은 1895년에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

[고궁박물관 특별전]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왕실의 장례를 기록한 의궤

조선시대 국가의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는 국왕을 비롯한 왕실의 장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왕의 즉위식 또한 장례의 일부분일 정도로 절차도 복잡하고 삼년상을 치룬 후 종묘로 신위를 옮기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행사였끼때문에 의궤로서 많은 기록들을 남겨 놓고 있다. 국왕의 장례시에는 임시관청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빈소를 차리는 빈전도감, 장례절차를 총괄하는 국장도감, 묘소의 능을 만드는 산릉도감이 설치된다. 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특별전에서는 구한말 명성황후의 장례를 진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를 중심으로 왕실의 장례절차를 기록한 의궤를 전시했는데, 명성황후는 대한제국이 선포된 이후 황제국의 절차를 적용하고 장례기간 또한 시해사건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었기때문에 조선왕조 의궤 중 ..

지역박물관 2012.02.06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던 노락당(老樂堂)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살았던 곳으로 구한말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즉위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사랑채인 노안당, 원래 안채였다가 명성왕후가 신부수업을 받은 이후 비워두었던 노락당, 안채인 이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뒷편 언덕 후원에는 별채와 사당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가 이를 허물고 양관이라는 현대식 건물을 지어놓고 있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老樂堂)이다. 정면 10칸이나되는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락당은 원래 운현궁의 안채였으나,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왕비수업을 받았던 까닭에 안채는 노락당 뒷편에 이로당을 신축해서 옮겨지고 이곳 노락당은 회갑연 등 흥선대원군 일가의 가..

궁궐_종묘 2011.12.04

서울대 규장각, 대한제국의 성립과 국권침탈

구한말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국가주도의 개혁인 갑오개혁이 있었고,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조선은 서구화를 향한 일련의 개혁조치인 광무개혁이 있었다. 기존의 국호인 조선을 버리고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주권국으로서 황제를 칭하고, 이에 부응하는 일련의 조치가 있었다. 이후 러시아와 서구열강의 지원을 받았던 일본과의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지고 결국은 1910년 일본에 병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대 규장각에는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대한제국 성립 이후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위한 각종 조약.협정 문서들을 전시하고 있다. 규장각에서 이런 문서를 전시하면서 그런 조..

지역박물관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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