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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3

논산 돈암서원(사적383호), 김장생을 모시는 기호지방을 대표하는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1660년(현종1)에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돈암서원은 보물로 지정된 강당 건물인 응도당이 출입문 왼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출입문 정면에 강학공간인 또다른 강당인 양성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양성당 왼쪽편에 장판각과 정의당이, 오른편에는 고직사가 배치되어 있고 뒷편에 사당인 유경사를 두고 있는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사당에는 김장생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인 김집,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과 송준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원래 돈암서원은 인근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대가 낮고 홍수때 물이 잠기는 경우가..

[중앙박물관 조선실] 병자호란과 그후, 붕당정치와 새로운 질서의 모색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각국에는 크나큰 변화가 발생했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중앙집권적인 동경중심의 막부정치가 시작되었고, 북방에서는 만주 여진족이 크게 성장하여 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허약함을 드러낸 국왕과 집권층에서는 중립외교를 추구한 광해군을 축출하고 명분론적이며 친명을 표방한 서인세력이 집권했다. 인조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에 허망하게 굴복하고, 명나라 또한 농민혁명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정립되었다. 병자호란은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허무하게 북방민족에게 굴복한 사례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는 병자호란을 상징하는 유적이나 유물이 남한산성이나 강화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찾아 보기 힘든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중앙박물관조차도 병자호란..

중앙박물관 2010.12.24

도봉산 도봉서원과 각석군,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

서울 도봉산 등산로 입구 계곡에 위치한 도봉서원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서원 중 서울에 소재한 유일한 서원이다. 도봉산 기암괴석과 계곡의 맑은물, 큰 바위 등은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다고 하며, 중종때 사림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정암 조광조 선생이 이 곳을 자주 들렀다고 하며, 1573년 선조때 조광조 선생을 모시기 위한 서원으로 창건된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서울출신인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유학자들이 시문을 남긴 유서깊은 서원이다. 도봉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헐린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현재의 서원은 뒷편에 있던 사당만이 남아 있고, 앞쪽에 있던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도봉서원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건물외 도봉산 계곡의 바위에 여러 문인들이 각석으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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