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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19

[부산박물관] 조선시대 선비가문 고문서와 유물들, 기증 유물(2)

부산박물관 기증유물관에는 조선후기 관리를 반곡 이덕성(1655~1704)의 후손들이 기증한 보물 1501호 을 비롯하여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한 영양천씨 석대동파 고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반곡이덕성은 조선후기 숙종대의 문신으로 동래부사를 역임하면서 동래남문비를 중창한 인연으로 후손들이 부산박물관에 관련 유물들을 전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과거합격증인 홍패와 백패도 있지만, 그가 생전에 했던 중요한 행적 등을 보여주는 , 등의 초안을 비롯하여 많은 고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양천씨 고문서는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많은 공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절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김정희 필 법해도화, 19세기, 현수명 기증 김홍도 필 산수인물도, 18세..

지역박물관 2013.08.05

[부산박물관] 조선후기 백자와 기증 유물(1)

부산박물관도 다른 도시의 박물관과 마찬가치로 지역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실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2번째 도시답게 부산박물관은 타지역 박물관에 비해서 기증전시실의 규모도 크고 전시유물도 다양한 편이다. 부산이 역사의 중심지였던 도시가 아니기때문에 주로 골동품 성격을 갖는 조선후기 도자기.문서.생활도구.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역사적.고고학적 의미가 큰 유물은 많지 않은 편이다. 순백자와 청화백자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는 흰색을 기조로 하는 백자였다. 초기에는 순백자가 주로 생산되었으며, 중기 이후 청화.철화.동화의 색을 넣은 백자가 제작되었다. 순백자는 성립 이후 말기까지 주류자기로 계승되었으며, 초기의 우윳빛과 같은 유백색에서 설백, 회백, 청백으로 점차 발..

지역박물관 2013.07.29

[부산박물관]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의 부산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국제무역항으로 역사이래로 대일교류 창구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유일하게 왜관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부산항과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한 부산도심은 구한말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된 이래로 부산.일본간 페리선과 경부선 철도를 바탕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교토의 중심지로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이런 전통적인 이미지와 함께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유입으로 단시일내에 급격히 팽창한 도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산비탈에 빽빽히 들어선 판자집, 좁은 도로, 많은 사람들로 번잡함과 활기를 보여주는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등의 시장풍경 등은 해방 이후 고난에 찬 당시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부산이라는 ..

지역박물관 2013.07.29

[부산박물관] 일제강점기의 부산

조선후기 유일한 대일 교류 창구로서 왜관이 설치되었던 부산은 구한말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되면서 국제무역항이자 근대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중국과 연결되는 경부선철도의 개통으로 국제도시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조선후기 왜관이 설치되었던 용두산부근 초량지역은 일본 거류민이 늘어나고 일본에서는 관리를 파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부산과 동래를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도시의 규모는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부산도심에는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 다양한 서양문화가 유입되었으며, 부산과 일본을 왕래하는 페리선과 경부선 열차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이 왕래함에 따라 서양문화와 함께 일본 문화 또한 많이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의 이런 도시적..

지역박물관 2013.07.24

[부산박물관] 근대화시기 교통.통신의 발달과 일제강점기 교육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대도시이자 제1무역항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관문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부산은 선사시대 이래로 일본과의 교류 창구가 되었던 지역으로 고려말 이후 일본의 요구에 개항된 삼포 중 하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일본과의 유일한 교류창구였던 초량왜관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19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으로 인천, 원산과 함께 개항된 부산은 근대도시로의 발전이 가장 빠르게 진전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장점으로 부산은 인천과 함께 교통.통신을 비롯한 근대적인 문물이 빠르게 도입되었으며 현대적인 도시로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인프라인 항만시설이 구축되었으며, 서울을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철도망은 1905년에 개..

지역박물관 2013.07.22

[부산박물관] 부산항의 개항과 근대도시 부산

한반도 동남부해안에 위치한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를 갖춘 무역항이자 제2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선사시대 이래로 부산은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창구로 역할을 해 왔으며 조선 태종대에 일본에 공식무역항으로 개항된 삼포 중 하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된 초량왜관은 일본 에도막부와 조선간의 유일한 교류창구로서 무역항과 실무외교가 펼쳐졌던 곳이다. 구한말 병인.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조선은 서구열강에 개항요구를 물리쳤으나 일본과는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하면서 서구열강에 문호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강화도 조약은 서구열강에 굴복하여 개항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개항되었던 초량왜관을 확장하고 인천과 원산에 추가로 개방하여 왜관을 설치한다는 ..

