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백률사 3

경주 백률사와 굴불사지,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

백률사는 경주 동천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당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잘린 목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세운 절이다. 문헌에는 자추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백률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상인 국보 29호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었고, 통일신라 헌덕왕대에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도 있었다. 절의 규모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은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사찰 주위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건물 초석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백률사 아래에는 보물 121호로 지정된 석조사면불상이 남아 있는 굴불사 절터가 있다. 굴불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전국 사찰 2012.06.23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121호), 백률사 언덕아래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불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한 이차돈 순교 설화가 전해내려오는 백률사 아래 절터에 남아 있는 거대한 사면석물인 보물 121호로 지정된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다. 이 불상은 거대한 돌에 불상을 새겨 놓고 있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에는 약사여래상, 남쪽에는 삼존불입상을, 북쪽에는 여래입상과 11면 관음입상을 새겨놓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진 석조불상으로 입체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을 하고 있어, 당시의 빼어난 조각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전체적인 양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통일성이 부족하여, 전체적으로는 조화롭지는 못한 편이다. 굴불사는 기록에 따르면 8세기 경덕왕이 백율사를 행차할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서 보니 큰 돌이 나와 이곳에 절을 세우고 돌에는 ..

국립경주박물관, 백률사 금동약사불 입상 (국보)

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국보로 지정된 백률사 금동 약사불 입상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크기나 형태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불상이다.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이 많다고 하며 생동감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백률사 금동 약사불 입상은 세련된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으나, 생동감이나 힘이 넘치는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은 많이 주지 못하고 있다. 측면에서 본 백률사 약사불 입상. 1930년 경주 백률사에서 옮겨왔으며, 현재 광배와 두 손 및 대좌(臺座)를 잃었으며 표면 곳곳에 도금 자국이 남아 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우게 되어있는데 그 위치로 보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처럼 약단지를 받들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크기와 주조 기법 그리고 조각수법과 신체비례..

지역박물관 2009.07.1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