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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23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석조유물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부산박물관은 시립박물관으로 부산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국립박물관이 없고 시립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는 부산.경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 가야연맹체의 유물이 주를 이루기때문에 인근 김해와 서부경남지역의 중심도시 진주에 국립박물관을 두고 있다. 부산은 가야연맹체의 일원으로 김해와 함께 금관가야의 중심지였을때 가장 번성했고, 그 이후 조선시대 일본과의 교류창구역할을 하면서 국제도시로서 역할을 했던 도시로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삼국시대와 조선중기 이후의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산박물관 또한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야외박물관을 두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

지역박물관 2013.06.24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231)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져져 있지 않지만 백제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석등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석등은 승탑이나 석탑처럼 목조건물 형태를 하고 있음 기본적으로 4각, 5각, 8각형을 하고 있으며, 기단이 되는 하대석, 기둥인 중대석과 그 위의 상대석,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 보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231호로 지정된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

담양 개선사지 석등 (보물111호),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 주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큰 석등

개선사지는 담양군 남면 학선리 광주호 서쪽편에 석등만이 남아 있는 절터이다. 석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절터는 오랜 세월 농경지로 사용되어서 옛 절이 있었던 흔적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개선사지는 가사문학의 산실로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아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정자와 정원을 조성하여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증암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광주댐 건설로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주변지역이 댐건설로 수몰되지 않았다면 농경지가 풍부한 마을과 가까운 전형적인 통일신라 평지사찰의 입지를 갖추고 있던 사찰로 석등의 규모로 볼 때 꽤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땅속..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다. 원래 여주 고달사 절터에 있던 것으로 받침돌에 있는 웅크린 사자가 인상적이다.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상으로도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상으로 통일신라의 예술성과 조각기술이 남아 있는 고려전기의 유물이다. 이 석등은 높이 2.4m로 원래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나, 2000년 실시한 고달사 절터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상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2마리의 웅크린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받침돌에는 연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화사석은 4면이 창으로 뚫린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이 있었던 고달사는 여주 남한강변에서 북쪽 강원도 원조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보..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보물 364호), 고려초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석등

보물 364호로 지정된 이 석등은 원래 나주읍 서문 안에 있던 것을 1929년에 경복궁 정원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8각형을 하고 있는 석등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이다. 복원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 구조와 조각수법이 우수한편으로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세겨져 있으며, 받침돌은 8각형으로 연꽃무늬를 새겼다. 직선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8각형의 간주석에는 각면에 테를 둘렀으며, 그 안에 글씨를 새겨 놓고 있다. 화개석과 지붕돌, 상륜부는 없어졌던 것을 석등을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석등 받침에 고려 선종 10년(1093)에 이 석등을 세웠음을 기록해 놓..

개성 현화사 석등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현화사 석등은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석등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특이한 외형을 하고 있다. 현화사는 개성에 있었던 사찰인데, 석등의 규모로 보아서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는 높지 않아 보이고, 투박한 느낌을 준다. 석등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서 중생을 착한길로 인도하다는 의미를 갖는 공양물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석등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익산 미륵사지에 백제에서 만들었던 석등의 하대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이후 석등은 기본적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고려시대 이후 4각형 석등이 많이 만들..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석등, 밝게 빛나는 부처님 말씀

석등은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은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고, 탑과 불상 앞에 등불을 밝히면 내세에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난 초파일에 사찰입구에서부터 불전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연등을 볼 수 있다.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석등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백제의 큰 사찰이었던 미륵사 절터에서 가장 오래된 석등의 화개석과 팔각연꽃무늬 하대석이 발견되었다. 원래 석등은 불전 앞을 밝히던 기능을 갖는데, 그 역할이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비롯하여 고려시대부터는 능묘를 밝히는 장명등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본격적..