지역박물관 2013.07.15

[부산박물관] 동래장터와 부산의 민속

동래는 조선시대 부산지역의 중심지역으로 동래읍성과 동래도호부 관아가 설치되었던 지역이다. 조선 태종대에 일본과 무역창구였던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이래로 부산은 일본과의 인적.물적 교류의 중심지로 현 용두산공원에 설치된 초량왜관에는 일본인들이 머물면서 무역거래를 하였다고 하면, 그 상대방이 되는 조선 상인들은 주로 동래에 머물면서 양국간 무역에 종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과 일본간의 무역은 관에서 주도하는 공무역, 왜관내에서 거래되는 사무역, 국가의 감시를 피해 행해지는 밀무역의 형태가 있었는데, 조선은 일본에 쌀, 인삼, 중국에서 수입한 비단 등을 일본에 수출하였으며, 일본으로부터는 화폐로 통용될 수 있는 은을 비롯하여 구리 등의 광물과 염료 등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동래에 거주하면서 왜관에서 일본..

지역박물관 2013.07.11

[부산박물관] 초량왜관, 조선시대 한.일간 무역거래와 외교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곳

왜관은 조선시대 일본과의 통상을 위해 무역항에 설치한 것으로 상인들에 숙박을 제공하고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고려시대 일본과의 무역은 신안앞바다에서 침몰된 무역선에서 출토된 유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중기 이후 몽골세력에 고려가 굴복한 이후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당시 일본에 대해서는 금수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일본내부 사정 또한 주도세력이 교토의 귀족세력에서 쇼군의 막부를 중심으로 지방호족이라 할 수 있는 사무라이세력으로 주도세력이 교체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큐슈지역의 사무라이의 후원을 받은 왜구들이 한반도와 중국해안지방 노략질이 극심하여 고려와 조선의 조성은 왜구들을 토벌하는 한편 회유책으로 무역을 ..

지역박물관 2013.07.09

[부산박물관] 조선통신사, 일본 에도막부에 파견되었던 사절단

통신사란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로 왜구가 창궐하던 고려말에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일본 막부와의 협상 창구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태종대인 1403년 일본 아사카정권이 명나라와 외교관계가 성립되자, 이듬해 조선과 일본은 상호 외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절을 파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전기까지는 통신사의 규모가 크지 않았으며 그 명칭은 보빙사.회례사 등 다양한 이름이 쓰여졌다. 조선전기에는 세종, 세조, 성종대에 통신사가 파견되었다가 그 이후 임진왜란 직전까지 중단되었는데, 이는 일본이 오랜 기간 내전이라 할 수 있는 전국시대였기때문에 집권세력이 불투명하여 외교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기때문이라 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 일본을 다녀..

지역박물관 2013.07.08

[부산박물관] 임진왜란 당시 무기와 부산지역 사람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전쟁이다. 당시 조선은 개국이래로 큰 전쟁이 없었고, 중종반정 이후 지배계층은 정통 성리학을 주창한 유학자들 중심의 관료주의 사회로 바뀌어 있었다. 반면에 일본은 오랜 세월에 걸친 내전을 종식하고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였으며, 왜군은 내전동안 쌓은 전투경험이 많은 무장세력들이 국가적으로 잉여자원화되어 외부로의 분출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임진왜란은 고니시가 이끄는 병력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부산지역에서는 정발장군이 지키던 부산진성, 동래부사 송상현의 동래읍성, 다대진첨사 윤흥의 다대진에서는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함락되었고 경상좌수영은 수사 박홍이 도망가면서 큰 저항없이 궤멸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과 조선의 군사력..

지역박물관 2013.06.28

[부산박물관] 임진왜란과 부산

부산은 고려말 이후 왜구가 한반도 해안지역에 출발하여 약탈하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국방상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후 왜구를 토벌하는 등 강.온 양면으로 여러 조치를 취하면서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부산포, 염포(울산), 제포(진해)에 왜관을 설치하였다. 이후에 한반도 남해안은 일본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중종대에 일본이 삼포왜란을 일으키는 등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임진왜란 전 조선수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무기의 개발 등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중기 내력의 산성이나 읍성 등은 전쟁에 대비하지 못하였으며, 각 지방의 군사체제와 전쟁에 대한 준비는 미흡했던 반면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수군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것으로 보이..

지역박물관 2013.06.26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석조유물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부산박물관은 시립박물관으로 부산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국립박물관이 없고 시립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는 부산.경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가야연맹체의 유물이 주를 이루기때문에 인근 김해와 서부경남지역의 중심도시 진주에 국립박물관을 두고 있다. 부산은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김해와 함께 금관가야의 중심지였을때 가장 번성했고, 그 이후 조선시대 일본과의 교류창구역할을 하면서 국제도시로서 역할을 했던 도시로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와 조선중기 이후의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산박물관 또한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야외박물관을 두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

지역박물관 2013.06.24

[부산박물관] 조선시대의 부산

통일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건국되면서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수도가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겨짐에 따라 부산은 중심부와 멀어지면서 그 위상은 변방의 작은 고을로 위상이 격하되었다. 실제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산(동래)은 동평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는 지역의 주요 거점이었나, 고려시대에는 울주(울산)의 속으로 격하되었다. 또한 한반도 동남해안에 위치한 부산의 지리적 특성은 일본과의 교류나 긴장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인데, 고려시대 일본은 귀족문화과 절정을 이루던 시기로 한반도와는 군사적인 긴장관계가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말 대몽항쟁기를 지나고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 실패로 끝나면서 몽골은 일본과의 교류를 끊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일본 내부사정도 귀족세력의 쇠퇴하고 막부를 중심으..

