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소수서원 13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영주 소수서원, 고려 유학자 안향을 모신 최초의 서원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은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에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선 중종때인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안향 선생을 모시는 백운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명종때인 1550년 퇴계 이황의 건의로 임금이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적은 현판을 내리는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최초의 서원인 소수 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세운 서원이지만,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는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상액서원답게 건물의 칸수도 많고 큰 규모의 서원으로 이 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

영주 소수서원, 최초의 서원 '백운동' 현판이 걸린 강학당

소수서원 강학당은 서원의 중요 기능인 학문을 논하는 강학 공간의 핵심 영역이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 선생에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있고, '소수서원' 편액이 강학당 내부에 높이 걸려 있다. 서원의 구조는 성균관 구조를 축소한 형태로 강학당은 성균관의 명륜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은 정면4칸, 측면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입구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주세붕 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이 서원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 위패를 모신 사당

영주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와는 달리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분의 위패를 모시고 그 학문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 서원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제사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의 핵심 건물이 이 곳 문성공묘이다. 보통 서원은 전묘후학 또는 전학후묘의 건물 배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곳 소수서원은 최초의 서원이라서 그런지 사당이 서쪽편에 있고, 강학공간이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소수서원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문성공묘. 정면3칸, 측면3칸으로 맞매지붕을 하고 있다. 문성공묘 내부는 개방되어 있..

[영주 소수서원]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齎), 상위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

영주 소수서원 강학공간의 중심인 강학당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안동지역 유지들의 저택 사랑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인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齎)이다. 2개의 건물이 붙어있어 하나의 건물로 보인다. 원래 하나의 건물을 둘로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문의 단계에 따라 일신재와 직방재로 나누고 있다. 동쪽 구석에 위치한 지라재와 학구재에 비해서 축대도 높고, 건물 자체도 격식있게 꾸면 놓고 있다. 소수서원 건물배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하며,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 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물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고 한다. 일신재, 직방재는 정면 ..

[영주 소수서원] 지락재(至樂齋)와 학구재(學求齎), 하위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

영주 소수서원 강학영역은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齎), 일신재(日新齋), 직방재(直方齎), 강학당의 5단계로 구분된다. 그 중 지락재(至樂齋)와 학구재(學求齎)는 1,2번째 단계 유생이 공부하던 곳으로 서원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건물들이다. 소수서원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많은 유생들이 공부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젊은 유생들이 이 곳에 머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수서원 마당 동쪽편 구석에 지락재와 학구재가 위치하고 있다. 학문의 단계에 따라서 건물의 크기와 축대의 높이를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 숙식하기는 힘들고 마루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토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 정면3칸의 작은 건물로 1칸의 방과 2칸의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축대..

[영주 소수서원] 장서각, 정료대와 관세대 등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와 직방재 사이에는 서원이 소장했던 책과 목판을 보관했던 장서각이 있고, 그 앞에는 야간에 불을 밝히던 정류대와 사당 참배시 손을 씻는 대야을 올리는 관세대가 있다. 소수서원 장서각은 전면2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많은 책들을 보관했던 것 같다. 문성공묘 동쪽편에 위치한 장서각.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 영정을 보관하던 영정각과 하나의 건물군을 이루고 있다. 소수서원 장서각은 전면2칸이지만, 당시 장서각 건물 중에선 큰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장서각 출입문 장서각 뒷편. 장서각 앞에는 횃불을 밝히던 정류대와 손을 씻을 대야를 올려 놓던 관세대가 있다. 해시계를 올려 놓던 일영대

[영주 소수서원]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과 영정각

서원의 제례영역의 중심인 문성공묘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과 안양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다. 전사청은 전면3칸의 작은 건물로 특색없이 소박한 건물이고, 영정각은 원래 소수서원에 없던 건물로 1975년에 안양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서 별도로 세운 건물이다. 물론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소수서원 문성공묘 제사를 위한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전사청 건물 소수서원 영정각은 안향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건물로 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소수서윈 뒷편에 있는 영정각과 전사청 건물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

