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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25

부여 흥학당,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흥학당(興學堂)이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로 'ㄷ'자형으로 지어진 본채만 있고 행랑채 등 부속건물을 두고 있지 않다. 가운데 4칸은 넓은 대청마루, 양쪽에 방과 부엌들을 두고 있다. 흥학당은 과천현감을 지낸 조태진을 모신 사당인 남산사 부속건물로 1770년에 지어졌다. 이 지역에 세거지를 두고 있는 풍양조씨 집안에서 지은 것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성격도 같이 가지고 있다. 뒷편에는 사당인 남산사(南山祠)와 영당(影堂)을 두고 있다. 흥학당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넓은 넓은 대청마루와 방, 부엌으로 된 본채를 제외하고 행랑채를 두고 있지 않다. 흥학당 출입문 흥학당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서당 건물이다. 가운데 4칸 넓은 ..

단군성전, 사직공원에 위치한 단군사당

사직공원 뒷편 황학정이 있는 언덕에 위치한 단군성전(檀君聖殿)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모신 대표적인 사당이다. 이 사당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해방 이후인 1968년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1990년대 쌍용그룹의 지원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은 단군 영정과 단군상을 모시고 있으며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百惡殿)이라 부른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거나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직공원 뒷편 인왕산길에서 볼 수 있는 단군성전 정문. 사직공원과 연결된 계단에서 출입하는 문 단군상과 영정을 모신 사당. 사당내부. 안내표지판

강화 충렬사(忠烈祠), 김상용을 비롯한 병자호란때 순절한 인물들을 모신 서원.

1641년(인조19)에 김상용을 비롯하여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인물들을 모시기 위해 세운 강화 충렬사(忠烈祠)이다. 김상용(金尙容)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병자호란때 왕자들을 모시고 강화로 갔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하여 순절한 6인을 모셨으나, 이후 당시 같이 순절한 인물들을 추가하여 총 28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처음에는 현충사(顯忠祠)라 불렀으며, 효종으로부터 '충렬사(忠烈祠)'라는 이름과 현판을 하사받았다. 강화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으로 원래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제사기능만 남아 있다.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없고 사당, 외삼문, 수직방과 전사청 등만 남아 있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

서울 와룡묘, 남산 아래 자리잡은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

남산공원 북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와룡묘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선조대에 와룡묘를 짓게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남산 와룡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와룡묘는 구한말 고종의 후궁으로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설립하는 등 큰 엄귀비가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사당은 192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3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묘가 중국 전통 사당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와룡묘에는 단군사당, 삼성각 등 민속신앙 요소가 강한 사당들을 같이 모시고 있어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한국적인 사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와룡당이라 부르는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와 비슷한 성격을..

고양 행주서원지와 충장사, 권율장군을 모신 서원과 사당

조선시대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있었던 행주산성 아래에 있는 조그만 서원이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강학과 제사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서원에 모신 인물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학문과 사상을 논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 행주서원은 구한말인 1842년에 권율장군을을 모시는 서원 없어서 국왕인 헌종의 명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제사기능을 주로 하고 있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제사기능을 1970년에 행주산성내 사당인 충장사로 옮겨져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서원이다. 그래서 이름도 행주서원 옛터라는 의미로 행주서원지라고 부른다. 행주산성 아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행주나루터 인근에 세워진 이 행주서원 주변은 서울에서 가까운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다. 행주서원지, 고양시 ..

김포 한재당, 초기 사림을 대표하는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사당인 한재당이다. 조선중기 문신 이목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구한말인 헌종14년(1848)에 처음 지어졌으며 현재의 사당은 1974년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목조건물이었은 1974년 중건하면서 콘크리이트로 지었기때문 전통 건축물로서 의미는 없지만 조선후기 양식이 남아 있는 사당이다. 원래는 일주문과 담장으로 둘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담장과 내.외삼문으로 둘러져 있고 마당 한쪽에는 정자가 세워졌다. 이목은 조선 중기 성종~연산군대의 문신으로 조선시대 사림세력을 이끈 김굉필.정여창과 함께 김종직 문하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1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25세에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김종직의 제자로 무오사화때 처형되었으며, 갑자사화때..

진주 경절사, 진주하씨 시조 하공진을 모신 사당

진주성내 경상우병영 운주헌을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경절사라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경절사는 고려시대 거란의 2침입때 큰 공을 세운 하공진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경절사는 원래 진주시 수곡면에 있었는데 199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서원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뒷편에 사당인 경절사가 있고, 앞쪽에 재실 성격의 건물 2동이 마주보고 있다. 하공진장군은 진주성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곳에 있던 경남도청 건물 등이 허물어지고 사적지로 재정비되는 과정에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인 진주하씨문중에서 사당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하공진(?~1011년)은 고려초 문신으로 진주하씨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고려초 목종을 폐위시킨 강조의 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거란의 2차침입때 ..

