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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4

[경기도박물관] 조선시대 도자기, 분청사기와 백자

고려의 화려한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청자는 고려말 혼란기를 거치면서 강진을 비롯하여 남서해안이 왜구의 침범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기술적으로 쇠퇴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대체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인 분청사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유교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에서는 도자기의 수요층이 귀족세력이었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왕실 주관으로 필요한 그릇을 조달하기 위한 관청인 사옹원과 그 분소인 분원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분원에서는 조선초기에는 분청사기, 중기 이후에는 조선 백자를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였다. 조선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백자를 만든 국가였지만, 상업적인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기때문에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어내지는 못하고 조선후기 이후에는 오히려 일본에서 양질의 도자기를 만들어 세계적인 ..

지역박물관 2012.01.09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분청사기의 발전과 쇠퇴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도자기제작기법으로 '백토로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으로 20세기에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초에 많이 사용되었던 분청사기는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라고도 할 수 있는 도자기이다.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15세기로 왕실에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도자기이다. 고려 청자가 주로 귀족층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소량생산을 했던 것에 비해서 분청사기는 고려말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마터 덕분에 대량생산되었다고 하며, 그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양질의 것과 일반적인 것과는 수준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각지에서 약 150여년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세계적으로 순백의..

중앙박물관 2011.02.16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조선초기 분청사기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도자기인 분청사기는 회청색 그릇에 흰 흙을 입혀 다양하게 장식하는 도자기로 그 기술의 근원은 고려시대 상감청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청자의 주요 생산지인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가마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피폐화되면서 도자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분청사기는 만들어진 시기가 15~16세기에 걸쳐 약 150년의 기간 동안 만들어졌다.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보이는 분청사기는 다른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적인 미를 잘 담아내고 있어, 고려청자, 조선백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라 할 수 있다. 분청사기는 주로 민간에서 운용하는 가마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광주지역에 관..

중앙박물관 2011.02.15

[서울 고려대박물관] 한국의 도자기, 분청사기인화문태호 (국보177호)

고려대 박물관에는 1970년 대학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국보 177호인 분청사기인화문태호를 비롯하여 다수의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다. 청자를 비롯하여 도자기류는 유물 중에서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고가의 골동품인 관계로 학교에서 발견된 이 분청사기를 제외하고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없어보이지만, 시대에 따른 제작방식인 청자, 삼감청자, 분청사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를 소장.전시하고 있다. 그 형태면에서도 호(술이나 물을 담는 서양배오양의 용기), 접시, 정병, 연적, 주자, 대접, 접시 등 도자기로 만들었던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드를 전시하고 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은 많지 않지만 한국의 도자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그 다양성을 경험하기에 좋은 전시내용을 하고 있다..

지역박물관 201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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