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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5

제비원 석불로 불렸던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115호)

안동시 이천동 옛 국도변에 위치한 제비원 석불로 불렸던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115호)이다. 고려초 지방 호족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던 거대한 석불 중 하나이다. 자연암석에 불상의 몸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양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대고 있는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아미타여래로 여겨진다. 이곳 이천동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연미사(燕尾寺)가 있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원(院)이 설치되어 제비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성주풀이’라는 민요에 가택신(家宅神)인 성주(城主)의 고향으로 설정된 곳이기도 하다. 제비원석불로 불렸던 ..

안동 임청각(보물182호), 안동지방을 대표하는 99칸 대저택.

경북 안동을 대표하는 고택인 임청각(臨淸閣, 보물182호)이다. 권문세가의 세거지가 많은 안동지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99칸 대저택이다. 중종때 처음 지었으며, 영조대 중건하면서 99칸으로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가 집앞을 지나가면서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어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건물은 살림집에 해당하는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 조선중기에 지은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별당 건물이 군자정(君子亭)과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임청각은 상해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하여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으로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어 있다. 영남산 동쪽 기슭에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풍수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저택으로 낙동강변 경사..

고택_정원 2015.09.17

부안 개암사 괘불(보물 1269호)

2015년 겨울 중앙박물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특별전시 중인 개암사 괘불(開巖寺 掛佛)이다. 내소사와 함께 서해안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사찰인 개암사(開巖寺)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형괘불로 보물 12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가 13.17m에 이르는 대형 불화로 18세기 최의 화사(畵師)였던 의겸이 제작을 주도했고 12명의 승려가 참여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전국 사찰에는 괘불을 비롯하여 많은 불화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실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문화재급에 해당하는 불화는 이곳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 다보여래.아미타불, 관음.세지보살을 그린 영산괘불(靈山掛佛)이다. 괘불은 영산재(靈山齋).수륙재(水陸齋) 등의 큰 의식식을 베풀때 법당 바깥에 걸었던 불화..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다. 원래 여주 고달사 절터에 있던 것으로 받침돌에 있는 웅크린 사자가 인상적이다.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상으로도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상으로 통일신라의 예술성과 조각기술이 남아 있는 고려전기의 유물이다. 이 석등은 높이 2.4m로 원래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나, 2000년 실시한 고달사 절터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상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2마리의 웅크린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받침돌에는 연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화사석은 4면이 창으로 뚫린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이 있었던 고달사는 여주 남한강변에서 북쪽 강원도 원조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보..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보물 166호로 지정된 홍제동 오층석탑이다. 원래 홍제동 사현사터에 있던 탑을 도심확장으로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의 위치에서 전시중인 문화재이다. 전체적으로 탑이 많이 훼손되어 원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며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 석탑은 후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이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형태로 기단이 없어서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탑신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비례를 하고 있다. 1층몸돌에는 장식이 없고, 2층부터는 탑신 몸돌에 기둥과 문짝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석탑을 세운 연대는 칠장사혜소국사비의 비문에 고려 정종 때인 1045년에 이 절이 창건되었다는 ..

[중앙박물관] 보신각 종(보물 2호), 오랫동안 제야의 종소리를 들려주던 범종

오랜 기간동안 서울의 중심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으면서, 전국민에게 새해를 맞는 기쁨을 알려주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던 보신각 종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을 새로운 안식처로 삼고 긴 휴식을 하고 있다. 이 보신각종은 전형적인 조선초기 사찰의 종이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걸려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종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시민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왔던 문화재이다. 보신각 종은 조선 세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신덕왕후 정릉 안에 있던 정릉사에 있었으나,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종루에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높이 3.18m로 음통은 없고 2마리의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한다. 몸통에는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적혀있다.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종의 양..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보물 190호), 통일신라 승탑의 형식이 잘남아 있는 고려전기 승탑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과 가까운 내륙수운의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는 큰 절터인 거돈사 터에 남아 있던 보물 190호로 지정된 원공국사 승묘탑이다. 이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 집에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 1948년 경복궁으로 옮긴 이래 현재는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은 바닥돌 없이 기단부와 탑신으로 구성된 8각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하고 있는 승탑이다. 기단부는 팔각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가운데받침돌에는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탑신부 몸돌에는 사천왕상과 문모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지붕돌을 팔각형으로 기와지붕을 모방하여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성요소간 비례가 뛰어나며 당시 목조건축물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원주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보물 365호)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중인 보물 365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이다. 승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단부의 아래.위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고,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 몸돌에는 구름과 용이 뒤엉켜 있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탑신의 몸돌에는 꽃무늬가 장시되어 있고, 앞뒤에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고 기와모양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석관에는 불교경전과 관련 유물들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기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신덕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초에도 태조의 왕사가 되어 두터운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부도가 남아있던 원주 흥법사지는 원주 문막읍에서 여주방향으로 연..

성주향교 대성전과 명륜당(보물 1575호), 동묘서학의 특이한 공간 배치

대구광역시와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 성주군은 가야연맹체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고려초 지방호족인 이총언이 태조왕건을 도운 공으로 경산부로 승격되기도 했으며, 조선초 태종대 전국적인 군현제 개편때에는 성주목이었으나, 인근 대구에 경상감영이 있었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작은 규모의 고을인 성산현으로 존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산현 관아 소재지는 성산가야 고분군이 인근에 있는 성주읍 경산리로 옛 관아 건물로 동헌인 성산관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인 성주향교가 남아 있다. 옛 성산현 관아가 있던 성주군 경산리는 읍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읍성 북쪽 낮은 구릉에는 이지역 중등교육기관이 성주향교가 있다. 성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세워진 향..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호), 홍예가 아름다운 돌다리

고성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시대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조선 세조가 직접 방문하여 원찰로 지정한 사찰로 왕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금강산 유람길에 있었던 명소이자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한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건봉사 전각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리고 지금은 옛 사찰의 흔적으로 불이문과 능파교만이 남아 있다. 보물 1336호로 지정된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불이문 옆 능파교신창기비에 적혀 있는 기록에 의하면 숙종 30년인 1707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중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된 다..