진주 창렬사와 비석들,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이들을 기리는 사당

진주성은 진주도심 남강변이 있는 성곽으로 둘레 1.7km의 내성과 4km의 외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성곽이다. 경상도 남해안에서 섬진강을 따라서 호남평야와 연결되는 교통로을 지키는 요새로 삼국시대 백제가 토성을 쌓은 이래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경상우병영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2차례에 걸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1차 진주성싸움은 김시민장군의 지휘 아래 3,800여명의 군사로 2만명의 왜군을 물리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이다. 2차 진주성싸움은 정유재란 때 왜군의 주력부대가 호남평야를 장악하기 위해 5만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와서 벌인 싸움으로 비록 황진.최경회가 이끄는 관군과 김천일이 지휘하는 의병이 모두 순국한 끝에 패전한 전투이기는..

진주성 의기사와 의암바위, 논개 영정을 모신 사당과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

진주성은 남해안 지역에서 섬진강을 따라서 남원을 거쳐 호남평야와 연결되는 교통로를 막고 있는 국방상 중요한 요지이다. 이곳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중 왜군과 2차례의 큰 전투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였던 진주대첩으로 호남지방으로 진격하려는 2만여명의 왜군을 진주목사 김시민을 중심으로 3,800여명의 관군이 치열한 공방전 끝에 물리친 전투였으며, 2번째는 정유재란때 3만여명의 대병력으로 공세를 펼친 왜군에 맞서 3천여명의 조선군이 공방을 벌려 끝내 진주성이 함락된 전투가 있었다. 특히 정유재란때 왜군의 대공세로 펼쳐진 2차 진주성 싸움에서는 의병장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를 비롯하여 많은 관민들이 왜군의 공세에 거세게 저항했으나,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수만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고..

경주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6부촌장을 모신 사당

경주시 탑동 신라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우물제사 유적인 경주 나정 안쪽에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신라를 건국한 사로6촌의 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가 있다. 이 사당은 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문화재로서 의미가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경주와 신라의 건국을 설명해주튼 장소라 할 수 있다. 양산재는 6부촌장을 모신 사당과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양산재를 관리하는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경주 남산의 북쪽자락에 있는 남산신성 아래의 마을로 신라 사로 6촌 중 돌산고허촌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남간사 절터가 있으며, 남쪽으로 경주 포석정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를 건국한 주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로육촌은 알천 북쪽에 위치한 ..

경주 계림세묘와 숭혜전, 신라 김씨 시조인 김알지와 그 후손 중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을 모신 사당

신라는 김씨, 박씨, 석씨가 돌아가면서 왕위를 승계하다가 신라 17대 내물왕(재위 356~402년) 때부터 '마림간'라라는 왕의 칭호를 처음 사용하면서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였다. 신라에 가장 오랜기간 왕위를 세습한 김씨의 시조는 계림에서 금으로된 조그만 궤짝에서 태어났다는 김알지를 시조이며, 그의 7대 후손인 미추왕이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미추왕릉이 있는 경주 대릉원에서 정남방향 담장밖에는 미추왕과 문무대왕,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모신 사당이 있고, 그 앞쪽에는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모신 사당이 계림세묘가 있다. 숭혜전은 원래 신라 마지막 임금으로 경주김씨의 실질적인 시조라 할 수 있는 경순왕을 모신 사당이었으나 고종대에 그 기능이 확장되어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 삼국통일을 ..

논산 노성 궐리사,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노론을 대표하는 송시열이 건립을 추진하였고, 그의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강릉, 제천, 화성(수원)과 이곳 논산의 노성현에 세웠는데 현재는 노성 궐리사만 남아 있다고 한다. 궐리사는 중국 명나라에 대한 의리론을 주찬하였던 송시열이 취한 여러 조치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궐리사는 공자를 모신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향교의 대성전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사당과 강당으로 이루어진 건물배치 등에서도 큰 차이점을 찾을 수는 없다. 노성 궐리사는 옛 노성현 관아 소재지가 있는 노성산은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과 지형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구산이라고 불리웠으며, 고장의 명칭도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와 연관지어 정조대에 노성현으로 ..