논산 관촉사 석등(보물232호),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등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도심 남쪽편 낮은 야산 중턱에서 백제의 마지막 결전장이었던 황산벌을 내려다 보고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이 곳은 은진미륵으로 잘 알려진 고려초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토속적이면서도 웅장한 석조미륵보살상이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의 창건 또한 고려초 이 곳에 거대한 미륵보살상을 세움으로서 시작되었다. 관촉사는 유명한 사찰이기는 하지만 사찰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불교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물 232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등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등으로 미륵보살입상 앞에 세워진 거대한 석등이다. 관촉사 석등은 미륵보살입상의 거대한 규모에 걸맞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등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으며, 안상이 새겨진 하대석과 ..

부산 범어사 석등과 당간지주

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문화재 중 석탑과 함께 그 내력이 가장 오래된 석등이다. 이 석등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등의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자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미가 떨어진다. 통일신라에 만들어졌으면 상당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원형이 유지되지 않았고 조형미가 떨어져서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것 같다. 범어사에는 석등 외에 오래되어 보이는 여러개의 당간지주가 있는데, 이 또한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런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경내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옛 당간지주에 당간..

양양 선림원지 석등 (보물 445호)

선림원지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절터이다. 선림원지가 있는 미천골은 강원도 양양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서 홍천으로 들어가는 구룡령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곳 구룡령을 지나는 여행객들이 하룻밤을 묵어가야만 하는 장소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다. 이 곳에서 많은 사람이 묵어서 그런지 쌀씻은 물이 개천으로 흘러들어 하얀물이 흐른다고 해서 미천골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선림원지 옛절터 한쪽편에 있는 홍각선사탑비 앞에 있는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석등으로 석재의 재질이나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아직도 원형에 가까이 보존되어 있다. 팔각으로 이루어진 하대에는 안상이 음각..

부여 무량사석등 (보물 233호)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초 생육신이자 당대의 천재로 잘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인조때 크게 중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량사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극락전과 그 앞에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오층석탑과 석등이 극락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을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느낌을 주고 있기는 ..

보령 성주사지석등

보령 성주사지 절터에서 중심 영역이 되는 금당터 앞 오층석탑과 같이 있는 석등이다. 성주사의 사찰규모와 역사성, 오층석탑의 조형미와 완성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원래 석탑을 만들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대에 석등을 추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는 석탑 앞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을 이 곳 석탑들을 해체 수리할 때 같이 수리한 것이라고 한다. 지대석 아랫돌에는 여덟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임이 놓여 있고 옥개석은 처마가 약간 위로 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솜씨가 뒷편의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봐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 석등의 화사석이 크기가 작고 세부적으로 조각이 잘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 성..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양주 회암사 동쪽 언덕에 있는 3기의 부도 중 제일 위쪽에 위치한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이다. 다른 부도와는 달리 앞쪽에 탑비는 남아 있지 않다. 나옹선사는 고려말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양주 회암사를 아주 크게 중창한 인물이다. 나옹선사의 명성에 비해서 그 부도탑은 단촐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앞쪽에 있는 지공선사 부도탑과 함께 전통적인 고승의 부도탑 모양을 하고 있으나, 고려전기의 화려한 부도탑에 비해서는 조형미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마도 고려말에서 조선초에는 전국적으로 부도탑을 만들 수 있는 조각가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양주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나옹선서 부도는 8각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전통적이 부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받침..

