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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 8

보령 성주사지, 4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성주사지는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에서 내륙으로 고개를 넘으면 찾아가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 충남 서해안을 대표하는 옛 절터이다. 성주사 절터가 위치한 충남 보령의 서해안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간 해상교역상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며, 조선시대에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수영이 설치되었던 지역이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해상교역상의 이점으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았던 지역으로 보이며, 그런 연유로 해서 보령지역의 상당히 규모가 큰 사찰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선종 사찰을 하나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규모나 석탑들로 볼 때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성주사지에..

절터 2011.02.07

보령 성주사지석등

보령 성주사지 절터에서 중심 영역이 되는 금당터 앞 오층석탑과 같이 있는 석등이다. 성주사의 사찰규모와 역사성, 오층석탑의 조형미와 완성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원래 석탑을 만들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대에 석등을 추가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는 석탑 앞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던 것을 이 곳 석탑들을 해체 수리할 때 같이 수리한 것이라고 한다. 지대석 아랫돌에는 여덟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임이 놓여 있고 옥개석은 처마가 약간 위로 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솜씨가 뒷편의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봐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 석등의 화사석이 크기가 작고 세부적으로 조각이 잘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 성..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에 뒷편에 위치한 강당터 옆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현재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상당부분이 마모되어 있고, 코을 비롯한 얼굴부분은 특히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는 시멘트로 메꾸어 놓고 있다. 원래부터 성주사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 성주사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석불입상은 처음 만들때부터 크게 잘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기는 힘들고, 어떤 연유로 인해 효험이 좋다는 미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얼굴의 훼손이 상당히 심하여, 시멘트로 메꾸어 놓은 현재의 모습은 부처님의 얼굴이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변해버렸다. 이 또한 부처님이 변신한 모습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투박한 모습을 ..

보령 성주사지 서3층석탑 (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금당터 뒷편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석탑가운데 서쪽에 있는 3층석탑이다. 탑에는 장식물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탑을 장식하는 장식물들을 달아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사찰 가람배치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탑을 중심으로 하고 그 뒷편에 금당과 강당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성주사지는 금당뒷편에 3기의 석탑, 앞편에 1기의 석탑이 배치된 특이한 형태이다. 경주 감은사지나 불국사의 경우 2개의 탑을 두고 있고, 익산 미륵사지는 목탑과 석탑이 나란히 3기가 서 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데, 이 곳 성주사지는 금당앞에 1기의 오층석탑과 뒷편에 3기의 3층석탑이 있다. 동쪽편 석탑이 다른 곳에서 옮겨 왔다고 하니 아마도 2개의 3층석탑이 금당뒷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

보령 성주사지 동 3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금당터 뒷쪽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3층 석탑 중 동쪽편에 서 있는 3층석탑이다. 다른 2기의 3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반면에 이 석탑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생긴 형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내력이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찰 경내에 신앙의 대상인 불탑이 3기씩 배치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경우로 보이는데, 이 석탑은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말기의 3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2단으로 된 기단부 위에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을 3층으로 쌓아 올려 놓고 있다.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졌던 전기의 석탑에 비해서 이 석탑은 장식적인 의미가 강한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던 ..

보령 성주사지 중앙 3층석탑 (보물20호)

성주사는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서 내륙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서 조금만 들어오면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선종 도량의 하나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대형사찰이었다. 성주사 옛 절터에는 오층석탑 1기와 3기의 있는데 3기의 3층석탑 중 가운데에 있는 석탑이다. 3기의 석탑은 같은 양식을 하고 있지만 그 중 몸돌 조각 수법에 제일 화려하고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이다. 전제적으로 비율의 잘 이루어져 있으며,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탑신 몸돌의 남북면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자물쇠와 문고리가 조각되어 있다. 잘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구성품의 비율, 조각 수법 등에 있어서 창의적이..

보령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국보8호)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서 내류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통일신라시대의 큰 사찰이었던 성주사지 옛 절터를 볼 수 있다. 보령 성주사지에는 이 사찰을 창건한 낭혜화상의 탑비를 비롯하여 5층석탑과 3기의 3층석탑이 있는 큰 절터이다. 절터는 금당과 강당, 석탑으로 구성된 통일신라시대 사찰배치를 하고 있으며, 당시 산속에 많이 세워졌던 다른 사찰과는 달리 전통적인 평지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성주사지에 있는 문화재 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성주사를 크게 중창한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낭혜화상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으로 당나라에서 선종을 배우고 와서 이 곳에서 성주산문을 창설한 인물이다. 이 탑비가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인 진성여왕때라고 하며,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

보령 성주사지오층석탑 (보물19호)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삼국시대 백제의 절터인 성주사지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 그리고 상륜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기로 통일신라의 석탑을 만드는 기술의 전성기가 지나고 전국적으로 대량으로 석탑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지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도식화되고 정형화된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든 석탑이다. 당시에 만들어진 석탑에는 사천왕상이나 팔부중상 등을 몸돌에 새겨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석탑에는 장식을 새겨 놓고 있지는 않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석탑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보령 성주사지 절터의 중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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