제천 청풍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보물 546호로 지정된 제천 물태리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불상인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서민적인 모습의 미륵불상들과는 달리 통일신라 불상의 세련되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는 불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의로 볼 때 통일신라 불상 조각수법의 영향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격인 죽령길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는 큰 사찰들이 많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보이..

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1337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아치형 돌다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위치한 보물 1337호로 지정된 육송정 홍교는 아치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돌다리이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다리는 조선시대 강릉 이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에서 조선시대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립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의 다리인 건봉사와 홍파교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숙종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다리는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로 길이 12.3m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석축을 쌓아 만든 홍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로의 폭은 약 2m 정로로 우마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육송정 홍교가 있는 ..

보령 성주사지 서3층석탑 (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금당터 뒷편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석탑가운데 서쪽에 있는 3층석탑이다. 탑에는 장식물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탑을 장식하는 장식물들을 달아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사찰 가람배치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탑을 중심으로 하고 그 뒷편에 금당과 강당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성주사지는 금당뒷편에 3기의 석탑, 앞편에 1기의 석탑이 배치된 특이한 형태이다. 경주 감은사지나 불국사의 경우 2개의 탑을 두고 있고, 익산 미륵사지는 목탑과 석탑이 나란히 3기가 서 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데, 이 곳 성주사지는 금당앞에 1기의 오층석탑과 뒷편에 3기의 3층석탑이 있다. 동쪽편 석탑이 다른 곳에서 옮겨 왔다고 하니 아마도 2개의 3층석탑이 금당뒷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

남원 만복사지 석불입상 (보물 43호)

만복사 절터에 있는 남아 있는 이 불상은 만복사를 처음 지을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위 위에 부처가 서 있는 입상 형태의 불사으로 뒷편에는 광배를 두고 있다.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옷자락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이 불상은 입체감있게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애불상과 조각상의 중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부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뒷면에도 그림 형태로 간략하게 불상을 새겨 놓고 있다.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평지사찰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탑, 당간지주, 석좌 등 석재로 만든 유물들이 일부 남아 있다. 조선전기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

남원 만복사지 석좌, 거대한 청동불상을 올려 놓았던 자리 (보물31호)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남원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던 아주 큰 사찰로 남원성 동쪽편의 선원사와 더불어 남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큰 사찰이었다. 만인의총의 유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에서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고 수많은 수많은 관민이 죽었다. 이때 만복사도 함께 불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보물 31호로 지정된 만복사지 석좌는 사찰 서쪽편에 있던 불전의 불상을 올려놓았던 석좌로 육각형으로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이 석좌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상.중.하대를 조각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대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꽃을 장식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유행한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상대 중앙에는 불상을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만복사지 석좌..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보물32호)와 석인상

남원 만복사지 절터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와 석인상이다. 사찰문화재 중 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것이 아마도 당간지주이며, 대부분의 사찰에서 당간지주는 그 절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5m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조각수법에 세밀함이나 조형미 등은 통일신라시대나 삼국시대에 만들어 진 것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만복사지 입구에 있는 석인상은 높이 5.5m의 상당히 규모가 큰 석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만복사지만의 특별한 내력이 있는 석상으로 보인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이 되지 않고 있어 그냥 석인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설명에 의하면 석굴암에 나타난 금강역사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는 견해..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보물 30호)

남원 시가지 서쪽편에 위치하 남원 만복사는 고려 문종때 처음 지어진 사찰로 김시습의 소설 금호신화에 실린 만보사저포기의 무대로 유명하다. 만복사는 정유재란때 불타버리고 그 절터에선 오층석탑과 석좌,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몇 점의 석조 유물만 남아 있다. 그 중 만복사 절터 동쪽편에 서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초에 세운 것으로 그 원형이 많이 손상되어 있으며, 조형미도 크게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보물 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형적이 고려시대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단순한 형태의 석탑으로 그 내력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쌓아는데, 전체적으로 각 탑신과 기단 등 구성요소들간의 비례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어 보인다. 원래 이 ..

[봉화 닭실마을 충재박물관] 충재 선생과 당대 문인들과의 교류

조선 중종때 문신이던 충재 권벌 선생이 살았을 적에 많은 당대의 문인들고 교류한 흔적을 보여 주는 유물들이다. 주로 보물 902호로 '권벌종가유묵'으로 일괄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 보물 896호로 중요한 문서들이 지정되어 있다. 보물 896호로는 선생이 소중히 간직하던 성리학의 기본이 되는 책자인 근사록이 여러 권으로 재발간된 것들이 있고, 주자대전처럼 선생의 당대에 국왕으로부터 받은 책자들이 주를 이룬다. 당대 문인과의 교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퇴계 이황선생이 쓴 청암정 현판에 걸린 시와 당대 명필이 허목 선생이 쓴 '청암정사' 현판, 김구 선생이 쓴 글씨, 중국 명나라에서 가서 당대의 명필로부터 받은 글씨 등 다양한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봉화 닭실마을 충재선생 종가집 정자인 청암정에 ..

지역박물관 2010.10.24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인 상덕사 (보물 211호)

상덕사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과 제자 조목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 선생만이 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상덕사는 앞면 3칸 규모의 크지 않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로, 조선 선조때 지은 건물을 도산서원을 성역화하면서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로 지정된 토담도 돌담장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

조선 관아 2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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