양주 화암사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탑비

양주 회암사 언덕에 있는 여러기의 부도 중 하나인 지공선사 부도이다.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부도탑, 제단, 석등, 탑비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보이는 8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 고려전기의 부도탑에는 화려한 조각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비해 이 부도는 어떤 장식도 하지 않고 있으며 돌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부도 앞 석등은 4각을 기본으로 한 형태로 이 또한 장식이 없고, 석재를 조립해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앞쪽의 무학대사비와 마찬가지로 4각의 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리돌을 얹어 놓은 것으로 조선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탑비가 놓여졌던 거북모양 이수가 탑비 옆에 놓여져..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보물389호)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를 구성하고 있는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이다. 이 쌍사자석등은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하나로 붙어 있으며, 그 위에 화사석을 두고 있다. 이 석등은 기존의 8각 석등형태에서 사각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무학대사의 명성이 연관되어서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조각된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붙이 있어서 입체감이 부족하고 그 조각 수법도 크게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화사석은 2개의 석재를 그냥 올려놓아 단순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서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쌍사자석등. 연꽃무늬가 새겨진 바닥돌과 아랫받침돌이 하나로 되어 있으며 쌍사자상이 중간받침돌 역할을 하고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쌍사자상을 새겨놓은 중간받침돌..

[북경 자금성] 태화문(太和門) 앞 청동 사자상

자금성 태화문 앞에는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청동 사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 아주 많이 남아 있는 사자상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자상으로 청동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중국 궁궐 등을 보면 신화에 나오는 많은 상징동물상이 있지만 대부부는 대리석으로 조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자금성 등 황제를 상징하는 장소에는 특별히 청동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거대한 사자상. 태화문을 오르는 계단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기단위에 다시 청동으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청동사자상을 올려놓고 있는데, 아마도 중국에서 가장 큰 사자상 중에 하나일 것으로 생각된다. 태화문 앞 사자상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자금성 정전 출입문인 태화문(太和門)을 지키고 있는 청동사자상. 자금성을 방문하는 ..

중국(China) 2010.07.05

보은 속리산 법주사 - 사천왕석등(보물)

법주사 사천왕석등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석등으로 전형적인 석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고 한다. 잘 보이지는 않는데 가까이서 보면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법주사 대웅전 앞을 천년 이상 밝혀주던 석등이다.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석등. 석등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석등이다.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안상을 얕게 새기고, 그 윗면은 가운데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윗받침돌과 대칭되게 연꽃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

[가야산 해인사] 당간지주, 석등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서는 절터나 오래된 사찰에서 석탑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남아서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인 당간지주가 철당간과 함께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최근에 만든 당간지주와 당간을 볼 수 있다. 1쌍의 당간지주와 붉은 칠을 한 당간이 대적광전 앞 경내 마당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행사에 필요한 걸개그림을 걸어두는 용도란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처음 보았다.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에 위치한 당간지주와 당간. 웬만한 사찰을 찾아가면 볼 수 있었던 중심불전 앞 당간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간지주는 보통 사찰입구와 중심불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인사 일주문 옆에도 오래된 당간지주가 있다. 사찰을 찾는 사람에게 행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목적인 것으..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보물 467호), 석등

보물 467호로 선정되어 있는 표충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이며 아마도 표충사라는 사찰이 존속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표충사는 통일신라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특히하게 삼층석탑이 본당 앞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2층 기단부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탑 중 상륜부가 많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표충사 삼층석탑이 서 있는 마당을 볼 수 있는데, 본당이 있는 마당은 아니고 요사채 역할을 하는 건물들이 있는 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을 올라가는 통로 비슷합니다. 정원은 나름대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삼층석탑과 나란히 한 석등. 표충사 삼층석탑 뒤쪽에 나란히 서 있다. ☞ 표충사 삼층석탑 통..

하동 삼신산(지리산) 쌍계사 석등, 석탑, 마애불

쌍계사 본당은 대웅전은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대웅전이 전형적인 모습으로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매우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웅장하고 화려한 유물은 거의 없고, 입구에는 낡은 당간지가 지키고 있으며 그 양 옆으로는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석등과 아주 크기가 작은 석탑이 있고 대웅전 뒷편에는 고려시대의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마애석불이 있습니다. 쌍계사 본당인 대웅전의 규모에 비해서 그 앞에는 화려하거나 웅장한 유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낡은 당간지주가 대웅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쌍계사 본전 불당인 대웅전 앞에 자리한 조그만 석탑입니다. 쌍계사란 절의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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