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서당 7

부여 흥학당,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흥학당(興學堂)이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로 'ㄷ'자형으로 지어진 본채만 있고 행랑채 등 부속건물을 두고 있지 않다. 가운데 4칸은 넓은 대청마루, 양쪽에 방과 부엌들을 두고 있다. 흥학당은 과천현감을 지낸 조태진을 모신 사당인 남산사 부속건물로 1770년에 지어졌다. 이 지역에 세거지를 두고 있는 풍양조씨 집안에서 지은 것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성격도 같이 가지고 있다. 뒷편에는 사당인 남산사(南山祠)와 영당(影堂)을 두고 있다. 흥학당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넓은 넓은 대청마루와 방, 부엌으로 된 본채를 제외하고 행랑채를 두고 있지 않다. 흥학당 출입문 흥학당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서당 건물이다. 가운데 4칸 넓은 ..

담양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마을 문중에서 세운 마을 글방

담양 광주댐 아래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 마을 언덕에 위치한 죽림재는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서원과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1426~)이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세운 이후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서원과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마을 건너편에 조선중기 이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양자징 주돌 창평지역 25개 성씨가 후학을 양성하기 건립한 수남학구당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가 있는 분향리 마을은 담양 일대에서 경치가 좋아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양반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 나와서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죽림재 ..

담양 수북학구당, 진사를 많이 배출한 지역민들이 건립한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담양군은 광주광역시 북동쪽에 위치한 군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큰 강인 영산강이 발원한다. 조선시대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합쳐서 오늘날 담양군을 이루고 있으며, 영산강과 지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고장이었기때문에 호남지역에서도 대표적으로 양반문화가 발달되었던 곳이다. 담양에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조성한 크고 작은 정자와 원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았던 서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사설교육기관이었던 학구당이 몇곳 남아 있다. 담양군 수북면 병풍산(해발 822m) 남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수북학구당이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성..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형적인 마을서당인 강학당

경주 양동민속마을 입구에서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 여주이씨 집안의 서당인 강학당이다. 마을입구를 오가는 사람들과 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앞면 4칸으로 어린학생들이 공부하던 넓은 대청마루 2칸과 양쪽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있는 구조이며, 건물 왼쪽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대청마루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서당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방의 호족들이 후세들을 교유시키기 위해서 세운 사립교육기관을 통칭하며, 당나라에서 유학과 문물 등을 많이 받아들였던 통일신라 이후 각처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대체로 서당은 공립교육기관인 향교나 성균관에 들어가기 전 공부를 하던 마을단위의 ..

경주 양동민속마을,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경산서당

경주 양동민속마을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서당이다. 경산서당은 헌종대에 회재 이언적의 후손인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운 서당인데, 원래는 마을 뒷편 안계저수지 안에 있던 것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선후기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은 대부분 처음에는 후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원 서당에서 출발하여 서원으로 바뀌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는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조선후기는 전국각지에 서원이 난립하던 시기로,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기가 쉽지가 않아서 서당의 형식을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당을 제외하고는 건물규모나 배치는 서원과 큰 차이가 없다. 경산서당은 현재 강당, 동재,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왼쪽편에 관리사로 보이는..

경주 도봉서당, 서원 형식의 재실

태종무열왕릉과 진흥왕릉이 위치한 경주 서악동 마을에 소재한 도봉서당이다. 서당이라는 이름에서 조선시대 초급 교육기관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서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원래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을 모시기 위해서 후학들이 세운 사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립교육기관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초기 서원들은 학덕과 지역에 기반을 갖춘 인물이 운영하던 서당에서 출발해 그를 모신 사당을 설립하고 국왕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학문적 업적보다는 문중 인물을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서원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이런 서원에서는 문중사람들이 모여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 붕당정치의 지역기반이 되기는 폐단을 낳기도 한 것이다. 조선후기 서원의 남설로 세금의..

양평 벽계강당, 이항로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

양평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이 생가 옆에 있는 벽계강당이다. 이항로 선생은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추천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구하말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분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 건물 구조를 보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으며, 대부분의 후학 양성은 생가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택 바로 옆에 큰 강당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폐해가 많았던 것을 느껴서인지 서원을 건립하지는 않고 강당건물만 크게 지어 놓고 있다. 실제로는 서원의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