대구 달성 육신사,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이라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단종복위를 꽤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은 달성군 하빈면에서도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묘골마을 안쪽에 위치한 육신사는 세조 때 사육신인 여섯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원래는 인근에 있던 낙빈서원내 있던 하빈사에서 모셨는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대 전국적으로 실시된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하빈사에는 박팽년만을 모셨으나 ..

한국민속촌, 민속신앙 서낭당과 유교식 사당

한국민속촌은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모습을 복원한 곳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속신앙인 서낭당의 다양한 모습을 마을 입구에 잘 꾸며놓고 있다. 예날부터 우리나른 마을 입구에는 질병이나 재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장승을 비롯하여 선돌.돌탑.솟대.당나무.당집 등 다양한 형태로 신앙대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를 매개로 신에게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삶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물을 상징하는 물새를 장대위에 세운 솟대와 선돌 등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당이 동아시아지역 토착신앙이라고 한다면, 조선사회 신앙의 중심은 조상을 섬기는 제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

고택_정원 2011.06.26

포천 청성사와 채산사, 최치원과 최익현을 모신 사당

구한말 유학자로 일제에 항거하다 대마도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출신지역이 포천인 관계로 포천시 신북면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인 채산사가 마을 뒷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구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항로의 제자로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부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의 사당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7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당이 세워진 많지 않은 인물 중 한사람이다. 그의 사당 뒷편으로는 경주최씨의 시조라 일컫어도 무방한 통일신라시대 유학자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이 청성사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 지역에 경주최씨 집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채산사 사당 출입문이 삼문. 오래된 사당으로 보이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나 1947년..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인 상덕사 (보물 211호)

상덕사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과 제자 조목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 선생만이 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상덕사는 앞면 3칸 규모의 크지 않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로, 조선 선조때 지은 건물을 도산서원을 성역화하면서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로 지정된 토담도 돌담장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

조선 관아 2010.10.20

[파주 자운서원] 문성사, 율곡 이이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자운서원 문성사는 율곡 이이선생과 제자들인 김장생 선생, 박세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어진 것을 60년대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당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학휴묘의 공간배치에 따라서 자운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의 경우 대정전이나 사당들의 출입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자운서원의 문성사는 아산 현충사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 누구나 참배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율곡 선생이 영정이 같이 모셔져 있다. 자운서원 배향공간 건물인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문성사 내부. 선생의 영정으로 보면 얼굴이 호남형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인기가 좋았을..

[안동 병산서원] 서애 유성룡을 모신 사당인 존덕사

병산서원의 제향공간인 존덕사와 전사청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풍악 서당에 선생을 기리는 존덕사를 세움으로서 서원으로 기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존덕사에는 서애 유성룡 선생을 주향으로 하고 후손인 그의 아들 유진 선생을 배향으로 하고 있다. 병산서원의 특징 중의 하나로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존덕사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사의 편의성과 건물의 조화를 고려한 실용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병산서원에서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서애 유성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존덕사. 정면 3칸으로 규모가 웅장하거나 화려하게 지어 지지는 않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유교정신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병산서원 존덕사 앞 마당에 있는 팔각 기둥 모양의 노주석. 야간 조명을 위해 불을 밝히는 역할..

안동 의성김씨종택 (보물) 영정실, 경묘각

안동 의성김씨종택은 종손의 저택답게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관련된 건물이 경묘각, 영정실, 이름을 적어놓지 않은 작은 건물을 포함하여 3동의 건물이 있어서 웬만한 서원 못지 않은 규모라 할 수 있다. 이 3동의 건물은 손님이 드나드는 사랑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고 있다. 보통 유명한 사람의 고택인 경우에도 작은 규모의 사당 건물 1동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안동 의성김씨종택에는 3동의 건물이 조상을 모시는 기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안동 의성김씨종택 사랑채 바로 위쪽으로는 사당 기능을 하고 있는 영정실, 경묘각 2동의 건물이 있고, 아래쪽에는 기념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숫자도 많고 다른 고택의 사당에 비해 건물의 크기도 상당히 크다. 안동 의성김씨종택에서..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영정을 모신 본전

대표적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지인 아산 현충사 본전입니다. 충무공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70년대 성역화 사업으로 만든 한국식 사당입니다. 전통적 사당에서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멋은 부족하지만 당시의 경제력을 고려해서 최대한 노력한 결과 아주 웅장하게 보이기는 합니다. 현판도 순 한글로 '현충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충사 본전 사당 주위의 조경에서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현충사입니다. 대표적인 충무공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생전에 충무공께서 사시던 고택 옆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지어진 한국식 사당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충사 본전의 출입문인 충의문입니다. 충의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본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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