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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무왕 4

연꽃이 아름다운 부여 백제 궁남지 (사적 135호)

경주에는 안압지가 있다면, 백제의 수도 부여에는 궁남지가 있다. 궁남지는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무왕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담겨있다. 궁남지는 규모나 아름다움으로는 안압지에 못지 않고 호젓한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다. 안압지에 비해 왕궁건물 터 같은 인공적인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연못자체 만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 사비성의 별궁 연못으로 사적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 무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에 따르면,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여들였으며,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도교적인 사상이 반영된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조성한 전형적인 정원의 연못으로 비교적 이른 시지에 조성된 것으로 신라 임해전지를 비롯하여 후대 궁궐 정원 연못 조성에 큰 영..

조선 관아 2012.06.19

[부여 박물관] 백제 중흥을 꿈꾼 서동요 주인공 백제 무왕

성왕이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래로 백제는 약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존재했었느데, 성왕, 위덕왕, 무왕, 의자왕 재위기간이 대부분으로 그 중 서동요 설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재위 기간 40여년으로 가장 길었다고 할 수 있다. 무왕대에는 신라와 자주 충돌하였며,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당나라와 교류하였다. 무왕대에는 신라 공격에 자주 군대를 동원하고 미륵사나 궁궐 남쪽 연못(궁남지)를 파는 토목공사를 많이 일으녀 국력이 많이 소모되어 백제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 무왕과 관려된 유적으로는 삼국사기에 무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왕흥사가 있는데, 이 사찰은 최근에 출토된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청동사리함에 이 사찰이 위덕왕대에 577년에 세워졌다고 하며, 죽은 그의 아들을..

지역박물관 2012.06.08

익산 왕궁리 유적지, 백제시대 왕궁터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장소는 백제시대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왕대에 왕궁으로 조성한 것을 의자왕대에 사찰로 변신했다가 고려 시대에 사찰이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오층석탑도 고려전기의 석탑이라 한다. 이 곳에서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과 정비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다. 왕궁리 유적지는 전면부에 궁궐 정전이, 뒷쪽에는 궁궐 후원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왕궁이 있었던 자리를 헐고 후대에 사찰을 조성한 까닭에 사찰 금당과 강당터는 궁궐의 주요 건물터에 조성되어 있고, 현재의 석탑 자리에는 원래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후원에는 기암괴석 등을 이용하여 정원을 조성했다고 하며, 남조와 교류가 많았던 백제의 특성상 남조 형태의 정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왕궁리..

절터 2010.10.01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11호), 석탑 해체/복원 현장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이 세운 사찰인 미륵사터에 있는 석탑으로 목탑의 형식을 석탑으로 구현한 것으로 반쯤 무너져 있던 것을 최근 몇년 동안 해체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인 석탑이다. 2006년에 이 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해체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아직도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올해 최대의 문화재 발굴 성과인 미륵시자 석탑 사리장엄이 이 곳에서 발굴되었고, 사리장엄이 새로운 미륵사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은 석탑의 형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석탑을 구성하고 있었던 석자재들이 내부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조만간 아름다운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하는 문화재 복원작업의 현장이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현장. 지금은 석탑 대부분이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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