[영주 소수서원] 충효교육관, 사료관

소수서원 뒷편에는 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소수서원 사료관과 충효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어, 이 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소수서원 역사와 유학에 대해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충효교육관은 소수서원 뒷편의 선비마을과 연계하여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 곳을 지나면 뒷문을 통해 영주 선비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소수서원 사료관 소수서원 충효교육관 소수서원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면, 관람객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소수서원 뒷문 소수서원 충효교육관과 사료관을 출입하는 문 소수서원 출입문. 영주 선비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영주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숲 길

소수서원을 특징짓는 풍경은 입구에서 서원까지의 울창한 송림과 송림으로 뒤덮힌 나지막한 둔덕인 영귀봉일 것이다. 소나무 숲속길을 한적하게 걸어가다 보면,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있고, 그 너머를 죽계별곡의 무대인 죽계천과 작은 정자인 취한대가 보인다. 매표소에서 1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에 소수서원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곳이다. 소수서원 정문 앞에는 작은 잔디 제단이 있고, 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이 곳이 소수서원임을 알려주는 강학당의 '백운동'이라는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소수서원 매표소.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매표소에서 소수서원으로 들어오는 길. 양쪽으로 수백년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소나무숲이 있는 작은 둔덕인 영귀봉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의 소나무 숲 소나무숲 너..

영주 소수서원을 지나는 죽계천, 죽계별곡의 무대

고려 충숙왕 때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죽계별곡'의 무대인 죽계천이다. 죽계천은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하여 소수서원과 영주선비촌 사이를 가로 지르는 하천이다. 이 죽계천의 풍경이 아름다워 옛날에는 이 곳에 큰 사찰인 숙수사가 있었고, 주세붕 선생이 숙수사가 있던 자리에 안향선행을 모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수서원 동쪽편을 흐르는 죽계천가에는 퇴계 이황선생께서 취한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경치에 취해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죽계천이 소수서원 옆에 이르러서는 소(沼)를 이루고 있으며, 주세붕 선생이 백운동 서원을 세울때 원래 있던 불상들을 이 곳에 빠뜨렸다는 전설이 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존경한다는 의미를 적어 놓은 경자바위가 죽계천 동쪽편에 있다고 한다. 죽계천 바로 옆..

한국의 풍경 2010.09.19

영주 소수서원, 죽계천 취한대(醉寒臺)

영주 소수서원 입구의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편 냇가인 죽계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서원은 대부분 강변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정자나 누각을 두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영주 소수서원은 서원 외부, 죽계천가에 정자를 지어 놓고 있다. 퇴계 이황선생이 산기운과 죽계전 맑은 물에 취해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라는 뜻에서 취한대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소수서원 정문 부근에서 보이는 취한정. 예전에는 이 곳을 건너는 다리가 없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징검다리를 만들어 쉽게 건너가 볼 수 있도록 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이 잠시 소(沼)를 이루는 곳에 취한대가 자리잡고 있다. 죽계천을 ..

조선 관아 2010.09.19

영주 선비촌, 소수서원과 함께 하는 선비들의 삶을 보여주는 곳

소수서원 뒷문을 나와서 죽계별곡으로 유명한 죽계천을 건너면, 양지바른 곳에 조성은 영주 선비촌을 볼 수 있다. 선비촌에는 해우당 고택등 기와집 7동과 초가 5동을 포함하여, 당시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자, 누각, 방앗간, 대장간 등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소수서원 뒷문을 나와서 조금 걸어서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에 들어갈 수 있다. 예전에는 이 곳에 다리가 없어 소수서원가 잘 연계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다. 마을 입구에는 충효의 상징인 충무각과 열녀각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영주 선비마을 매표소 영주 선비촌 입구. 초가마을이 보이고 길가에는 십이지신상이 세워져 있다. 영주 선비촌 입구에 있는 중류주택의 전형이라 할 수 ..

고택_정원 2010.09.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