지역박물관 2013.06.21

[부산박물관] 고려시대의 부산

삼국시대 김해지역과 함께 가야연맹을 이끌었던 금관가야의 중심지역이었던 동래를 중심으로 한 부산지역은 통일신라시대를 지나면서 중앙집권체제에서 일개 지방으로 그 위상이 떨어졌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경주와 가까웠던 지리적 잇점이 사라지면서 부산은 정치중심이었던 수도 개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지방으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동래군은 지방관이 파견되는 군현으로 동평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두는 비교적 큰 고을이었나, 고려시대에는 그 지위를 상실하고 인근 울주의 속현이 바뀌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고려말 왜구의 침입을 제외하고는 일본과의 교류나 전쟁이 많지 않았기때문에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서 멀어진 변방지역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부산에는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많지 않은 편이며, 경제력 또한 크지 ..

지역박물관 2013.06.19

[부산박물관] 통일신라시대의 부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진전되어 지방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유행으로 불교식 장례문화인 화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유물들이 껴묻거리로 묻혔던 거대한 고분은 더이상 조성되지 않고, 껴묻거리도 형식적인 모습으로 간소화 된다. 이런 연유로 경주로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은 그 이전시대에 비해서 많이 출토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사찰이 조성되면서 불전을 크게 건축하고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승탑이 많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시대 부산은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중앙집권하에서 하나의 작은 지역으로 양주(지금의 양산)에 속한 동래군으로 편재되었다. 부산의 통일신라 유적으로 화엄..

지역박물관 2013.06.17

[부산박물관] 삼국시대의 부산

부산지역은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구석기시대 이래로 인류가 정착해서 살아왔던 지역으로 많은 유적지들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지나면서 도구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늘어남에 따라 촌락을 이루어 살기시작했으며, 계급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던 촌락들이 점차로 온천천과 수영천이 흐르는 동래지역을 중심으로 성읍국가를 형성하였다. 삼한시대에는 변한12국 중 하나인 독로국이 자리잡았으며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부산은 김해의 구야국과 함께 가야연맹체에서 가장 강력했던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발달한다. 동래의 복천동고분군은 이지역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당시 이지역의 번영을 보여주는 큰 무덤들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김해의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평가받고 ..

지역박물관 2013.06.14

[부산박물관] 부산의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중국 동북지역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최초의 국가라 할 수 있는 고조선의 역사와 같이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기 크게 발전하면서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고 사회적으로 계급이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기술의 발달로 청동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청동으로는 주로 신분이나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검,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청동의기를 주로 만들었으며, 실생활에서는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와 목기가 주로 사용되었다.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는 주로 서.남해안지역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흔적들은 당시의 매장방식인 고인돌의 분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부산지역은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고, 수영천 등 하천이 흐르고 있어 구..

지역박물관 2013.06.13

[부산박물관] 신석기시대 토기와 장신구, 일본 열도와 교류

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인 부산은 구석기시대 이래로 인류가 계속 거주했던 지역으로 패총을 비롯하여 많은 주거, 생활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부산지역에서는 약 8천년전 쯤부터 바닷가 주위로 중심으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이 살았던 지역으로 다양한 시대의 생활유적들이 출토되고 있는 영도의 동삼동 패총을 비롯하여 영선동.율리.수가리 패총과 조리시설이 화덕이 출토된 범방동 유적지가 대표적이다. 동삼동과 범방동패총에서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다양한 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말해주는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사람얼굴모양을 새긴 조개껍질은 한반도 신석시인들의 정신세계를 보여..

지역박물관 2013.06.10

[부산박물관] 선사시대의 부산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로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지역적 관계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 교류가 이루어졌던 지역이다. 부산은 해발 500m 정도의 구릉성 산지인 금정산을 중심으로 백양산, 엄관산, 구덕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으로는 한반도에서 두번째로 긴 낙동강이 바다를 흘러드는 하구가 있다. 양산지역에서 해운대 앞 수영만으로 흘러드는 수영강이 흐르고 있어 구석기시대 이래로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던 지역이다. 부산에는 해운대 일대에서 약 2만전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유물들이 해운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수산자원이 풍부하였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연환경의 장점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비교적 많은 선사유적지들이 ..

지역박물관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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